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이 터지지 않아도 괜찮아, 그게 당신의 펀치라인이니

사무실 창가에서 만난 코미디언이 들려준, 인생이라는 농담에 대하여

by 강동민

혼자 근무하는 요일, 나는 사무실에 있었다.

잠시 커피 한 잔을 내리고 창밖을 보며 쉬는 시간.

창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이 지겨워질 때쯤, 별 생각 없이 Differ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원소윤'이라는 코미디언의 강연을 정리한 글이 있었다.

글 초반에 있는 문장이 묘하게 눈에 걸렸다.

"서울대는 갈 수 있지만 클럽은 가지 못 한다."

뭔가 씁쓸하면서도 웃긴, 그 애매한 감정이 먼저 올라왔다.


아무도 웃지 않는 코미디

"스탠드업 코미디는요, 마이크 하나 들고 사람들 웃기면 그게 다예요. 그러니까 지금 제가 하고 있는 건 스탠드업 코미디가 아니죠. 왜냐하면… 아무도 안 웃고 있으니까."


상담실에서 만났던 한 사람이 떠올랐다.

한 시간 내내 "제 인생은 원래 이런 식이었어요"라고 말하던 사람.

다들 누군가를 웃게 하려고, 혹은 울지 않으려고 애쓰며 산다.

그런데 아무도 웃어주지 않는 순간들이 있다. 그 적막 속에서 혼자 서 있는 기분.

원소윤은 그 어색한 침묵마저 농담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셋업과 펀치라인, 그리고 우리 인생

농담에도 공식이 있다고 했다.

'셋업'으로 분위기를 깔고, '펀치라인'으로 뒤집는 것.

원소윤이 설명하는 원라이너 기법은 단 두 문장으로 이 모든 걸 해내야 한다. 그것도 웃긴 임팩트를 남기면서.


"저와 남편은 20년간 행복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서로를 만났어요."


앞문장은 셋업, 뒷문장은 펀치라인. 뻔한 행복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비혼의 자유였다는 반전.


상담실에서 나는 수많은 '셋업'을 듣는다.

"저는 원래 소심해요." "우리 집은 다들 불행했어요." "저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어요."

이 긴 문장들을 듣고 나면, 나는 조심스럽게 펀치라인을 기다린다.

내담자가 스스로 문장을 뒤집는 순간을.

한참을 울던 내담자가 눈물을 닦으며 툭, 던지는 말들.

"근데 선생님… 저 좀 억울하네요?" "생각해보니까, 그게 제 잘못만은 아니잖아요."

그 순간이 바로 인생의 펀치라인이다. 비극인 줄 알았던 장르가, 블랙코미디로 바뀌는 지점.


교류분석에서 말하는 '재결정'이라는 게 이런 거다.

그냥 쉽게 말하면 "아, 이렇게도 볼 수 있구나" 하는 순간.

인생의 문장을 살짝만 비틀어도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웃음이 터지지 않아도 괜찮다. 당신이 당신의 문장을 비틀어버렸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반전은 시작됐으니까.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지만, '나'는 있다

원소윤은 학창 시절 도서관으로 도망쳤다고 했다.

답답한 현실을 피해 책 속으로. 그런데 그 도피가 결국 그녀를 작가로, 코미디언으로 만들었다.


상담을 할 때 나는 묻는다.

"당신은 힘들 때 어디에 있나요?"

어떤 사람은 게임 속으로, 어떤 사람은 요리 영상 속으로, 어떤 사람은 멍하니 걷는 길 위로 도망친다.

우리는 흔히 '도피'를 나약함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나는 그걸 '신호'라고 부르고 싶다.


작년에 만난 20대 후반 남성은 스트레스받을 때마다 유튜브에서 UFC 격투기 영상을 봤다.

"그냥 멍하니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져요.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아요."라고 하더라.

당신이 가장 안전하다고 느끼는 그곳.

세상으로부터 숨어 들어간 그 작은 틈새. 거기에 당신이 진짜로 원하는 무언가가 숨 쉬고 있을지도 모른다.


원소윤이 말했듯이, "할 말이 차오를 때까지 충분히 읽는" 시간이 필요하다.

억지로 뭔가 깨달으려고 하면 안 된다.

그냥 충분히 자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어? 나 왜 맨날 이런 패턴이지?" 하는 지점이 보인다.

낙원은 없어도, '나'는 있다.


망해도 세상은 얄미울 정도로 잘 돌아간다

"제 공연이 망한다 해도 세상에 아무런 지장 없잖아요. 그게 저한테 해방감을 줘요."

이 말을 읽는데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우리는 너무 무겁게 산다.

이번 시험에 떨어지면, 이번 프로젝트를 망치면, 이번 연애가 실패하면. 마치 지구가 멈출 것처럼 걱정한다.

한 내담자가 이력서를 10번도 넘게 고쳐왔다.

"이렇게 쓰면 떨어질 것 같아요"라면서.

"떨어지면 뭐가 제일 무서워요?" "제가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게 증명되는 것 같아서요."

이력서 한 장이 한 사람의 존재 가치를 증명한다고 믿는 거다.

하지만 코미디언의 말처럼,

우리가 망해도 세상은 얄미울 정도로 잘 돌아간다.

슬픈가? 아니, 그래서 다행이다.


내가 실수해도 태양은 뜨고, 내가 넘어져도 버스는 온다.

나 하나쯤 망해도 세상이 끄떡없다는 사실이,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다시 시작할 용기를 준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마이크를 다시 잡을 배짱을 준다.


혼자 하는 일이 주는 자유

원소윤은 "평생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헤맸다"고 했다.

심지어 등대지기도 알아봤다고. (사실 나도 알아봤었다. 종종 꿈꾼다. 아주 잠시 동안만.)


스탠드업 코미디나 문학은 사람들과 만나긴 하지만, "긴밀한 소통은 아니"라고 했다.

내가 하는 상담도 그렇다. 50분 동안은 엄청 깊게 만나지만, 그 시간이 끝나면 각자의 삶으로 돌아간다.

어떻게 보면 아주 친밀하면서도 적절히 거리가 있는 관계.

원소윤이 말한 문학과 스탠드업 코미디의 공통점들이 상담과도 닮아 있다.

자기 삶의 핵심을 가장 '그 사람다운' 방식으로 살아내도록 돕는다.

그리고 현실의 민감한 소재들을 다루며, 혼자 작업하되 결과물로 사람들과 만난다.


밀란 쿤데라의 말을 빌리자면,

"문학은 옳고 그름을 심판하려는 게 아니라 작가가 삶의 핵심이라고 여기는 바로 그것을 가장 그다운 방식으로 담아내는 것"이다.


당신은 어떤 '거리감'을 선호하는 사람인가.

하루 종일 사람들과 떠들며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 있고,

혼자 작업하다가 가끔 결과물로만 사람들을 만나는 게 편한 사람이 있다.

둘 다 괜찮은데, 자기한테 맞는 걸 찾아야 한다.


다시 쓰는 인생 각본

원소윤은 자신의 이야기를 '픽션'이라고 했다. '나만의 이야기'라는 말조차 피한다고 했다.

우리의 과거도 그렇다. 기억은 편집된 영상이고,

우리가 믿는 '나'는 어릴 때 쓰여진 각본일 뿐이다.

교류분석에서는 이걸 '인생 각본'이라고 부른다.

"나는 늘 실패해", "나는 사람들이 무서워", "나는 결국 혼자야" 같은 문장들.

그게 지금까지의 경험이라면 인정하되, 그게 평생 그래야 한다는 법은 없다.

하지만 각본은 고쳐 쓸 수 있다.

원소윤이 책상 앞에서 단어 하나를 고르듯, 우리도 우리 인생의 다음 대사를 고를 수 있다.

"나는 늘 실패해"라는 대사를 지우고, "나는 자꾸 시도해"라고 적어 넣을 수 있다.

내가 쓴 각본이니까, 나는 다시 쓸 수 있다.


식어버린 커피잔 앞에서

글을 다 읽고 나니 따뜻했던 커피가 어느새 차갑게 식어 있었다.

원소윤의 말들이 떠올랐다.

특히 "책보다 인생이 훨씬 슬프고, 뒤틀리고, 불완전하다"는 말.

그 말이 위로가 됐다. 불완전해도 괜찮다는 거.

오히려 그 불완전함이 다음 문장을 쓸 수 있는 이유라는 거.


상담실 나가는 내담자들한테 가끔 이렇게 말한다.

"오늘 여기서 한 이야기가 정답은 아닐 수도 있어요. 근데 일단 한 문장 써본 거잖아요. 다음 문장은 내일 쓰면 돼요."


마이크는 이미 켜져 있다.

관객들이 웃지 않아도 상관없다. 이 무대의 주인공은 당신이고, 펜을 쥔 작가도 당신이니까.

지금까지가 셋업이었다면, 다음 문장은 당신의 펀치라인이 될 수 있다. 조금 썰렁해도 괜찮다.

당신의 목소리로 말한다는 게 중요한 거니까.

스탠드업 코미디는 특별한 자격증이 필요 없다.

마이크 하나와 이야기만 있으면 된다. 인생도 그렇다. 완벽한 준비가 끝나야 시작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오늘 당신은 어떤 문장을 쓰고 있는가.

그리고 내일은 어떤 펀치라인을 준비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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