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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잉 Jul 22. 2021

가족 제도의 이면을 들추는 '아리 애스터'의 영화들

폐쇄적 공동체서 벗어나 공감, 연대하는 공동체 만들기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레이디 맥베스>에서 주연 플로렌스 퓨를 인상 깊게 봐서, 최근 개봉한 <블랙 위도우>에서도 거침없고 솔직한 '옐레나 벨로바'로 분한 그가 더 색다르게 느껴졌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살피다 공포 영화인데 색감이 예쁜 <미드소마>를 발견해 큰 망설임 없이 넷플릭스에서 이 영화를 봤다. 영화가 끝난 후 관심사는 쨍한 대낮의 지옥을 연출한 감독 아리 애스터에게 이어졌고, 이틀 만에 그의 대표작인 <유전>과 <이상한 존슨 가족>까지 몰아서 보게 됐다.      


아리 애스터의 영화에는 공통점이 많다. 우선 삶의 많은 부분을 공유하는 가족과, 사이비 종교 등에 심취한 가족 구성원이 등장한다. 대부분의 남성 캐릭터는 죽음을 맞이하며 '애니'나 '엘렌', '마야' 등으로 대표되는 모성이나 모계 사회에 반감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무엇보다 그는 혈연으로 이어진 채 외부를 상상하지 못하는 가족의 폐쇄성과, 그 관계에서 오는 공포를 기괴한 방식으로 드러낸다.    


<유전>에서 딸 애니에게 '비밀이 많고 이상한 사람들과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는 엘렌은 애니에게 자신의 유서에서 "우리의 희생에 큰 보상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한다. 엘렌이 말한 '희생'은 자신의 핏줄을 잇거나 자신과 가까운 남성의 몸을 중세시대 악마 중 한 명인 '파이몬'에게 바치는 것이었고, 이 과업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남편이나 아들, 손주에게 일련의 행위를 강요한다. 애니 역시 남편 스티브 덕분에 엘렌의 영향력에서 일시적으로 벗어나지만 결국 엘렌의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미드소마>에서도 가족은 주인공 대니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동반자살로 그에게 큰 상처를 안긴다. 이런 가족과 대조적으로 호르가 마을에서 만난 공동체는 성관계와 육아를 공유하며 관계를 소유하지 않고도 집단적으로 강한 결속을 맺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결속은 이 마을이 공동체 유지를 위해 외부인을 끌어들여 멋대로 성관계를 맺게 하고, 공동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외부인을 도륙하는 등의 비윤리적인 행동을 두고도 대니가 호르가 마을의 구성원이 되게 하는 데 기여한다.     


목가적인 척 신비로운 척 다 하더니 결국(...)


핵가족의 한계와 그 극복 


영화를 본 후 가장 먼저 나무위키에 올라온 그의 정보부터 봤다. 그는 어릴 적 가족에게 입은 자신의 트라우마를 영화에 반영했다고 했다. '도대체 어떤 분위기에서 자랐기에...' 그에게 가족은 존중받는 개인이 모인 공동체이기보다 선택권이 없는 상태에서 부당한 일을 그저 받아들여야 하는 불합리한 집단에 가까워 보였다. 가족에 대한 불쾌한 상상력을 극적으로 연출한 <기생충>이 세계적 관심을 갖는 걸 보면, 가족 단위에서 개인보다 집단이 강조되는 모습이 한국만의 문제는 아닌가 보다.


고전문학 평론가 고미숙은 <기생충>에 대해 "핵가족 붕괴의 끝을 보여주는 영화"라고 평가하면서 가족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새로운 공동체를 찾아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현대의 핵가족은 애착과 소유를 중시하며 자본주의적인 욕망을 키우는 곳이다. 이런 욕망의 끝에 놓인 파멸에 치닫지 않기 위해서는 공감과 자유에 기반한 공동체를 구성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고미숙에게 이 공동체는 ‘공부 공동체’였다. 공부가 곧 경제적 기반이 되고, 이 기반으로 다시 공부를 하는 식이다. 모두가 그와 같은 길을 걸을 수는 없겠지만 오늘날의 가족의 외부를 사유할 수 있는 레퍼런스가 된다는 점에서 전혀 근거 없는 주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호르가 마을이 좀 더 윤리적인 방식으로 공동체를 유지해 왔다면, 혈연으로 묶이지 않아 외연을 넓힐 수 있고 기쁨이나 슬픔 등에 한 마음으로 공명하는 이 마을이 관객들에게 다른 의미로 다가왔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스티브의 가족이 심리 상담이나 경찰 외부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받았다면 모든 상황이 파국까지 치닫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게 하지 않았기에 아리 애스터만의 공포 영화가 완성됐겠지만.


아리 애스터의 영화는 내가 속한 가족에서 맡고 있는 '엄마' 역할의 정체성에 질문을 던졌다. 지금은 아이가 어리므로 애착을 형성하게 하고, 때가 되면 밥을 먹이고 건강하게 클 수 있도록 돌봐주는 것이 엄마의 역할이다. 하지만 아이가 스스로를 돌볼 수 있을 만큼 성장한다면? 그때에는 아이가 외부에서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 수 있도록 돕고 싶다. 


그렇게 각자의 삶을 살다, 잠깐 방황하거나 특별한 일로 힘들어하는 아이가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 되거나, 아이의 잠재력과 뿌리를 일깨워주는 정도의 역할을 하고 싶다. 딸이 일자리를 갖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시기는 지금과 배경이 다를테니, '라떼'는 이랬다면서 내 의견을 관철하지는 말아야겠다. 이런 여러 시도가 아리 애스터의 가족관에 자녀가 공감하지 않게 하는 길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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