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는 나를 데리고 나왔다

무력한 일상의 틈을 비집고 들어간 작은 용기에 관하여

by 강동민

매일이 비슷하다는 것


서른과 마흔 사이 어딘가에서, 우리는 종종 자신을 잃어버린다.

거창한 방황이 아니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궤도 위에서, 내가 누구인지조차 희미해지는 그런 기분이다.


출근과 업무, 아이들 학원 픽업과 대기, 집에 돌아와 소파 한구석에서 핸드폰과 넷플릭스로 시간을 흘려보내는 일상.


무력감이 차곡차곡 쌓인다.

겨우 버티는 하루들 속에서, 나라는 사람의 윤곽이 점점 흐릿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오늘도 그랬다.

아들을 청소년 센터 기타 수업에 내려주고, 차 안에서 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익숙한 루틴이다.

핸드폰을 켜고, 아무 생각 없이 화면을 스크롤하며 시간을 죽인다.

그것이 나의 일상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마음 한켠이 묘하게 답답했다.


'이대로 또 하루가 지나가겠구나.'


이 말은 누가 들으면 별것 아닐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묵직한 패배 선언 같았다.

오늘도 나는 나를 그냥 흘려보내고 있구나.


혼자라도 가보자

그때 차창 밖으로 낡은 볼링장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몇 번이고 지나치기만 했던 곳. 언제부턴가 '언젠가 가봐야지' 하고 머릿속 리스트에만 올려두었던 공간. 그 불빛이 이상하게 또렷하게 들어왔다.


'혼자라도 가보자.'


머뭇거림이 있었다.

혼자 볼링장에 가는 게 이상해 보일까.

의미가 있을까.

하지만 나는 아주 오랜만에, 나를 위해 차 문을 열었다.

나의 볼링장은 오늘이 마지막이었다

입구에 붙은 안내문을 보고 알았다. 30년을 버텨온 공간이 내일 문을 닫는다고 했다. 씁쓸함이 밀려왔다. 나는 이곳을 수년 동안 그냥 스쳐 지나가기만 했는데,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겨우 한 발 내딛고 들어온 셈이었다.


마치 나 스스로에게도 그동안 줄곧 이러지 않았냐고,

누가 조용히 묻는 것 같았다.

너도, 네 삶에서도 늘 그냥 스쳐 지나가기만 했지?

공을 집어 들었다. 무겁고 차가운 감촉.

레인 끝의 핀들을 바라보며 천천히 숨을 고르고, 공을 굴렸다.

텅— 하고 공이 바닥을 치고 나아가 레인 위를 구르기 시작했다.

쾅, 쾅, 쾅. 핀 몇 개가 쓰러지는 소리가 생각보다 크게 들렸다.


점수는 형편없었다.

스트라이크는커녕 스페어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게 중요하지 않았다.

공을 굴린다는 것

중요한 것은,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도 스스로 움직였다는 것이었다.

차 안에서 핸드폰만 들여다보지 않고, 나를 데리고 나왔다는 것.

혼자서 걸어가고, 공을 굴리고, 스스로를 챙긴다는 것. 그 작은 용기가, 무력한 일상 속에서 마음을 조금 살렸다.


레인 위에서 공을 굴릴 때마다, 마음속 공허가 조금씩 흔들렸다.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여전히 허전함과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것조차 살아있다는 신호였다.


공허를 느낀다는 것은, 무언가를 원하고 있다는 뜻이니까.

아쉬움을 느낀다는 것은, 더 나은 무언가를 상상하고 있다는 뜻이니까.


나를 데리고 나오는 연습

볼링장을 나서며 나는 속으로 말했다.

"오늘, 나는 나를 데리고 나왔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작은 행동 하나가 하루를 완전히 바꾸지는 못할지도 모른다.

내일도 비슷한 하루가 올 것이고, 무력감은 또다시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만으로도, 반복되는 공허와 무력감 속에서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경험이 된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거창한 변화가 아닐지 모른다.

석 달짜리 계획도, 인생을 뒤집는 결심도 아닌, 단지 오늘 나 자신을 조금 다른 곳으로 데리고 나오는 일.


그게 볼링장이든, 집 앞 카페든, 동네 체육관이든, 아니면 그냥 오래 걸어본 적 없는 골목이든.


공허함과 무력감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가 아니라, '이대로는 싫다'고 조용히 말할 수 있는 마음의 형태라면, 그 마음은 이미 나를 밖으로 이끌 준비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 당신의 하루도 어제와 비슷하게 지나갔다면,

지금 마음이 이상하게 허전하고 무력하다면,

그 마음을 완전히 나쁜 것으로 여기지 않았으면 한다.


그건 어쩌면, 당신 안에서 아직 빛을 쫓아 걸어 나올 수 있는 어른 하나가 조용히 손을 들고 있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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