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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화 Aug 05. 2021

나의 사랑, 나의 자전거(feat. 다시 만난 세계)

내 청춘의 유일한 목격자, 미야타 자전거에 대하여

‘잘 지내니^^'


카카오톡에 ‘야호’라는 별칭의 사람이 구 남친스러운 멘트를 날려 왔다. 이상하다. 내 기억에는 연락이 올 만큼 아름답게 헤어진 애인이 없다. 혹시나 싶어 카톡 프사를 보니, 호영 (가명)선배다. 그로 말할 것 같으면 구 남친의 절친으로서, 내게 10년 전 자전거를 빌려준 호인이다. 가끔 잊을 만하면 그는 이렇게 자전거가 잘 있는지 안부를 물어온다. 장난으로 눙친 것도 여러 번, 이제는 정말로 호영 선배에게 자전거를 돌려줘야 할 것 같다. 구 남친에 대한 미움도 함께.


그 자전거를 만난 것은 2011년 늦여름 밤, 한 공원에서였다. 자전거 브랜드에 문외한인 내가 봐도 그것은 희소성 있는 고가의 모델이었다. 지금은 단종 된 일본 미야타 브랜드의 접이식 미니벨로로, 내구성이 좋고 색감이 특이해서 마니아틱한 느낌을 풍기는 자전거였다. 그걸 무료로 렌트해주겠다니 의아했다. 호영 선배는 좋게 보면 호인이고, 어떻게 보면 호구 같은 사람이긴 했지만 이건 좀 이해가 안 가는 거래였다. 아마도 당시 남친이었던 인간이 뒤로 뭔가 손을 썼으리라. 속으로 신나서 죽을 것 같았지만 티내면 너무 없어 보이니까 짐짓 관심 없는 척했다. “진짜 나 이거 타도 돼?”라고 묻기만 하고 심드렁한 얼굴로 바퀴를 굴려보았다. 마음 속 풍경에서 나는 이미 ET처럼 달을 향해 발을 구르고 있었다. 나만의 자전거를 가진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신난 나를 그려 봄. 

그 무렵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무진 쏘다녔다. 갓 취직한 남친은 하이브리드 자전거를 마련했다. 그에게도 첫 자전거였다. 나의 미야타와 그의 자전거는 한 쌍의 잠자리처럼 한강 지구를 갈지자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달리고 또 달렸다. 가장 인상적인 구간은 서오릉에서 구파발을 거쳐 불광천길을 따라 내려와 한강으로 접어드는 코스였다. 노을 질 무렵 불광천길 풍경은 무척 아름다웠다. 얕은 개천에는 물이 쉬지 않고 흘렀다. 개천 둑에는 잡초와 들꽃이 무성했다. 가장자리에는 잘 조성된 산책길과 자전거길이 나란히 뻗어 있었다. 그 길을 따라 나지막한 빌라가 줄지어 서 있었다. 그리고 이 풍경의 끝에는 저 멀리 북한산과 끝도 없는 하늘이 펼쳐졌다. 적당히 후줄근해보이고 자연친화적인 그 동네가 마음에 쏙 들었다. 


자전거를 타며 나는 결심했다. 결혼하면 꼭 이 동네에 와서 살겠다고. “결혼? 그거 누구랑 할 건데?” 하면서 나는 여덟 살 많은 남친을 놀려대곤 했지만, 사실 결혼을 한다면 그와 하지 싶었다. 다가구주택에 방 두 칸짜리 전세라도 얻어 살면 좋겠다, 벽지는 깔끔하게 바르고, 커다란 테이블을 들여야지, 그리고 현관문에는 당연히 우리의 자전거가 다정하게 포개져 있으리라는 상상을 하곤 했다.


몇 년 뒤, 그는 바람이 났다. 나도 아는 여자였다. 몇 달 뒤에는 결혼 소식이 들려왔다. 분노와 슬픔, 우울함으로 나는 앓아누웠다. 아무것도 없을 때 차인 것이 견딜 수 없었다. 취업준비생 2년차, 원서 단계부터 줄줄이 탈락해, 남친한테 차여, 통장에 돈도 없어, 알바 자리도 없어, 세상으로부터 받은 타격에 나는 도무지 일어나질 못했다.


내가 오죽 불쌍했으면 구 남친의 또 다른 절친인 선배 B가 커피 한잔 사주겠다며 찾아왔다가 내 신세한탄을 한참 듣더니 텀블러를 사주고 사라졌다. 나는 생각했다. ‘오호라, 이게 측근으로서 건네는 위로라는 건가? 그렇다면 저 자전거는 내가 먹어버려야겠다’ 호영 선배는 (죽도록 미운) 구 남친의 절친이니까, 이 정도는 내가 가져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우리가 헤어지고도 1년이 지나도록 내게 자전거를 돌려달라는 말이 없었다. 나는 차차 그 자전거를 정말 내 것이라 생각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무허가 판자촌에 살아도 오래 살면 아무리 공유지라 한들 함부로 못 쫓아낸다. 누가 소유하는지보다 누가 얼마나 오래, 어떻게 사용하는지가 더 중요한 법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나 혼자 라이딩


실연의 상처에도, 계속 누워 있을 수만은 없었다. 어쨌든 취업 준비는 계속해야 했다. 혼자 남은 나는 열심히 자전거를 탔다. 매일 집에서 도서관까지 왕복 1시간 반이 걸리는 거리를 자전거로 내달렸다. 한여름 땡볕쯤은 그대로 돌파했다. 기자가 되기 위해 논술시험을 준비하던 그때는 하루하루 막막해도 내 길을 찾아가고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나는 글을 통해 세상을 좀 더 살 만한 곳으로 바꾸겠다는 신념이 있었다. 두 발만 구르면 어디든 갈 수 있는 자전거를 타고, 언론사 시험 최종면접도 가고 떨어졌다가 다시 도전하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혹시나 하고 써본 출판사에 덜컥 합격했다. 2호선 지옥철을 타고 출퇴근을 하면 많지는 않았지만 따박따박 월급이 들어왔다. 점심으로 파스타를 사먹고 드립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되었다. 살 수 있는 것은 조금 많아졌고 운신의 폭은 그만큼 줄어들었다. 편집자가 된 나는 상사와 사장의 입맛에 맞는 문구를 때려 맞추며 기획서를 썼다. “백만 독자가 열광한 베스트셀러” “마법같이 일상이 정리되는 **하는 법” 같은 독자를 부르는 세일즈 단어로 띠지를 채워 나갔다. 분명 글을 만지며 돈을 벌게 되었는데 삶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자전거는 주말에만 가끔 타는 물건이 되어갔다.


퇴사를 진지하게 고려할 무렵, 불광천길에 살림을 차렸다. 물론 다른 남자와 함께였다. 우리가 신혼집을 구하느라 부동산 중개업소를 전전하던 그때, 예전에 보았던 불광천길 광경이 섬광처럼 스쳤다. 그래, 그 동네로 가자! 나는 남편과 함께 불광천길을 부지런히 달렸다. 한강은 물론 팔당댐까지 무작무작 자전거를 타고 내달렸다. 그러는 동안 구 남친과의 기억은 모두 다 새로운 추억으로 덮였다.



봄날의 불광천길 풍경 



주인공은 나였다. 웹툰 <유미의 세포들>에서 남자친구가 바뀌는 동안, 유미의 시점에서 삶은 계속된다. 유미는 부서를 옮기고, 작가로 데뷔해 자기만의 길을 찾아간다. 유미에게는 독자가 있다면, 내게는 자전거가 있었다. 10여년을 함께하는 동안 이 자전거는 내 파트너가 바뀌고, 하던 일이 바뀌는 것을 목격했다. 나는 잠시 잠깐 아무개와 함께 봤던 예쁜 동네를, 내 삶의 터전으로 선택했다. 이제는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새로운 코스로 자전거를 끌고 훨씬 멀리 갈 수 있다. 자, 미야타 말해보렴. 너의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얼마나 주체적인지, 삶을 스스로 개척해나가는 사람인지 너는 잘 알고 있겠지.



특별한 기적을 기다리진 않지만


미야타를 타고 달릴 때마다, 클라이막스 구간에서 꼭 듣는 노래가 있다. 바로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다. 페달을 밟으며 이 노래를 들으면 너무 신나기 때문에, 따라 부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특별한 기적을 기다리지 말라든지, 목적어는 없이 자꾸만 사랑한다고 되뇌는 것이 꼭 과거의 자신을 향해 하고 싶은 말처럼 들린다. 여기서 함께 하는 것은 오로지 나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통틀어서 가장 껴안아주고 싶은 존재.


2016년, 이대에서도 이 노래가 울려퍼졌다. 그해 8월, 이대 학생들이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부정입학 문제를 제기했고, 이 불씨는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로 옮겨붙어, 12월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졌다. 그때 이대 학생들은 자기들이 역사를 쓰고 있는 줄 몰랐을 것이다. 그들은 경찰들에게 끌려가지 않으려, 시위하던 친구들과 어깨 걸고 ‘다시 만난 세계’를 떼창하고 있었다.


스스로의 가능성을 의심하는 여자들은 모두 이 노래를 불렀다. 이대에서 세상을 뒤흔들 공을 쏘아올린 그때, 나는 소시민답게 회사에 사표를 제출했다. 비록 세상을 바꾸지는 못할지라도 최소한 나 자신으로 살고 싶었다. 가장 나다운 순간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불안하지만 자유롭게 내 글을 쓰던 그 시절로 말이다. 특별한 기적을 기다리지는 않는다. 다만 홀로 자전거를 타고 도서관을 다니던 그때처럼, 내 선택을 믿고 꾸준히 글을 쓰며 나아가고 싶다.


소녀시대 <다시 만난 세계> 레전드 버전 https://youtu.be/TAp-4Dfzl_c

이대에서 울려퍼진 <다시 만난 세계> https://youtu.be/Lo3UMxYFNW0



언제까지라도 함께하는 거야 


10년 만에 자전거를 돌려달라고 연락한 호영 선배에게 이렇게까지 긴 이야기를 들려주지는 않았다. 그저 이 자전거가 나를 불광천길이 있는 동네로 데려다주었다고, 지금까지 나의 좋은 친구였고, 오랫동안 빌려줘서 고마웠다고 전했다. 혹시나 싶어 매매 가능한 중고가를 제시했는데, 침묵 끝에 선배는 말했다. 선물로 주고 싶단다. 소유권을 아예 넘겨줄 테니 돈은 됐고, 나중에 기회 되면 선물을 달라고 했다. 부담스럽고 미안하고 고마운 심정을 구구절절 전하지 못하고, 나는 또 짐짓 점잖은 어투로 사양하다 말다 엉거주춤 받는 모양새가 되었다. 처음 자전거를 빌리던 날처럼 말이다. 이 글을 빌려 호영 선배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더위가 한풀 꺽이면 불광천길을 달려봐야겠다. 

이제는 내 소유가 된 미야타 자전거를 타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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