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한때는 갑이었거든요?> PART.1-9

을 같은 갑이 되어야 하는 이유

by 마인드 오프너

관계 이전에 인간이 있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화자찬하며 격을 높이는 유일한 동물이다. 그 이유로 다른 동물과 달리 두뇌를 쓸 수 있고, 언어를 사용하며 문명을 발전시켜 왔다는 근거를 든다. 잘못 짚어도 단단히 잘못 짚었다. 긍정적인 면 뒤에 숨은 부정적인 면은 왜 말하지 않는가.


인간은 환경을 파괴하고, 다른 생물 종을 영원히 사라지게 만들고, 전쟁을 일으켜 동족상잔의 비극을 일으키는, 지구상의 유일한 생물이다. 심지어 피부색, 인종, 신분, 부의 차이를 이유로 같은 종인 다른 인간을 괴롭히고, 학대하고,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모멸감을 주기도 한다. 그토록 하찮게 생각하는 동물들도 배가 고프지 않을 때는 다른 동물을 죽이지 않는다. ‘만물의 영장’으로서 ‘마냥 쪽 팔려서’ 어디론가 숨고 싶을 정도다.


얼마 전 SPC 노동자가 배합기에 끼여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네티즌 수사대에 의해 밝혀진 회사 측의 행동은 충격적이다. 비슷한 사고가 이전에도 있었음에도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은 전혀 없었다. 사고 사실을 숨기기에만 급급했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노동자의 근로 조건이나 생명이 아니었다. 공장이 정상화되어 벌어들일 돈이 우선이었다.


현장에서 사고 수습을 한 직원들이 트라우마를 호소했음에도 사측은 어떤 배려도 하지 않았다. 사망한 직원의 장례식장에는 빵을 조문품으로 보냈다고 한다. 계약직 사원을 어떻게 생각하길래 이런 천인공노할 짓을 자행하는가. 직원들을 노예나 소모품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짓이다.


맹자는 모든 사람들이 선하게 태어났다는 증거로 사단(四端)을 들었다.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보게 되면 자연스럽게 가엾고 불쌍하게 여기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이 발현한다고 했다. 맹자의 성선설로만 본다면 이들은 사단이 없으니 ‘인간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lion-3012515_1920.jpg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소리는 지나친 자뻑이다.




을의 통쾌한 역전


그들은 ‘을’들을 그토록 하찮게 생각했지만 놀랍게도 그 을들이 시장에서는 ‘소비자’라는 갑으로 변신한다. 소비자로 바뀐 그들이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만든 빵을 사서 먹고 싶었을까? 내가 만든 빵이니 많이 사먹어 달라고 주변에 권했을까? 소비자가 제품을 사주지 않으면 아무리 갑 오브 갑인 기업도 살아남을 수 없다. 이 간단한 사실조차 모른다면 기업의 장래는 뻔하다.


사고의 후폭풍이 거세다. 수많은 소비자들이 불매 운동을 시작하고 있고 다른 소비자들도 동참하고 있다. 뒤늦게 사고의 심각성을 깨달은 회사 대표는 대국민 사과성명을 발표한다고 요란을 떨었지만 흉내내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사태는 눈덩이처럼 커져가고 있다. 짐작컨대 후폭풍의 기세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시장에서 소비자들을 기만하는 나쁜 기업들에 대해서 소비자들은 이미 충분히 학습을 했다. 이미 N유업이나 H사가 나쁜 기업으로 찍혀서 경영 위기까지 겪어야 했다. 그런 사실을 모르지 않을텐데 이러한 상황을 초래한 경영진의 용기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갑과 을은 행정 편의를 위한 표기일 뿐이다. 상대가 나와 동등한 인간임을 잊으면 곤란하다. 상대는 을이니 내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선을 넘는 것이다. 작업 결과를 위해서도, 본인 미래를 위해서도, 회사 이미지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people-431943_1920.jpg 최소한 선은 넘지 말자.




영원한 갑은 없다


‘영원한 갑은 없다’는 한 가지 사실만 명심해도 갑질을 멈출 수 있다. 사회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다. 복잡한 관계는 복잡한 역할을 요구한다. 여기서 갑이 저기서는 을이 될 수 있다. 이런 사실을 망각하면 대대손손 망신당하는 촌극을 벌일 수 있다. 대한항공의 땅콩회항사건은 돈과 권력만 있으면 직원들을 하인처럼 부릴 수 있다고 생각한 재벌 2세의 무지한 행동으로 본인은 물론 집안 전체에 먹칠을 한 사건이다.


권력에 취해 본연의 신분을 잊고 갑질을 하다 신세를 망치는 경우는 국회에서도 볼 수 있다. 국회의원은 우리 사회 최고의 갑이다. 하지만 이들도 당선되기 전까지는 비굴할 정도로 표를 구걸하는 을에 불과하다. 110도 각도로 머리를 조아리고, 허리를 굽히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선거철 전과 후에만 방문하는 시장도 발이 닳도록 드나든다. 그런데 국회의원이 되자마자 안면을 몰수하고 공약을 폐기한 후 온갖 편리와 특혜를 누리는 데 몰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똑똑한 국민들은 말과 행동이 다른 정치꾼을 용납하지 않는다. 선거에서 떨어지고 나서야 전 국회의원께서는 무궁화 배지 없이는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힘없는 을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섬길 줄 아는, 을보다 더 낮은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갑이 되어야 기회가 다시 온다는 사실을 알았어야 한다.


일반인들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대기업에 다니다 명퇴를 당하거나, 독립해서 자신의 사업을 시작하면 그 즉시 을이 된다. 갑의 위치에서 비즈니스 예절을 지키고 행동을 잘한 사람들은 독립했을 때 그동안 기울였던 노력과 성과를 돌려받게 된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사회인으로서 평소의 자기 행동을 외부인들이 어떻게 평가하는지는 조직 밖에서 도움이 필요할 때 비로소 알게 된다.


3년 전에 일을 같이 하며 실무자로 만난 20대 회사원이 있었다. 부탁할 게 있어서 전화했더니 몇 달 전에 퇴사했다고 한다. “자신의 일(그림)을 하고 싶어서 용기를 냈다”고 했다. 열심히 하면 좋은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격려하며 통화를 끝냈다. 갑의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일을 찾아 나선 그녀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soccer-1520875_1920.jpg 선을 넘으면 경고에 이어 퇴장당할 수도 있다.




내가 만난, 을보다 불쌍한 갑들


갑에서 을이 되길 자청하고 기회의 땅을 찾아 나선 이들은 아무 준비도 없이 있다가 등 떠밀려 강제 독립을 한 이들보다 성공 확률이 높다. 회사를 지나가는 정류장이라고 생각해야지 영원히 머물 곳으로 기대고 있다가는 후회할 것이다.


일을 하며 만나는 갑들 중에서 영원히 그 조직에 몸담을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런 사람들은 특징이 있다.


일을 못한다. 학습 능력이 없고,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일머리가 있는 사람들은 처음이라도 프로세스를 가르쳐주면 잘 따라온다. 그런데 이들은 경험이 있으면 일하기 더 힘들다. 본인이 맞다며 고집을 꺾지 않는다. 문제를 사전에 준비하라고 조언해도 허송세월하다가 문제가 닥쳐서야 허둥지둥이다. 문제가 생기면 을에게 떠넘기기 일쑤다. 가장 함께 일하고 싶지 않은 부류다.


소통 능력이 떨어진다. 능력 있는 실무자는 결재권자의 의향을 잘 헤아린다. 결재권자의 의도와 다른 결과물이 나오면 헛수고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소통불통 갑들은 본인 의도를 앞세운다. 그렇다고 결재권자를 설득하지도 못한다. 일이 제대로 진행될 리 없다. 결재권자의 의도를 알려주지 않으니 제작사는 이유조차 모른 채 헛손질만 반복한다. 나중에 어렵게 간 이유를 알고 나면 정나미가 다 떨어진다.


협상을 할 줄 모른다. 본인이 갑이라는 사실을 굉장히 중요시한다. 을과 협상해서 결정 사항이 바뀌면 문제가 생긴 것처럼 여긴다. 그래서 모든 사항을 결정하고 통보하는 식이다. 무리한 요구도 서슴지 않는다. 간혹 마찰이 커져서 제작사들이 사업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결과보다 본인이 편한 게 더 중요하다. 본인이 할 일들을 다 떠넘기고 알아서 해오라는 식이다. 본인이 조금만 노력하면 더 좋은 성과가 나오는 게 보이는데도 귀찮아한다. 이렇게 진행해도 일이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최선의 결과를 기대할 수는 없다.


갑의 위치에 있을 때는 이런 방식으로 일해도 큰 문제 없다. 상사들도 어느 정도 결과만 나오면 문제 삼지 않는다. 정작 문제는 그 자리를 벗어났을 때 생긴다.

contract-408216_1920.jpg 조직에서 나와봐야 본인에 대한 진짜 평가를 알 수 있다.




을은 아무나 하나?


대기업 부장일 때는 명절과 행사마다 찾아오던 을들도 회사를 떠난 자연인에게는 일절 연락하지 않는 게 세상 이치다. 갑의 힘은 회사가 만들지 개인이 만드는 게 아니다. 특별한 기술이나 전문 지식, 괄목할만한 경력이 없다면 퇴사한 후에는 수입의 큰 낙차를 감수해야 한다.


처음에는 자존심 때문에 비슷한 대우를 요청하지만 연락이 아예 없거나 면접에 자꾸 실패하고 나면 알아서 포기하게 된다. 그때에서야 회사 안이 얼마나 안락하고 편안했는지 깨닫는다. 대단하게 보였던 내 능력 대부분이 실상은 회사의 휘광 덕분이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독립을 생각하는 갑이라면 자신을 평가할 때 가혹할 정도로 냉정해야 한다. 아예 자신을 제 3자로 보고 전 재산을 투자한다는 심정으로 꼼꼼하게 따져야 한다. 성공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는다면 절대 회사를 나오면 안 된다. 능력이 부족할수록 회사에 남아 있어야 한다.(물론 그게 마음대로 안 되는 게 문제이긴 하다.)


회사원들끼리 농담 삼아 “ 회사 때려치고 치킨집이나 카페 할까?”라는 대화를 하는 경우를 본다. 잠깐 요식업에 발을 담궈 본 경험으로 이야기하자면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다. 창업해 보면 치킨집과 카페가 심심풀이 땅콩 삼아서 할 수 없다는 걸 절실하게 깨닫게 될 것이다.


하루가 멀게 치킨집과 카페가 망해나가는 게 현실이다. 부동산114가 2020년 행정안전부의 지방행정 인허가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2010년부터 2020년 3월까지 서울에서 인허가를 받은 휴게음식점 중 폐업까지의 기간이 3년 미만이 52.2%였으며 1년 안에 문을 닫는 경우도 12.9%에 달했다.


“~나 해볼까?”라고 말하는 사람치고 성공한 경우를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창업 현장은 죽어라 노력하고 준비해도 현상 유지조차 어려운 무한경쟁의 콜로세움이다. 해당 업종을 얕보는 사람이 잘 될 턱이 없는 것이다.


coffeehouse-2600877_1920.jpg 누구나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카페도 막상 해보면 '죽겠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을 같은 갑이 경쟁력을 갖는다


자영업을 준비한다면 재직 중에 철저하게 을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자영업 사장은 본인을 제외한 모든 사람을 갑으로 대우해야 하는 자리다. 심지어 직원들조차 갑이다. 함부로 대하면 말도 없이 그만둔다.


상대를 부리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상대가 요구하기 전에 내가 무엇을 해줄 것인지 떠올리고 배려해야 한다. 그런데 평생 상대방을 부려먹을 행동을 한 사람이 과연 생각을 바꿀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그래서 습관이 무서운 것이다.


2년 전에 집앞에 있는 T베이커리 사장이 바뀌었다. 인테리어를 싹 뜯어고치고 영업을 시작했다. 동네 아줌마 통신에 의하면 실제 주인은 은행 고위직이라고 했다. 노후를 위해 큰돈을 들여 베이커리를 차렸다고 했다. 가끔 빵을 사러 가면 주인은 안 보이고 매니저로 보이는 여자분과 알바들만 있었다. 1년이 지나자 주인으로 보이는 40대 여성이 혼자 손님들을 맞았다. 이따금 남편으로 보이는 중년 남자가 대형차를 몰고 와서 가게에 머물다가 함께 퇴근했다.


가게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장사에 대한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특히 남편은 가게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4인 테이블을 혼자 차지하고 앉아서 신문만 읽었다. 손님들이 들락날락해도 본체만체였다. 본인의 행동이 가게 분위기를 망치고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하긴 그 사람이 소문대로 은행의 고위직이라면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게 오히려 이상한 거다. 예상대로 가게는 6개월을 못 넘기고 폐업했다. 베이커리를 운영하면서 직장 생활 중에 모은 돈을 다 탕진했으리라 짐작했다.


회사에서의 갑이었던 과거는 야생에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적응과 정착을 방해하고 발전을 저해한다. 을로서 시작하려면 갑의 과거를 완전히 벗어던지고 새로 시작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혹시 일하면서 만나는 을이 있는가? 그 사람이 업계에서 유명하고 능력을 인정받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행동과 생각을 면밀하게 관찰해보라. 그 사람을 롤모델로 삼고 업무 방식을 바꿔 보라. 그렇게만 해도 업무 성과는 비약적으로 올라갈 수 있다. 을같은 태도와 사고를 가짐으로써 오히려 갑의 위치를 유지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일어날 수도 있다.

loaf-2436370_1920.jpg 본인의 역량을 생각하지 않고 크게 일을 벌이면 1년 사이에 몇억 날리는 건 쉽다.




우리는 누구나 같다


다시 한 번 이야기하지만 갑을의 구분은 행정 편의를 위한 것일 뿐이다. ‘나는 갑이니까 마음대로 해도 되고, 너는 을이니까 내가 시키는 대로 해’라는 발상은 누구에게도 지지받지 못한다. 사실상 전통적인 갑을 관계가 통용되는 시대는 우리 세대에서 끝나게 될 것이다.


첨단 기술과 AI의 발전, 디지털 기술의 유입 등으로 부를 실현하는 기준이 바뀌었다. 자본 없이 아이디어만으로 수천억원의 부를 일굴 수 있는 시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갑보다 큰 을이 나오기도 한다. 모든 사람들이 겨우 배달 음식 브로커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던 ‘배달의 민족’의 회사 가치가 4조 7천억원이나 될 줄 누가 짐작이나 했겠는가. 어제의 을이 오늘의 갑을 추월하는 현상도 더 이상 어색하지 않게 될 것이다.


갑을 이전에 인간이라는 생각이 먼저 나야 한다. 동등한 입장에서 공통의 목표를 향해서 함께 전진할 때 좋은 성과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 현장에서 일어나는 대부분 갈등과 문제는 이러한 기본을 지키지 않아서 발생한다.


관계에 대한 생각을 바꾸면 일의 효율성과 성과마저 크게 높일 수 있다. 용병술이 별건가. 휘하에 둔 사람들을 편애하지 않고, 각자의 개성과 장점을 최대한 살려서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사람을 쓰는 것 아니던가. 고래로 용병을 잘한 장군이나 기업인치고 불공정한 인간관계로 어려움을 겪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다.


그럴 리 없겠지만 혹시라도 대기업 회장님이 이 글을 읽는다면 회사 조직을 운영할 때 차별 없고 불공평함 없는 용인술을 발휘해 보길 진심으로 권한다. 쓸만한 인재가 별로 없다고 한탄하기 전에 본인과 회사의 용인술에 문제는 없는지 확인하는 게 먼저다. 직원들의 내면에 숨은 저력을 끌어내는 것, 사실 그렇게 어렵지 않다.

softball-team-1574970_1920.jpg 용병술의 기본은 공정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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