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한 삶

이제는 살아도 되지 않을까

by orosi

그 여름 나무 백일홍은

무사하였습니다.


한 차례 폭풍에도, 그 다음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아 쏟아지는 우박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습니다.


그 여름 나는

폭풍의 한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여름 나의 절망은 장난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지만 여러 차례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넘어지면 매달리고 타올라 불을 뿜는 나무

백일홍

억센 꽃들이 두어 평 좁은 마당을 피로 덮을 때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


그 여름의 끝 중에서.


무사한 삶이 내게 와줄지 나는 알지 못한다.

남들 몫이 되기는 참 쉬워 보이는데

감히 함부로 말하지 못하는 건.

누구나 그 깊이만 다를 뿐 자신의 삶이

무탈하지 못함에 괴로울 수 있어서다.


둘째 아이의 결핍을 얼마나 괴로워했던가.

인공수정 5번, 시험관 6번, 그리고 잔뜩 긁어내야 했던 나의 아기집 수술.


그러느라 혹사시킨 탓에 이아이가 이렇게

아프게 태어난 거라고 얼마나 죄인 되기를

자처했던가.


아들러 덕분일까.

<미움받을 용기>가 내게 준 빛은 희미했지만 밝았다.


주로 불행을 선택했던 내 삶에

슬플지 말지에 대해 기꺼이 선택권을 쥐어준 책.


엄마의 딸로.

딸들의 엄마로.


나는 아프지 않기는 어려우나

이왕이면 덜 아플 것을 선택했다. 덕분이다.


길을 안내해 줄 사람은 곁에 없지만

함께 걸어줄 책이 있다. 재밌다.


2월 28일.

내 아이 재하가 두 번째 수술을 앞두고 있다.

엄마가 강해져야 한다고 함부로 말하거나 듣지 않을 것이며 강해지고 말고는 내가 정한다.

슬프고 말고도 마찬가지다.


다행인 건 이제 내게 꽤 단단한 딱지가 자리 잡았고,

나는 내 마음을 아이들에게 물들도록 돕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매번 아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 어렵기는 하다만^^



신기하다. <열두달나무아이>의 배롱나무(백일홍)아이? 8월마지막날 세상에나온 우리재하는 한여름햇살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