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다시 내가 꿈틀거린다.
나는 아직 물류회사를 다니고 있다.
다닌 지 1년이 넘었다.
사무직 차장자리를 박차고 나와 물류회사 계약직 사원으로 2년 차에 접어들었다.
물류회사의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춥다.
머리 쓸 일이 적은 대신 몸 쓸 일이 많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도 20대부터 60이 가까운 나이의 남녀노소가 함께 뒤엉켜 있다.
말도 많고 탈도 많다.
지난 1년은 그전 2년과 상반되게 지냈다.
물류회사를 들어오기 전엔 회사생활을 쪼개 출퇴근, 점심시간엔 자기 계발, 수익화 강의에 열을 올리며 분단위로 시간을 쪼개 바쁘게 지냈다면
물류회사 계약직으로 들어온 뒤론 몸 쓰는 일이라 그런가 체력적으로도 한계가 왔고, 시키는 일을 반복적으로 해서인지 정신적으로 무기력함을 느꼈다.
물류회사에서 수백 명이 일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이렇게 다양할 수가 있나 싶다.
미친 듯이 열심히 일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분위기를 따라간다.
어느 정도 일하면서 요령을 피우는 사람도 많고, 정말 해도 너무하다 싶게 일을 안 하고 노는 사람도 부지기수.
아둥바둥했던 19년의 회사생활. 그 중에서도 가장 치열했던 마지막 2년.
회사가 없어도 나만의 길을 빠르게 찾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무산되고, 결국은 물류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나.
물류에서 기본생활비를 벌면서 뭐라도 해보겠다고 한지 1년이 넘었건만 결괏값이 미약하디 미약한 현실상황에 문득 현타가 왔다. 내가 왜 이런 상황을 만들었나 싶어 한동안 모든 걸 내던지고 될 대로 돼라 한지 1년.
오늘은 몸 쓰는 일이 아닌, 간단한 전산 입력을 50대 중반, 후반인 언니 두 명과 함께 했다.
노트북에 익숙하지 않은 언니들을 옆에 세워놓고 최대한 쉽게 전원부터 설명하기 시작했다.
원래도 누군가에게 뭔가 가르쳐주는걸 좋아라 하기도 하지만
노트북은 어떻게 켜면 되는지, 사용자 로그인은 어떻게 하면 되는지, 북마커는 어떻게 들어가면 되는지 한차래 얘기를 듣고 직접 해보겠다며
노트북 전원을 꺼달라고 하면서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한 땀 한 땀 배워보려고 하는 그 모습이 어찌나 예뻐 보이던지.
추운 곳에 서서 일하는 작업이라 잠깐 쉬고 오자고 얘길 해도
"재밌다~ 배우고 싶어. 더 해보고 싶어."라며
나보다 열 살이나 더 많은 언니들이 너 한번 나한번 컴퓨터를 만지작 거리는 모습에 미소가 지어젔다.
간단한 단축키부터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하나하나 알려주고 있노라니 배움에 열정적이던 과거의 내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그래 맞다.
나는 원래 열정적이고 배우기를 좋아하고 나누기를 좋아하던 그런 성격이였지?
그래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기력한 모습은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오늘부터 다시 내 모습을 찾아보자.
돈벌기 위한, 나와는 맞지 않는 남들의 방식으로 헛된 열정을 태우다 벌러덩 드러눕지 말고
이번엔
내가 좋아하는 일로 매일매일 조금씩 채워가 보기로
이제서야 아주조금.. 내가 좋아하는게 뭔지 알 것 같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