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시작 전, 아빠는 객석이 아니라 무대 뒤를 본다
공연 시작 전,
스크린에는 그동안의 준비 과정이 조용히 흘러간다.
연습실의 공기. 땀에 젖은 손. 같은 동작을 수십 번 맞추던 시간들.
나는 스크린이 아니라,
무대 뒤를 계속 떠올리고 있었다.
지금쯤 딸은 어떤 상태일까.
심장이 빨리 뛰어서 괜히 신발 끈을 다시 묶고 있을까.
친구들이랑 "할 수 있어"를 외치면서도,
속으로는 동작 하나라도 틀릴까 봐 손을 계속 털고 있을까.
보이지 않는데, 느껴진다.
이곳에 올때만 해도 내 손 잡고 걷던 아이인데.
이 아이는 지금,
아무도 대신 서줄 수 없는 자리 앞에서
혼자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잘하길 바라는 마음보다 먼저,
여기까지 온 것 자체가 큰 일이라는 생각이 밀려왔다.
솔직히— 나는 지금 조금 자랑스럽다.
그리고 조금 불안하다.
딸이 잘하면 내가 잘한 것 같고,
딸이 실수하면 내가 부족한 것 같은 마음.
그게 사랑인지 욕심인지,
나는 아직도 구분 못 한다.
객석을 둘러봤다.
여기 있는 모든 부모들의 마음이 나와 같지 않을까.
이 시간만큼은, 우리는 같은 마음으로 연결되어 있다.
곧 무대 위 불이 켜지면,
딸은 '딸'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 서게 된다.
나는 그걸 그냥 지켜보게 된다.
객석의 불이 완전히 어두워졌다.
박수보다 먼저 눈이 뜨거워진다.
이 작은 사람이 지금 배우고 있는 건
무대 위에서 잘하는 법이 아니라,
무대 뒤에서 신발 끈을 다시 묶고 일어서는 법이다.
그게 용기라는 걸, 나는 안다.
그게 성장이라는 걸, 나도 안다.
근데 지켜보는 일이 이렇게 떨릴 줄은 몰랐다.
아직 흔들려도 괜찮고,
조금 틀려도 괜찮다.
나는 오늘, 딸의 무대가 아니라
딸의 떨림을 응원하고 싶다.
기억하고 싶다.
동녘 | 감정을 해석하는 사람의 일기
응원은 격려가 아니라, 무대 뒤 떨림을 알아보는 눈빛에서 시작된다.
부모의 불안은 자녀를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대신 서줄 수 없어서 생긴다.
성장은 잘할 때가 아니라,
떨리는데도 신발 끈을 묶고 일어설 때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