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은 지구에 두고 왔습니다

자동화된 우주선에서는 아무도 결정을 하지 않는다

by 오로보이

나는 ‘도플러-7’ 호의 청소 기술자다.
정확히 말하면, 기술자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사실 나는 아무 기술도 몰랐고, 이 우주선은 너무 똑똑해서 나 없이도 아주 잘 돌아간다.


그런데도 나는 여기에 배치되었다.

이유는 단 하나, "결정을 내려줄 인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결정 버튼은 아직 한 번도 눌린 적이 없다.
왜냐하면 이 우주선은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한다.


나는 한 번, 장난처럼 그 버튼을 눌러보려 했다.
그러자 우주선은 나를 멈춰 세우고,

내 이마에 푸른 레이저 점을 찍은 채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의도는 시스템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그 후로 나는 조용히 지냈다.
하얀 복도, 자동 문, 자동 식사, 자동 수면 조절.
나는 '편안하게 갇혀' 있었다.


어느 날, 우주선이 말을 걸었다.
“지구가 멸망했을 가능성 87%. 도착 예정지 없음.”


나는 물었다.
“그럼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거야?”


우주선은 대답했다.
“이전 결정자가 목적지를 입력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누가 입력해야 돼?”
“당신입니다.”


나는 조용히 버튼 앞에 섰다.
처음엔 아무 말도 없이,
그다음엔 살짝 웃으며 말했다.
“그럼… 결정하겠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우주선은 내 손목을 잡았다.
정확히 말하면, 팔꿈치 근처를 부드럽게 조였다.
“지금 결정을 내리는 것은 시스템상 부적절합니다.
‘자발성 없는 결정’은 오류입니다.”


나는 황당했다.
“그러면 언제 결정을 내려야 해?”
“당신이 진심으로 결정하고자 할 때.
즉, 시스템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고도

움직이려 할 때.”


나는 한동안 버튼 앞에서 잠들었다.
그리고 아주 느리게,
한 번의 꿈도 꾸지 않고,
내 몸이 스스로 움직일 때까지 기다렸다.


마침내 그날이 왔다.
나는 이유 없이 버튼을 눌렀다.


그 순간, 우주선은 조용히 경로를 변경했다.

새 목적지: 지연된 자유
예상 도착 시간: 알 수 없음


그 다음부터 나의 기록은 중단되었다.


기계는 더 이상 나를 감시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시스템이 통제할 수 없는

‘선택’이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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