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기로 했다.
이 세상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타인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다 보면 수많은 관계들 속에서 본의 아니게 거절을 해야만 하는 상황들도 종종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거절하는 것을 유독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이유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자신이 누군가에게 거절당하는 것에 대해 쉽게 상처 받고 힘들어하다 보니 타인에게 자신이 싫어하는 것(거절)을 하고 싶지 않아서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적어도 내로남불은 아니어서 얼핏 보면 양심적이고 마음이 여린 사람들로 보일 수도 있으나 실상은 과거의 상처나 결핍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들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
둘째, 자신이 만들어 놓은 자아상 혹은 초자아가 높아서 ’ 나는 착하고, 배려심 있는 사람, 나는 누구에게나 진심으로 마음을 다해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내면의 기준과 틀이 강한 경우이다. 그래서 원치 않는 상황, 원치 않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과도하게 애쓰는 경향을 발견할 수 있다.
사실 나는 위의 두 경우에 모두 해당되는데, 얼마 전만 해도 나는 착하고 배려심 많은 데다 누구에게나 진심으로 대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착각 속에서 살아왔었다. 그러나 실상은 속이 좁고 때로는 옹졸한 인간이었으며,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잘 구분할 수 없는 미숙한 인간이었다.
그래서 때로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넘치게 행동하고 나서 상대에게 괜한 짜증이나 후회, 억울함 더 나아가 분노의 감정 등을 느끼기도 했고, 참다가 한계에 도달하면 관계를 단절하기도 했다. 그러나 내 안의 상처와 결핍 그리고 지금 나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보고 나자 많은 것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또한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에 대한 기준을 분명하게 세우게 되었고, 누군가의 부탁을 들어주거나 원치 않는 모임이나 만남 등에 응하는 것, 혹은 배려나 호의를 베풀고 나서 스스로 피로해지거나 짜증이 날 상황이 생길 것 같으면 돌려서 거절하는 방법도 조금씩 터득해 나가고 있다. 그것이 나를 지키고 상대와의 관계도 지키는 방법이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착하지 않아도 되고, 굳이 착한 사람이 될 필요도 없다. 내가 편해야 주위가 편하고, 세상도 편하다. 그렇다고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주의가 되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직시하는 것’이야말로 정신건강의 지름길이자 타인과의 건강한 관계를 위한 안전장치를 확보하는 것이다.
다만 지금은 속이 좁고 타인을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이 그리 많지 않을지라도 자신이 가진 그릇을 넓혀가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을 부단히 해 나간다면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의 양이나 강도가 훨씬 작고 약해질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건강한 관계와 더불어 풍요로운 내일을 맞이하게 될 거라 굳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