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살리는 일 들 중 일곱, 아이크림과 선크림 바르기
오래전, 전철을 탔을 때 보았던 어떤 부부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날은 주말이었고, 전철에는 사람이 꽤나 있었다. 많은 사람들 가운데 나의 시선을 끄는 사람들이 있었다. 내가 앉은자리 맞은편에 어떤 부부가 돌도 안 돼 보이는 아이를 안고 앉아 있었는데 부부의 모습이 너무 상반되어 호기심에 그들을 자꾸 바라보게 되었다. 아빠로 보이는 남자의 모습은 정말 잘 차려입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누가 봐도 결혼식에 참석하는 옷차림이었다. 그런데 옆에 있던 여자는 그 아빠인 남자와 함께 가는 사람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행색이 초라했다. 머리모양이나 화장은 둘째 치고, 무엇보다 옷차림이 마치 지금 집에서 바로 나온 사람 같아 보였다. 정확한 복장이 기억나지 않지만 검은 레깅스에 긴 티셔츠를 입었던 걸로 기억한다. 처음에는 둘이 관계없는 사람이구나 생각했는데 둘이 아이 관련 대화를 하는 것을 보고 ‘둘이 부부구나’를 알 수 있었다. 처음에는 속으로 남자를 비난했다. 자기만 저렇게 차려입고 옆에 있는 아내만 아이를 돌본다고 생각했다. 나는 결혼하기 전이라 육아의 세계를 잘 몰랐지만 눈에 보이는 모습은 남편이 참 못돼 보였다.
그 모습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나한테 더 인상적이었는지 꽤 오랫동안 그들의 모습이 잊히지 않았다. 나는 정확히 그들의 사정을 잘 모르면서도 내가 추측하는 대로 그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남편은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이고 아내를 안쓰러운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요즘 그 부부의 모습을 다시 떠올리면서 생각이 좀 달라졌다. 내가 나를 대하는 방식, 내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되면서 지하철 부부의 아내분에 대한 시각이 달라진 것이다. 지하철 부부의 남편이 정말 자신만 생각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볼 일을 보고 아내를 만난 걸 수도 있고, 외모 꾸미는 것이 중요한 사람일 수도 있다. 그 자세한 내막까지는 모르는 것인데 나는 내가 보고 싶은 대로 그 남편을 판단했다. 아내도 마찬가지다. 어떤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그 아내를 안쓰럽게 생각하며 피해자의 위치에 놓고 바라보았던 것이다. 그들은 그냥 그들일 뿐이고, 그들의 상황을 나는 모르면서 내가 보고 싶은 대로 그들을 보고 판단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외모에 큰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를 다시 들여다보면서 알게 되었다. 나는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는데 그걸 애써 감추기 위해 외모에 관심 없는 척을 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통통하다 못해 뚱뚱했던 시기를 보냈던 나는 어른들의 걱정이라는 이름의 비교를 들으며 사춘기를 보냈다. 그 여파로 지금은 전혀 뚱뚱하지 않은데도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 몸으로 나를 설명했다. 흔히들 말하는 미용몸무게가 아니라서 그럴까? 나는 내 몸이 다이어트가 필요한 몸이라고 생각하기 일쑤였다. 미용이 아닌 건강의 문제로 체중감량을 할 때도 속으로는 내 몸무게를 미용의 기준으로 바라보며 목표치를 세웠다.
사실은 예쁘고 싶었다. 그리고 체중으로 누군가의 입에 오르내리고 싶지 않았다. 오르내리는 일이 반복될수록 나는 나도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나의 외모를 스스로 깎아내리고 외모를 회피하기 시작했다. 외모를 꾸미는 건 소위 날라리들이라 불리는 사람들이나 하는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말이다. 밝고 빛나게 웃으며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움에 질투가 났었다.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자신의 취향을 아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면서 그러지 못하는 나를 향해 비난의 눈초리를 스스로 보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나는 외모에 관심이 없는 사람으로 나를 생각하고 나는 외모만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이 더러운 세상을 비난했다. 외모가 너무 이쁘고 멋지면 그 값을 한다는 논리로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가끔 아니 자주 그 논리가 깨지는 날들이 있었다. 밝고 이쁜데 마음까지 고운 사람들을 만난 것이다. 그들을 보면서 나는 또 생각했다. 가정환경이 좋았을 거라고 말이다. 이 모든 것은 정말 부족한 나의 생각에 대한 고백이다.
지하철 부부로 다시 돌아가서 그 아내를 떠올리면 이제는 그런 생각이 든다. 그 아내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내가 모르는 사정과 상황이 있으니 그 아내의 마음을 가늠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또 아무 관계도 없는 타인인 내가 그들을 이렇다 저렇다 평가해서도 안 된다. 나는 아내가 어떤 사람이었을지 궁금한 마음이 드는 동시에 그 당시 내가 왜 그 아내를 안쓰럽게, 불쌍하게 생각했는지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그 당시 그 아내를 보며 동질감이 들었던 것 같다.
나를 꾸미고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것이 어색했던 그 시기의 나에게 말이다. 나를 대하는 태도가 스스로 적대적이고 때로는 부끄럽다고 생각했던 그 시기의 나.
나의 취향을 발견하고 나에게 어울리는 것을 찾아가는 것을 시작하면 다시 내가 누군가의 비교에 오를 거라고 생각했던 나. 그들의 비교가 없더라도 스스로 비교를 했던 나.
그 시기의 내가 그 지하철 아내를 보면서 안쓰럽다고 생각한 것은 사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아니었을까?
여전히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 나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찾는 것에 더디다. 나이가 들어가며 젊음이 사라진 그 자리에 나의 취향과 나만의 스타일을 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습관이 들지 않아 자주 그 부분들을 놓치고 뒤로 밀어 넣는다. 한 번에 다 하는 것은 어려우니 천천히 해 나가자고 마음먹고 한 일이 아이크림과 선크림을 바르는 일이다.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건강하고 밝아지기 위해, 화장을 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시작했다. 이런 기본적인 것도 잘해주지 못해서 나에게 미안했다. 마음을 알아가고 그 마음을 이해해 주는 것도 회복의 과정에서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나의 몸, 나의 건강을 위해 하는 일들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를 사랑스러운 눈빛과 손길로 어루만져주면서 스스로를 더 오랫동안 볼 수 있는 그 시간도 나에게는 참 중요한 시간이 되었다.
자신을 잘 돌보는 것만큼 소중한 일이 또 있을까?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그런 소중한 일을 소중하게 생각하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