힘든 건 내담자뿐이 아니다. 붙드는 사람들도 흔들린다.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도, 다들 힘들다
상담을 하다 보면 확인하게 되는 사실이 하나 있다.
고통은 ‘문제가 있는 사람’에게만 가는 게 아니라는 것.
내담자는 힘들다. 그건 당연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내담자만 힘든 게 아니다.
상담사도 힘들다.
목사도 힘들다.
코치도 힘들다.
청소년 곁에서 매일 붙들어주는 지도자도 힘들다.
겉으로 보면 “정상적이고 건강해 보이는” 친구들도 힘들다.
그리고 나도, 힘들다.
‘정상’이라는 말이 사람을 자꾸 속인다.
정상이라는 단어는 마치 고통이 없는 사람처럼 들린다.
하지만 현실에서 정상은,
그냥 기능을 유지하는 상태일 때가 많다.
출근한다.
할 일 한다.
사람들 앞에서 웃는다.
역할을 지킨다.
그런데 그게 마음이 괜찮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대단해 보이고,
책임이 큰 사람일수록,
더 조용히 아픈 경우를 많이 봤다.
티를 안 낸다.
버틴다.
괜찮은 척한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면 무너진다.
상담사나 코치, 목사 같은 사람들은 특히 그렇다.
하루 종일 누군가의 불안을 받아내고, 감정을 들고, 무너지지 않게 옆에 서야 한다.
그걸 계속 하다 보면 마음이 닳는다.
어느 순간부터는 ‘공감’이 아니라 ‘의무’로 반응하게 되는 날도 생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은 더 잘 숨긴다.
“나는 괜찮아야 해”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먼저 걸어버린다.
내담자는 무너지는 방식이 비교적 눈에 보인다.
울고, 호소하고, 멈추고, 도움을 요청한다.
반대로 상담사나 목사나 리더들은 다른 방식으로 무너진다.
더 열심히 산다.
더 바쁘게 산다.
더 정리한다.
더 계획한다.
더 책임적인 사람처럼 보인다.
겉으로는 성장처럼 보이는데,
사실은 무너지지 않기 위한 버팀일 때도 있다.
나도 그렇다.
불안할수록 더 통제하려 한다.
정리하고, 채우고, 계획하고, 다시 잡아당긴다.
그게 내 불안을 잠깐 잠재우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누군가에게
“왜 그렇게 힘들어해?”라고 묻기 전에,
먼저 이런 말을 마음속으로 한다.
멀쩡해 보이는 게, 멀쩡한 건 아니다.
고통은 역할을 가리지 않는다.
이 문장을 붙들면 이상하게 숨이 좀 쉬어진다.
내가 힘든 걸 덜 부끄러워하게 되고,
다른 사람을 덜 쉽게 판단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 남는 결론은 하나다.
사람이 필요한 건
‘고쳐짐’이 아니라 ‘돌봄’이라는 것.
한 번에 해결되는 삶은 거의 없다.
대신 돌봄을 받으며 버틴다.
버티는 동안 조금씩 회복한다.
내담자도 그렇게 살아가고,
상담사, 코치도 그렇게 살아가고,
목사도 그렇게 살아가고,
나도 그렇게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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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부 | 감정을 해석하는 사람의 일기
겉으로 멀쩡한 사람들의 고통은 조용해서 더 늦게 발견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누군가를 붙들기 전에,
나부터 돌봄이 필요한 사람으로 인정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