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과 창문, 중심과 관찰의 관계학 (Part 1)

물 70%의 기술, 창문으로 듣기

by 오로보이

1부 — 내 중심, 탁자 위의 잔처럼


관계가 시작될 때, 나는 늘 잔을 하나 떠올린다.
물을 70%만 채운 잔. 흔들려도 넘치지 않는 선.


나는 내 잔을 자주 잊는다.
상대가 웃으면 넘치고, 찌푸리면 바닥이 드러난다.
그럴 때마다 탁자를 톡 치고 속으로 말했다.

‘지금 내 마음, 넘치나 모자라나?’
이 정도의 점검이면 대체로 밤을 무사히 건넌다.


지하철에서 한 번은 가운데 기둥에 등을 붙이고 섰다.
세상은 다 바쁘게 흔들렸고,

나는 기둥을 빌려 정지했다.
그때 알았다. 내 중심은 거창한 게 아니었다.
허리 펴기. 숨 들이마시기. 대답 늦추기.


집에 돌아와 카톡창을 열었다.
“지금 뭐 해?”라는 질문이 와 있었다.
이전의 나는 즉시 “너 생각”이라 적었을 것이다.
이번엔 “물 마심”이라고 적었다. 정직하고, 덜 멋있다.
하지만 덜 멋있는 말이 오래가는 경우가 있다.

사랑도 가끔 그쪽 편이다.


관계의 첫 장은 휘황한 인사말이 아니라
“흔들릴 때 내가 나를 어떻게 잡는가”였다.
내가 나를 잡으면, 그다음 장에서야 비로소
누군가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었다.


2부 — 관찰, 확대경 대신 창문


그녀는 카페에서 이야기를 길게 했다.
커피가 미지근해질 만큼 길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관찰했다.
끄덕임이 너무 빠르면 아첨이고,

너무 느리면 심문 같았다.
적당히 끄덕이는 데에도 연습이 필요했다.

어쩌다 이렇게 사는가.


관찰은 확대경이 아니라 창문이었다.
확대하면 흠만 보이고, 창은 배경까지 통째로 보인다.
그녀의 말 뒤에는 직장, 엄마, 편의점 조명, 날씨가 있었다.
나는 그 배경을 함께 적었다. 해석은 뒤로 미뤘다.
해석이 빠르면 오답이 늘었다.

시험은 끝났는데 습관은 안 끝났다.

“그래서 화났어.”
그녀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럴 만해.”
그다음 문장은 삼켰다.
“그럴 땐 이렇게 해봐”—이 문장은 보통 재난의 씨앗이었다.


관찰에는 기술 하나가 더 있었다.
보지 말고 함께 보기.
“내가 뭘 놓쳤을까?”
그녀가 창밖을 가리켰다. 구름이 빨랐다.
우리는 같은 구름을 보았다.
그 순간만큼은 문제도, 해답도,

우리도 잠깐 미루고 구름이 주인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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