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롯이 Mar 19. 2017

여자는 몇 시간째 카페에 앉아있다.

풀린 날씨 덕인지 카페엔 사람이 많았다.

여자는 몇 시간째 카페에 앉아있다. 맞은편에 앉았던 남자가 일어선 지 한참이 지났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 자리에 누가 있는 듯 시선을 거두지 못한다.
드디어 봄이 왔구나. 집을 나서는 여자의 발걸음은 더없이 가벼웠다. 며칠째 이어지던 꽃샘추위가 끝난 듯 따스한 날씨였다. 저 아래는 벌써 벚꽃이 한가득이라 했다. 길게 늘어지던 겨울의 끝자락이 거둬지고, 봄이 왔음이 실감 나는 날이었다. 들뜨는 기분을 가라앉힐 수 없어 여자의 입가에 연신 미소가 떠올랐다. 한 시간 일찍 약속 장소에 도착한 여자는 창가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남자를 기다리려 했다. 카페에 들어서 앉을자리를 찾다가, 멍한 눈빛으로 밖을 보고 있는 남자를 발견했다. 먼저 와 남자를 기다리려던 계획이 틀어져 여자는 살짝 토라졌지만, 이내 개의치 않고 그가 앉은자리로 다가가 말했다. 일찍 왔네? 남자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게, 너도 일찍 왔네. 가라앉은 남자의 목소리에 여자는 이상한 기색을 느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남자는 선뜻 대답하지 않았다. 그 짧은 침묵이 여자의 들뜬 기분을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그녀가 다시 입을 열려는 찰나, 남자가 말했다. 헤어지자.
풀린 날씨 덕인지 카페엔 사람이 많았다. 카운터와 테이블을 오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시간은 바쁘게 흘렀다. 오직 여자의 시간만이 남자가 이별의 말을 꺼낸 순간에 멈춰서 움직일 줄을 몰랐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었기에 긴 시간이 필요했다. 한 번의 긴 숨이 들고 난 뒤 간신히 여자의 시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천천히 남자가 했던 말을 되짚어보았다. 얼마 되지 않는 말을 힘겹게 삼켜 넘기던 여자는, 끝내 한마디 말에 채한 듯 멈춰 섰다. 짐이 된다고 했다. 내겐 사랑이었는데 그에겐 그저 짐일 뿐이었다. 얼마나 거추장스럽고 무거운 짐이었기에 그렇게 홀가분하게 벗어던지고 나간 걸까. 그동안 함께했던 시간이, 그의 곁에 있던 자신의 모든 것이 부정당한 느낌이었다. 참으려 할수록 설움이 북받쳐 결국 여자는 소리 내 울음을 터트렸다. 힐끔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여자가 왜 우는지 알고 있던 아르바이트생은 카페 로고가 새겨진 티슈 몇 장을 그녀의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갔다.
집에 돌아오는 길, 아직 초저녁임에도 오전의 따스함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스산함만 가득했다. 가볍게 입고 나온 옷은 바람을 막아주지 못했다. 여자는 지난겨울의 어느 때보다 지독한 추위를 느껴야 했다. 그렇게 그녀는 다시 겨울의 한 복판으로 내던져졌다.


사진: Bob August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