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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이 Nov 29. 2017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왕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왕비가 살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왕과 아름다운 왕비가 살았다.
두 사람이 다스리는 왕국은 늘 평화롭고 풍족했다.
누구도 불행하지 않았고 슬퍼하는 사람 한 명 없었다.
그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왕국이었다.

다만 한 가지 모두가 걱정하는 일이 있었다.
왕과 왕비에게 오래도록 아이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달이 해보다 밝게 빛나던 밤, 왕과 왕비에게 아이가 생겼다.

모두가 간절히 바랐던 만큼 왕국은 기쁨과 설렘으로 가득했다.
연일 축제 분위기가 이어졌고 한껏 들뜬 사람들은
천사 같은 아이가 태어날 거라며 입을 모아 말했다.

시간이 흘러 수많은 사람의 축복 속에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는 딸이었고

꼽추였다.

왕과 왕비는 큰 충격에 빠졌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아이가 꼽추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왕비는 정신을 잃었고 왕 역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두 사람은 고민 끝에 아이를 숨기기로 했다.

아이를 축복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찾아왔지만 누구도 아이를 볼 수 없었다.
일주일이 지나 한 달이 되도록 아이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사람들 사이에선 아이가 죽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아이가 너무 병약해 그렇다는 왕과 왕비는 언제부턴가 아예 말을 하지 않았고
자연스레 왕국에서 아이 이야기는 금기가 되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시간은 흘렀고 왕비는 둘째 아이를 낳았다.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듯 천사같이 예쁜 아이였고,
내색하지 않았지만 내내 초조했던 두 사람은 비로소 만족한 듯 웃었다.

많은 이들의 축하와 축복이 며칠이고 이어졌다.

사람들은 이미 첫째 아이를 잊은 듯했다.

사람들의 기억과는 상관없이

첫째 아이는 건강히 자라 어느덧 소녀라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소녀는 자신이 공주라는 것도 모른 채 성에서 가장 높은 옥탑방에 갇혀있었다.

소녀를 찾아오는 사람은 보모 한 사람뿐이었다.
보모가 들려주는 이야기와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만이 소녀의 세상 전부였다.

소녀는 보모에게 밖에 나가고 싶다며 조르기 시작했다.

창밖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왕국이 펼쳐져 있는데

소녀는 좁고 어두운 방 안에서만 살았으니,
오히려 그동안 투정 없이 지낸 게 신기할 정도였다.
하지만 소녀가 아무리 울고 떼를 써도 보모는 안 된다는 말뿐이었다.

보모에게 밖에 나가고 싶다고 처음 이야기를 꺼낸 순간,

소녀는 등이 따끔거리는 걸 느꼈다.
그날부터 소녀가 밖을 동경하는 마음이 커질수록 등의 통증 역시 점점 커졌다.
소녀는 보모에게 등이 아프다 했지만,
보모는 소녀가 밖에 나가고 싶어 꾀병을 부리는 거라 생각했다.

통증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살이 찢어질 듯한 고통이 며칠이고 계속되었다.
잠도 이루지 못하고 신음하던 소녀는 아픔을 견디다 못해 비명을 질렀다.
소녀의 비명은 넓은 성안을 떠돌았지만 끝내 길을 찾지 못해

누구에게도 전해지지 못한 채 쓰러졌다.

이튿날 찾아온 보모는 그제야 소녀가 정말 아프다는 걸 알았지만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첫째 아이는 성안에서 잊혀진 존재였다.
누구도 아이의 이야기를 꺼내선 안 되었다.

보모는 몸부림치는 소녀를 보다 못해 큰 용기를 내 왕과 왕비를 찾았지만,
두 사람을 만나기는커녕 첫째 아이의 이야기를 했다는 이유로 성 밖으로 쫓겨날 뿐이었다.

정신을 잃었던 소녀가 간신히 눈을 떴다.
한껏 몸을 뒤튼 채 엎드려 누운 소녀의 눈이 창을 향했다.
말갛게 푸른 하늘을 한 마리 새가 유유히 가로지르고 있었다.

다시 태어난다면 꼭 새가 되어야지.
아무 도움 없이도 어디든 갈 수 있도록.

소녀는 두 손으로 몸을 끌어 창으로 다가가 창턱을 딛고 힘겹게 일어났다.

소녀가 처음으로 옥탑방을 나온 순간이었다.


왕과 왕비는 둘째-이제는 엄연히 첫째가 된-아이와 함께 성 주변을 산책하고 있었다.
아장아장 잘도 걷는 아이를 볼 때마다 왕과 왕비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아이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눈엔 사랑이 가득했다.

문득 아이가 무언가를 발견한 듯 달리기 시작했다.
아이보다 몇 걸음 뒤에서 걷던 왕과 왕비는 잠시 후에야 아이가 본 것을 볼 수 있었다.
성벽 언저리엔 피가 엉겨 붙은 날개를 단 소녀가 쓰러져 있었다.
찢어진 등 사이로 채 한 번 펴지도 못한 날개가 뻗어 나와 있었다.

천사가 죽었어.

둘째 아이가 말했다.


2011.04.09.2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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