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천 원짜리 커피와 4분의 실패

여의도 카페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시도하다

by 강동민

4분도 못 버틴 어른의 고요


여의도 카페 창가에 앉았다.

점심시간의 여의도는 걷는 사람조차 달리는 것처럼 보인다.

빌딩 숲 사이로 회색 코트와 검은 패딩이 쉴 새 없이 흘러간다.

금융과 속도의 냄새가 배어 있는 이 동네에서 나는 오늘 멈춰보기로 했다.


나를 위해 8천 원짜리 스페셜티 커피를 주문했다.

메뉴판에는 원두의 산미와 꽃향기를 설명했지만 사실 나는 오늘 커피 맛에 관심이 없었다.

내가 산 것은 커피가 아니라 시간이었다.


오늘은 폰을 보지 않기로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군가에게 반응하지 않고,

생산하지 않고, 증명하지 않고.

그저 이 자리에 '존재'해보고 싶었다.


8천 원짜리 고요

잔이 내려오고, 나는 폰을 테이블 위에 엎어두었다.

알림 소리를 끄고 화면도 보이지 않게 했다.

가방 속에 넣을까 하다가, 너무 비장해 보일까 싶어 손 닿는 곳에 그냥 두었다.


목표는 단순했다.

커피가 식을 때까지 온전히 나로 앉아 있는 것.

8천 원으로 산 고요를 음미하는 것.


처음에는 괜찮았다.

김이 올라오는 잔을 바라보며

창밖 사람들의 바쁜 발걸음을 구경했다.

'이게 바로 고요구나' 같은 생각도 했다.


하지만 곧 손을 어디에 둘지 애매해졌다.

괜히 컵을 잡았다 놨다 하며

종이 홀더의 질감을 만지작거렸다.


4분

1분은 향을 맡았다.

2분째는 손을 어디에 둘지 몰라 컵을 만지작거렸다.

3분째는 맞은편 사람과 눈이 마주칠 뻔해서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4분째.

오른손이 거의 반사적으로 폰을 향했다.

아무런 알림도 울리지 않았는데.


나는 별 저항도 못 해보고 화면을 켰다.

새로 온 메일도, 메시지도 없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겨우 4분이었다.

나는 나 혼자 있는 것을 4분도 견디지 못했다.


가만히 있으면 이상한 아이

어릴 적 기억이 떠오른다.

초등학교 쉬는 시간, 친구들이 떠들고 뛰어놀 때

나는 창밖만 보고 앉아 있곤 했다.


그러면 꼭 누군가 다가와 물었다.

"어디 아프니?"

"왜 말 안 하고 있어?"


가만히 있는 아이는

어딘가 아프거나, 이상하거나, 외톨이인 아이로 취급받았다.

그 시선이 싫어서 나는 교과서라도 펼쳐야 했다.


지하철에서도 그랬다.

중학생 때, 멍하니 있으면 발가벗겨진 기분이 들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누군가를 기다리며 팔짱 끼고 서 있는 내 모습이 어딘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그래서 어른들은 신문을 펼쳤고,

스마트폰이 나온 뒤부터 우리는 모두 고개를 숙였다.

'무언가를 하고 있는 사람'이 되어야

비로소 군중 속에 섞일 수 있었다.


존재보다 행동

나는 스스로를 INFP라고 소개하곤 한다.

내면을 중시하고 고요를 좋아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정작 고요 속에 오래 머물지 못한다.


회사에서는 늘 "그래서 뭘 했냐"고 묻는다.

성과 공유 자리마다 빠지지 않고 따라붙는 질문.

성과를 증명하지 못하는 시간은 죽은 시간 취급을 받는다.


그러다 보니 나도 스스로에게 묻는다.

하루가 끝날 때, "오늘 나는 뭘 했더라?"

대답이 막히면, 그날은 괜히 실패한 날 같다.


카페에서 멍하니 있는 내가 쓸모없어 보일까 봐.

바쁜 세상에서 나만 멈춰 있는 게 뒤처지는 것 같아서.

존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불안이 나를 쿡쿡 찌른다.


여의도의 카페는 시끄러웠다.

웃음소리, 키보드 소리, 주문 번호를 부르는 목소리.

하지만 그 소음보다 내 안의 목소리가 더 컸다.


"지금 뭐라도 해야 하지 않아?"

"가만히 있으면 이상해 보이지 않을까?"


그 목소리는 오늘 생긴 게 아니다.

아주 오래전, 가만히 있으면 어색해지던

그 교실에서부터 자라온 것이다.


다시, 5분

존재하는 연습은 생각보다 어렵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를, 내가 가장 먼저 어색해한다.


오늘도 나는 4분 만에 폰을 켰다.

실패다.


하지만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다시 생각한다.

적어도 4분은 가만히 있었다.

불안을 피하려 폰을 켜는 나를 '자각'했다.


어쩌면 존재의 연습은

30분을 버티는 인내심 테스트가 아니라,

내가 4분 만에 불안해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커피가 아직 따뜻하다.

스페셜티 커피의 꽃향기가 희미하게 남아 있다.


나는 다시 폰을 엎어둔다.

이번에는 시간을 재지 않기로 한다.

그냥 이 자리에, 이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어 보기로 한다.


창밖에서 누군가 웃는 소리가 난다.

에스프레소 머신이 지글거린다.

내 숨소리가 조금 더 또렷해진다.


나는 여전히 존재만으로는 불안한 어른이다.

그럼에도 가끔은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더해봐도

괜찮지 않을까.


이번에는 5분을 살아볼 수 있을까.


당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몇 분이나 버틸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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