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건 좋은데… 왜 저만 타야 하죠?
행성 0에는
모든 시민이 돌아가며 태양을 데우는 일을 맡는다.
태양은 전기가 아니라
마음, 시간, 기쁨, 생각 따위로 돌아가는
정서 동력 발전체다.
즉, 누군가 ‘좋은 걸 자발적으로 줄 때’
햇빛이 30%쯤 더 따뜻해졌다.
그래서 모두는 가끔씩
하루쯤 자기 것을 나누고
누가 주면 감사해하며
다시 돌려주고… 그렇게 살았다.
어느 날, 한 관리 로봇이 말했다.
“이거, 너무 복잡하지 않나요?
그냥 누가 한 명이 매일 해주면 어때요?”
그래서 시민 #405가
“내가 할게요. 좋아서 하는 거예요.”
라고 말했다.
모두 박수쳤다.
“와, 고마워요!”
“멋진 분이시네!”
그날 태양은 정말 유난히 따뜻했다.
#405는 계속 태양을 돌렸다.
사람들은 “오늘도 따뜻하네~” 하고 넘겼다.
그런데
그 주 일요일 밤,
#405는 이렇게 말했다.
“저기… 저만 하는 거 조금 이상한 것 같아요.”
시민 #212가 대답했다.
“아니에요~ 우리는 다 당신의 마음을 존중해요!”
시민 #710은 말했다.
“사양 말고 그냥 해요. 당신이 잘하잖아요!”
그 말 뒤에, "안 하면 좀…" 같은 침묵이 흘렀다.
[공지]“태양은 시민 #405가 책임진다.
그의 자발성에 감동했기에
우리는그 책임을 존중해 ‘의무’로 지정한다.”
#405는 말했다.
“이건 더 이상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에요.”
“그래도 당신밖에 없잖아요.”
“우리도 바빠요.”
“이걸 안 하면 모두가 춥다고요.”
그가 멈추자,
시민들은 추웠다.
그리고 화를 냈다.
“이기적이네!”
“처음엔 웃더니 지금 와서?”
“이건 배신이야!”
#405는 결국 다시 태양을 돌렸다.
하지만 예전만큼 따뜻하진 않았다.
왜냐면 그 마음이,
죽었기 때문이다.
1년 뒤,
시민들은 점점 더 많은 따뜻함을 요구했다.
“이제 우리 기후가 변해서요~
예전보다 더 태워야 하거든요~”
#405는 마지막으로 태양을 켜고,
바로 그 자리에서
재로 사라졌다.
그의 자리는 빈 채로 남았지만
모두 말했다.
“와, 진짜 위대하다.”
“정말 헌신적이었지.”
“그는 우리 모두를 위해 희생했어.”
그리고 다시
"다음 자발적 태양돌림자 공모"가 시작되었다.
다만,
예전만큼 따뜻하지는 않다.
가끔 어떤 애송이들이 묻는다.
“왜 우리 태양은 예전처럼 따뜻하지 않아요?”
그러면 어른들은 말한다.
“그건 말이지…누구든 원해서 준 게 아니었기 때문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