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감상] 하루의 축, 김애란 作

단편에 대한 단편

by 오로지오롯이


〈하루의 축〉은 김애란의 세 번째 소설집 『비행운』에 수록된 작품이다. 『비행운』에는 8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너의 여름은 어떠니〉, 〈벌레들〉, 〈물속 골리앗〉, 〈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 〈하루의 축〉, 〈큐티클〉, 〈호텔 니약 따〉, 〈서른〉이 그것이다. 이 작품집은 ‘비행운’이라는 제목 그대로, 위로 길게 뻗어가는 꿈과 동경과, 현실에서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불운 사이에 끼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청년들, 빚과 비정규직, 불안정한 관계 속에 놓인 인물들, 그리고 살아남았지만 아직 어딘가에 걸려 있는 사람들이 이 소설집의 주인공들이다. 수록작 중에는 젊은작가상 대상 수상작 〈물속 골리앗〉, 이상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도 포함되어 있어, 2010년대 김애란 문학의 핵심 성취를 한 권으로 볼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작품 스타일


김애란은 한국 현대문학에서 가장 독보적인 감각을 가진 작가 중 한 명이다. 그녀의 문장은 디테일이 풍부하면서도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고, 인물의 감정을 직접 설명하지 않고도 장면과 사물을 통해 독자가 자연스럽게 감정을 느끼도록 한다.


또한 그녀의 글에는 일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거리감, 상처를 다루되 과장하지 않는 절제, 삶의 무게를 견디는 인물들을 향한 조용한 연민이 흐른다. 그 연민은 결코 감상적이지 않고, 오히려 정확한 관찰과 섬세한 언어를 통해 고요하게 전달된다. 김애란의 소설은 단순한 일상 묘사에 머무르지 않고, 그 일상 뒤에 숨은 결핍·상처·그리움·불안 등을 조용히 꺼내어 독자의 마음에 닿게 한다. 그래서 그녀의 작품을 읽고 나면, 특별한 사건이 없어도 마음 한구석이 오래도록 흔들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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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작 中 [하루의 축] 감상


물건이 많아도 어지럽지 않은 책상처럼


김애란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떠오르는 이미지는 정리 잘 된 책상이다. 이 소설도 그렇다. 책상 위에 노트 하나, 연필 하나만 있어도 산만해 보일 수 있는데, 이 소설은 노트, 펜, 손톱깎이, 포스트잇, 과자, 노트북 같은 소품이 가득 올라와 있는데도 전혀 어지럽지 않다. 오히려 정돈된 질서감이 느껴진다.


초반부터 등장하는 밥통 불빛, 버스에서 마주친 여학생, 용역업체 오토바이, 보일러의 온수, 브래지어, 폐지 같은 요소들은 따로 떼어놓고 보면 서로 어울리지 않는 조각 같다. 그런데 김애란의 문장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이 모든 소품이 주인공의 캐릭터, 생활감, 정서를 설명하는 장치로 제자리를 찾아 앉는다. 디테일이 많아서 좋은 소설이 아니라, 디테일이 쓰이는 자리가 정확해서 좋은 소설이라는 걸 이 작품이 잘 보여준다.



디테일과 서사를 봉제하듯 꿰매는 기술


두 번째로 인상 깊었던 건, 서사와 서사 사이를 잇는 방식이다. 이 소설은 작은 이야기들이 계속해서 생겨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원형 탈모, 아들의 부재, 버려진 마카롱 같은 설정은 그냥 지나가는 에피소드가 아니라 끝까지 다시 돌아오는 장치들이다. 작가는 초반에 흘려 보인 요소들을 끝까지 놓치지 않고 반복해 사용하면서, 이야기의 처음과 끝을 조용히 연결한다.


그래서 사건과 사건을 건너뛸 때 비약이 느껴지지 않는다. 봉제선이 보이지 않는 옷처럼, 서사의 이음매가 드러나지 않는다. 독자는 어디서 장면이 넘어갔는지도 모르는 사이에 다음 장면으로 옮겨간다. 이 자연스러움이 바로 김애란 서사의 탄탄함이고, 읽는 동안 어디가 멈춤이고 어디가 전환인지를 따질 틈을 허락하지 않는다.



공항과 화장실, 서로 다른 이미지가 부딪힐 때


이 작품은 공간 선택부터 이미 소설적인 긴장을 안고 있다. 공항과 공항 화장실. 공항은 세련됨, 이동, 기대, 출발 같은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공간이다. 반면 화장실은 작가가 표현하듯 “전 대륙의 먼지가 쌓이고, 별 빛깔의 체모가 발견되는 곳”이다. 말 그대로 세계의 뒷면이다. 이 두 공간이 겹치는 순간, 그 안에 서 있는 인물의 감정도 동시에 복잡해진다.


공항은 떠나는 사람과 돌아오는 사람이 섞여 있고, 노는 사람과 일하는 사람이 뒤섞여 있는, 이미지가 끊임없이 교차하는 공간이다. 그래서 뭔가 특별한 사건이 없어도 긴장감이 생긴다. 김애란은 이 공간의 대비를 통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잠시 머물러 있는 사람’의 상태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추석 전날이라는 시간 설정도 여기서 힘을 더한다. 모두가 집으로 돌아가는 날에, 주인공은 공항 화장실에서 타인의 시간을 닦아내며 하루를 보낸다.



설명보다 화면이 먼저 떠오르는 소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문장이 아니라 화면이다. “정차된 항공기들은 모두 앞바퀴에 턱을 괸 채 눈을 감고 그 바람을 느끼고 있었다.” 같은 문장은 장면과 감정을 동시에 그려낸다. 비행기들이 마치 사람처럼 ‘턱을 괴고 바람을 느끼는’ 모습은 공항이라는 거대한 시스템의 평화와, 그 옆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한 채 서 있는 주인공의 감정을 묘하게 겹쳐 놓는다.


이 작품은 인물의 감정을 직접 말로 설명하기보다는, 사물과 풍경, 동작을 통해 감정을 드러낸다. 그래서 읽는 동안, 마치 잘 찍힌 단편영화를 한 편 보듯 시각적인 감각이 강하게 작동한다. 텍스트를 읽는데도 카메라 앵글이 따라 움직이는 느낌이 드는 건, 김애란의 문장이 ‘보여주기’에 최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루를 그려놓고, 삶 전체를 보여주는 방식


이 작품의 제목은 '하루의 축'이지만, 사실 이 하루는 특별한 사건이 폭발하는 날짜가 아니다. 추석 전날이라는, 조금은 감정이 예민해지기 쉬운 명절의 주변부일 뿐이다. 주인공은 이날만큼은 무의미한 시간을 살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결국 아들의 ‘사식 요구’ 편지를 받으면서 다시 익숙한 일상으로 회귀한다. 명절의 감성조차, 그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진 못한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바로 그 점 때문에 이 소설은 더 깊이 다가온다. 김애란은 하루를 정교하게 그려냄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그 하루 뒤에 이어졌을 수많은 날들을 자연스럽게 상상하게 만든다. “이 하루가 이렇다면, 이 사람의 삶은 늘 이랬겠구나”라는 감각이 따라온다. 단 한 날의 촘촘한 기록으로, 한 사람의 삶 전체를 보여주는 방식. 이것이야말로 김애란 단편이 갖는 힘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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