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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이 Sep 24. 2015

집에 오니 엄마는 혼자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었다.

잊지 말아야 하는데, 자꾸만 잊어버린다.

집에 오니 엄마는 혼자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었다. 아빠 아직 안 왔어? 엄마는 말이 없었다. 텔레비전 소리에 듣지 못했나 보다. 그래도 어떻게 사람이 왔는데 한 번 보질 않지. 방에 들어가 가방을 놓고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뭘 그렇게 재밌게 봐? 엄마 옆에 앉으며 물었다. 이번에도 엄마는 답이 없었다.

오래된 개그 프로의 재방송이었다. 웬일로 이런 걸 보고 있대? 간혹 케이블로 재방송을 볼 때면 본방송을 봐야지 뭐 이런 걸 보냐며 채널을 돌리던 엄마다. 게다가 지금은 한창 드라마가 할 시각인데. 오늘은 드라마 안 보냐고 물으려다 하도 멍하니 텔레비전을 보고 있기에 군소리 없이 따라 보았다. 뭐 갑자기 개그 프로가 보고 싶었나 보지. 중간중간 꽤 웃긴 장면이 나왔는데도 엄마는 웃지 않았다. 혼자 몇 번을 웃다가 나중에는 그것도 머쓱해 나도 웃지 않았다. 뭐 기분 나쁜 일이 있었나.

갑자기 일어난 엄마가 부엌으로 갔다.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고 냉장고를 여닫는 게 저녁을 차리는 듯했다. 지금 배 안 고픈데, 오늘 반찬 뭐야?라는 말이 차례로 나오려다 말았다. 오늘 같은 날은 그냥 조용히 차려주는 대로 먹는 게 나을 듯했다. 평소 같으면 이리 와서 수저라도 놓으라고 할 텐데, 오늘은 그런 말도 없었다. 그렇다고 마냥 앉아있기도 민망해서 일어나 식탁으로 갔다. 밥그릇이 하나뿐이었다. 반찬도 몇 개 꺼내지 않은 채였다. 엄마 또 안 먹어? 왜 자꾸 밥을 안 먹어? 하지만 뜻밖에도, 엄마는 하나뿐인 밥그릇 앞에 앉아 수저를 들었다. 어? 뭐야, 내 밥은? 나도 저녁 안 먹었는데. 엄마 난 밥 안 줘? 엄마는 말이 없었다. 그저 묵묵히 혼자 저녁을 드실 뿐이었다.

처음 겪는 일이었다. 너무 당황스러워 어찌할 줄을 몰랐다. 내가 뭘 크게 잘못했나.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일이 없었다. 아니 무슨 일이 있다 해도 이건 너무 한다 싶었다. 사람을 투명인간 취급하는 게 어딨어. 밥도 안 주고 대답도 안 하고. 여전히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묵묵히 저녁을 드시는 엄마를 보다 울컥하는 마음에 큰 소리로 문을 닫으며 방으로 들어왔다. 괜스레 눈물이 났다.

침대 맡에 엎드려 소리 죽여 울다 눈물을 닦고 일어났다. 뭔가 이유가 있겠지. 한 번도 이런 적이 없는데 무슨 일이 있는 거겠지. 문득 아빠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싶었다. 설마 아니겠지. 전화라도 해볼까, 하다가 아빠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거라면 엄마가 집에 이렇게 있을 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무슨 일이지. 물어봐야겠다, 아니 얘기해줄 때까지 옆에 있어야지.

살며시 방문을 열고 나왔다. 엄마는 다시 거실에 앉아 멍하니 텔레비전을 보고 계셨다. 냄비와 찬 그릇을 모두 치운 상 위엔 반도 푸지 않은 밥그릇이 놓여있었다. 슬그머니 엄마 옆에 다가가 앉았다. 그저 묵묵히, 엄마를 따라 텔레비전만 보았다.

얼마 되지 않아 엄마가 내 이름을 불렀다. 그게 뭐라고 대뜸 웃음부터 나왔지만 반가움을 숨기며 조용히 응, 대답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뚫어져라 얼굴만 보고 있는데 엄마가 다시 한번 내 이름을 불렀다. 응, 엄마. 듣고 있어. 얘기해. 조금은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왜 그래, 무슨 일인데? 엄마는 그러고도 아무 말 없이 내 이름을 몇 번 부르셨다. 대답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소리 내어 이름을 부르는 것 자체가 목적인 것처럼. 그렇게 엄마는 내 이름을 부르고 난 대답하길 몇 번. 엄마, 나 옆에 있어, 라는 내 대답을 끝으로 엄마는 잠시 아무 말이 없으셨다. 그리곤 조용히, 눈물 한 방울을 흘리시더니 이내 소리 내 우시기 시작했다. 엄마 왜 그래, 무슨 일인데, 진짜 아빠한테 무슨 일 있는 거야? 왜 그러는데? 우는 엄마를 보자 눈물이 따라 나왔다. 엄마 옆으로 다가가 어깨를 감싸 안으려다, 생각이 났다. 아, 그래, 그랬지 참. 반쯤 뻗다 멈춘 손을 다시 뻗어 잡히지 않는 엄마를 혼자 끌어안으며 말했다. 미안, 미안해 엄마.

내가 죽은 지 일주일이 지났다. 잊지 말아야 하는데, 자꾸만 잊어버린다.


2013.11.15.2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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