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림 하나, 그리고 자동으로 튀어나온 감정들
단톡방 알림이 떴을 때, 별다를 게 없는 공지겠거니 했다.
'임원님의 말씀 전달드립니다'
제목부터 눈에 들어왔다.
센터 직원이 올린 글이었다.
내용을 읽어보니 임원님이 비공식자리에서 하신 말씀이 정리되어 있었다.
"업무 효율성을 좀 더 높여보자" 정도로 전달 된 그 말이, 어느새 '전달사항'이라는 이름을 달고 서 있었다.
틀린 내용은 아니었다. 방향도 맞았다.
그런데 마음 한구석이 걸렸다.
나를 거치지 않은 공식화, 그리고 자동으로 튀어나온 생각들
평소라면 임원님 말씀을 내가 정리해서 전달하거나, 적어도 한 번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을 텐데.
직원의 선의였겠지만, 나에게는 미묘한 '패싱당한 감각'이 올라왔다.
센터장인 내가 모르는 새에 업무가 공식화되는 느낌.
위에서 아래로 바로 꽂히는 그 흐름에서, 나는 어디에 서 있는 사람인지 순간 헷갈렸다.
그리고 바로 다음 고민이 시작됐다. 이 공지에 체크 표시를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순간, 상담 수련 과정에서 수없이 훈련했던 반응이 작동했다.
마음속에서 자동으로 튀어나오는 생각들을 알아차리는 것.
"내 권위를 무시하는 건가?"
"나를 허수아비로 만드는 건가?" 이런 생각들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심리상담을 공부하면서 가장 많이 반복했던 질문이 있다.
"이건 사실인가, 아니면 내가 붙인 해석인가."
잠시 휴대폰을 내려놓고,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사실은 단순했다. 직원이 임원 지시사항을 공지했다.
내용도 맞다. 절차상 센터장인 나를 거치지 않았을 뿐.
그런데 내 감정은 '패싱당했다'는 해석을 만들어냈다.
내 권위가 흔들렸다는 서사를 구성했다.
한 발 뒤에서 내 마음을 들여다보니, 불편함의 실체가 조금씩 보였다.
이건 지금 벌어진 일에 대한 반응이라기보다, 내 안에 오래 자리 잡은 패턴이었다.
'중요한 흐름에서 제외되는 것'에 대한 오래된 불안.
조직에서 내 자리가 언제든 흔들릴 수 있다는 두려움.
그 불안이 작은 공지 하나를 크게 부풀려놓은 것이었다.
상담 공부를 하며 배운 것 중 하나는, 타인의 행동 이면에는 공격성보다 '불안'이 숨어있을 때가 많다는 사실이다.
그 직원을 떠올려봤다.
임원님 말씀을 들었을 때, 그에게도 압박이 찾아왔을 것이다.
"위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우리가 정리 안 하고 있으면 어쩌지?" 빨리 공유해서 책임감을 보여야 한다는 조급함.
임원님 말을 놓칠까 두려운 본인의 불안을 잠재우려는 방어 행동.
그렇게 생각하니 억울함 대신 이해가 먼저 올라왔다.
그가 나를 건너뛰려 한 게 아니라, 자신의 불안을 해소하려다 보니 절차가 생략된 것일 수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설명하는 말이 있다.
한 사람의 불안이 다른 사람에게 옮겨가는 것.
그의 불안이 나의 불안을 건드렸고, 우리는 각자의 두려움 속에서 엇갈린 것뿐이었다.
문득 내가 존경했던 선배 리더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분이라면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아마도 "아, 저 친구가 조금 앞서 나갔네" 정도로 마음속에만 정리하고, 굳이 바로잡지 않았을 것 같다.
상담에서는 내담자의 정제되지 않은 감정을 즉시 교정하기보다 한 번 받아 안는 과정을 거친다.
이를 '담아내기'라고 부른다. 상대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내가 먼저 소화해서, 정리된 형태로 돌려주는 것.
리더십도 비슷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원의 설익은 행동을 바로 지적하기보다 일단 내 안에 잠시 머물게 해보는 것.
조직의 질서를 깨뜨리지 않으면서도 그의 의욕을 꺾지 않으려 애쓰는 '심리적 소화'의 과정.
내가 체크 버튼 앞에서 망설이던 그 시간은,
어쩌면 그를 정죄하지 않고 또 나 자신을 성급히 정당화하지 않으려는 나름의 소화 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그날 가장 두려웠던 건 '내용'이 아니라 '이미지'였다.
'센터장이 모르는 사이에 일이 돌아간다'는 인상,
'결국 임원 말이 곧장 최종이네'라는 분위기.
하지만 상담자로서의 훈련이 여기서 한 번 더 나를 붙잡았다.
진짜 권위는 단톡방 체크 하나로 지켜지는 게 아니었다.
매일의 판단에서, 옳은 결정을 내릴 때, 팀원을 보호할 때 쌓이는 것이었다.
"모든 걸 나를 거쳐 가게 만드는 힘"이 아니라
"내가 없어도 크게 어긋나지 않도록 판을 깔아두는 힘"에서 나오는 것.
전자가 통제의 언어라면, 후자는 신뢰의 언어에 가깝다.
그렇다면 직원의 행동은 나의 '패싱'이 아니라,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조직의 증거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날 오후, 내가 선택한 것
결국 나는 체크를 눌렀다.
"빠르게 정리해줘서 고마워요. 내용 좋습니다."
라고 짧게 한 줄을 남기지는 않았다.
단호한 지적도 아니고, 아무 말 없는 동의도 아닌, 그 중간 어디쯤 되는 문장.
상담에서라면 '관계를 지키면서도 경계를 세우는 시도'라고 이름 붙였을지도 모르겠다.
그 한줄까지는 남기고 싶지는 않았다.
다만 며칠 뒤 커피 한 잔하는 자리에서, 정보 공유의 타이밍에 대해 가볍게 이야기할 수는 있겠다.
"그때 공유해줘서 애쓰셨습나다. 다만, 나랑 먼저 잠깐 이야기하고 올렸으면 내가 더 힘을 실어줄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지적이 아니라, 경험을 나누는 동료의 입장에서.
그 후로도 비슷한 장면은 계속 찾아올 것이다.
단톡방 알림창 앞에서 나는 또 멈칫할지도 모른다.
말할 것인가, 이번엔 넘어갈 것인가.
오늘은 어디까지 담아내고, 어디부터는 선을 그을 것인가.
비슷한 장면을 다시 마주쳤을 때,
나는 스스로에게 세 가지 질문을 던져보려고 한다.
첫째, 지금 내가 불편한 건 '상황' 자체인가, 아니면 내가 만든 '해석'인가?
둘째, 이 관계에서 정말로 지켜야 할 선은 무엇인가?
셋째, 이 장면을 통해 드러난, 나의 오래된 패턴은 무엇인가?
리더의 권위는 "언제나 한마디 하는 사람"에게서 오는가,
아니면 "꼭 필요한 때에만 말을 고르는 사람"에게서 오는가.
나는 아직 그 사이를 서성인다.
다만 예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제는 내 반응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나'가 생겼다는 것.
당신은 오늘, 어떤 질문으로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