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과 창문, 중심과 관찰의 관계학 (Part 2)

늦게 말하기 실험, 둘 다 조금 늦게

by 오로보이

3부 —충돌 연습, 혹은 싸우지 않고 버티는 기술


우리는 한 번 크게 부딪혔다.
원인은 작았다. 식탁에 놓인 젓가락 방향.
작은 것들이 전쟁을 부른다.

정말 큰일은 보통 바깥 사정에서 온다.


나는 중심을 지키려 했고, 그녀는 관찰을 요구했다.
우리는 서로의 전문 영역에서 상대를 심판했다.
결과는 무승부, 기분은 패배.


그래서 실험을 했다. 이름: 늦게 말하기.

규칙은 이랬다.

첫 문장은 감탄사만. “아, 음, 그렇구나.”

둘째 문장은 사실만. “젓가락이 뒤집혔네.”

셋째 문장은 바람만. “나는 앞으로 이렇게 되었으면 해.”

넷째 문장은 비어 있음. 둘이서 채움.

네 번째 칸을 비워두자 이상한 일이 생겼다.
서로가 말을 덜 했는데, 이해는 더 됐다.
아마도 설명의 밀도를 줄였더니

의미의 밀도가 올라간 모양이다.
물리학자에게 미안하지만,

인간관계는 대개 이런 무등록 실험으로 굴러간다.


밤이 되어 우리는 나란히 앉아 멈췄다.
멈춤은 싸움의 반대말이었다.
싸움의 반대말이 화해는 아니다.
가끔은 정지다. 정지가 살려낸다.


4부 — 조화, 두 박자 늦은 춤


주말에 초급 춤 수업을 들었다.
선생은 말했다. “둘 다 이기는 춤은 없습니다.”
좋은 말이었다. 그래서 춤이 어렵다.


우리는 서로 두 박자씩 늦게 따라하기로 했다.
먼저 나가면 끌고 가게 되고,

먼저 멈추면 끊어지게 된다.
늦게 따라가면 연결이 생겼다.

연결이 생기면 기분이 났다.
기분이 나면 음악이 이해됐다.

음악은 원래 이해보다 기분이 먼저다.


수업이 끝나고 우리는 편의점에 들렀다.
삼각김밥을 고르면서 동시에 웃었다.
오늘의 결론은 참 소박했다.
내 중심 = 내가 나를 돌보는 속도.
관찰 = 내가 너를 기다리는 속도.
그리고 조화는 그 두 속도가 잠깐 겹치는 순간에 나타났다.
오래 겹치지 않아도 됐다. 잠깐이면 충분했다.


집에 와서 서로에게 짧게 적었다.
나는 ‘물 70%’라고 적었다. 내 감정에 여백 남기기.
그녀는 ‘창문 열기’라고 적었다.

판단보다 먼저, 관찰하기.
메모가 다이어트된 사랑 같았다. 군더더기가 없었다.


관계란 결국 이런 식이라고, 나는 믿기로 했다.
내 잔을 지키되, 너의 창을 열어준다.
넘치지 않게, 닫히지 않게.

둘 다 조금 늦게. 그래서 오래.

월, 수, 금 연재
이전 18화잔과 창문, 중심과 관찰의 관계학 (Part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