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묻기 전에, 먼저 들어야 할 아이들의 한숨

청소년 진로 특강 의뢰 뒤에 찾아온 무거운 책임감

by 강동민


이번 겨울, 교회 청소년부 수련회에서 진로 특강을 맡아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감사하다는 말은 했지만, 전화를 끊고 나니 마음이 좀 무거워졌다. 왜 그런지는 나도 알고 있었다.


요즘 아이들 앞에서 “꿈을 크게 가져라”, “노력하면 다 된다” 이런 말을 꺼내는 순간,

나는 바로 알아차려질 거라는 걸.


“아, 이 사람은 우리 현실을 잘 모르는 어른이구나.”

아이들은 그런 걸 생각보다 빨리 눈치챈다.

말을 잘하는지보다, 자기 얘기를 하고 있는지, 아니면 그냥 준비한 말을 하고 있는지.

그 차이를 안다.


그래서 이번엔 정말 다르게 해보고 싶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정리하는 강의 말고,

아이들이 속으로라도 “이거… 내 얘긴데” 그렇게 중얼거릴 수 있는 시간. 그걸 만들어보고 싶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청소년들이 요즘 진로 관련해서 무슨 고민을 하는지 정말 모르겠다.”

요즘 청소년들은 책상 앞에 앉아서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 논문과 기사도 찾아보고, 통계도 꽤 들여다봤다. 이상하게도 알면 알수록 나는 자꾸 멈추게 됐다.


상담을 하다 보면 '학업’이랑 ‘진로’ 얘기는 정말 자주 나온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진로는 “나중에 뭐가 되고 싶어?” 같은 질문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훨씬 직접적이었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지?”


아주 현실적인 생존의 문제였다.

이 무거운 질문이 벌써 10대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는 것.

이 질문을 벌써 붙들고 있다는 게 계속 마음에 걸렸다.


“진로는 뭘 고를지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문제이다.”

그걸 모른 채 '비전’이나 ‘꿈’ 같은 말부터 꺼낸다면, 나는 아마 위로가 아니라 장식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정보가 이렇게 많은 시대인데, 아이들은 "정보가 없어요"라고 했다.

자세히 들어보니 그들이 말하는 정보는 유튜브에서 몇 분 보고 끝나는 직업 소개가 아니었다.

이 일을 실제로 해보면 어떤지,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그런 걸 알 기회가 없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더 크게 느껴진 건 다른 쪽이었다.

아이들한테는 세상에 대한 정보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
“내가 이걸 잘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어요.”

자료 속 문장을 읽으면서 나는 자꾸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숙인 아이 얼굴을 떠올리게 됐다.

자신을 잘 모르고, 자신감도 없는 상태에서의 선택은 선택이라기보다 거의 운에 가깝다.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그때 나는 노트에 한 줄을 적었다.


“정보를 주는 특강이 아니라, 나를 알아보는 시간.”


“그럼 지금 뭘 준비해야 해요?”

이 질문에서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 그대로 느껴졌다.

몇 년 뒤에 사라질 직업, 아직 생기지도 않은 직업 이야기들.

이런 불확실성은 아이들에게 압박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부모님은 말한다.

“안정적인 직장이 최고야.”

아이들은 말한다. “그래도 하고 싶은 게 있어요.”

그 사이에서 아이들은 흔들린다.

“지금 잘못 고르면 인생 망하는 거 아니에요?”


아이들의 불안은 거의 다 미래 얘기였다.

'지금’이 거의 없고, 대부분 '나중에’로 끝난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어쩌면 나 역시 똑같이 살고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 회사에서 잘리면 어떡하지.”
“나를 찾는 데가 없으면 어떡하지.”


아이들이 '인생의 실패’를 미래에 당겨서 걱정하듯,

나는 '미래의 실패’를 미리 앞당겨서 두려워하고 있었다.


“나를 잘 모르겠어요.”

이 말 앞에서 나는 잠시 멈춰 서야 했다.

아이들이 방황하는 이유는 자기애가 넘쳐서가 아니라 자기를 잘 몰라서였다.

“하고 싶은 건 있는데, 제가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인지는 모르겠어요.”
“좋아하는 걸 직업으로 하기엔 제가 별로 특별한 게 없는 것 같아요.”

우리 어른들은 자주 이렇게 말한다. “좋아하는 거 해.” “적성에 맞는 거 찾아봐.”

아이들 마음속에서는 이 말이 울린다. 그걸 모르겠다고요.


경험 부족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었다.

해보면 알 텐데, 해볼 시간이 없다.

아침부터 밤까지 학교랑 학원 사이에 묶인 아이들에게

"많이 경험해봐"라는 말은 조금 잔인하게 들리기도 한다.


그리고 진로 고민은 대부분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관계가 흔들리고, 집이 불편해지고, 마음이 지치면 진로는 더 흐려진다.

아이들은 그 안에서 혼자 버티고 있었다.

리서치를 다 마치고 노트를 덮는 순간, 나는 이상하게 허전했다.

틀린 말은 없는데, 중요한 게 빠진 느낌이었다.

모니터 화면에 있는 ‘청소년 A’ 말고, 지금 책상 앞에서 한숨 쉬는 아이의 얼굴이 보고 싶어졌다.


“그냥… 잘 모르겠어요. 안개 같아요.”

이 문장을 실제로 말하는 아이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전화기를 들었다.

청소년 상담을 오래 해오신 분께. 내가 알고 있는 아이들에게.

통계 말고, 분석 말고, 사람 얘기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짧은 통화들이 내가 준비해야 할 방향을 조금 바꿔놓았다.

이번 강의에서는 내 경험을 먼저 말하지 않으려고 한다.

대신 아이들 이야기를 먼저 들으려고 한다.


나는 그런 어른이고 싶다. 그런 선생님이면 좋겠다.


동녘 | 불안한 세대를 향한 준비 노트

자기 경험을 먼저 말하지 말고, 그들의 현실을 먼저 듣는다.

나는 그런 선생님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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