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녀와 야수 첫 번째 이야기

우리 안의 교만, 외면, 그리고 갇힌 남성성

by 오로보이

야수가 된다는 건 그렇게 쉬운 일이었다


당신도, 나도 그랬던 적이 있다.


왕자가 있었다.

못생긴 노파가 장미 하나를 주겠다고 했는데,

왕자는 “꺼져”라고 했다.

왕자는 잘생겼고, 젊고, 부자였다.

노파는 추하고, 늙고, 가난했다.

그러니까 왕자는 당연히 “꺼져”라고 한 거다.


솔직히 말하자.

우리는 그런 왕자를 알고 있다.

아니, 우리도 그런 왕자였다.


장미를 거절하고, 도움을 무시하고,

외면을 보고 판단하고,

결국에는 짐승이 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는다.


영화 미녀와 야수의 오프닝은 그걸 꽤 예쁘게 보여준다. 예쁜 색감, 멋진 스테인드글라스, 낭랑한 내레이션.


하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이건 한 인간의 타락의 순간이다.



그는 야수로 변했다.



사실은 이렇다.

그는 애초에 야수였다.


그가 가졌던 건 얼굴이었고, 성이었고, 권력이었다.

그가 갖지 않았던 건 분별력, 연민, 그리고… 마음.


노파는 말하자면 무의식의 시험관 같은 존재다.

추하게 보이지만, 사실은 가장 순수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타인을 외모로 판단하는 사람인가요?”
“아니요. 단지… 그 사람이 너무 지저분해서요.”
“좋아요. 이제부터 당신은 그 지저분함이 됩니다.”


이렇게 한 남자는 야수가 된다.



우리 안의 노파와 야수


장면은 끝나고, 왕자는 짐승이 된다.

이제 관객인 우리는 물어야 한다.


“나는 언제, 그런 짐승이었나?”

그리고

“나는 언제, 그런 노파를 외면했나?”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는 늘 판단하고 있다.

내가 가진 걸 기준으로.

내가 아는 것, 내가 속한 집단,

내가 말 잘하는 방식으로.


하지만 문제는 늘 그 ‘하찮은 요청’에서 온다.

“잠깐 시간 괜찮으세요?”

“제가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될까요?

“혹시 나 좀 도와주실 수 있나요?”


하찮지만, 그걸 외면한 순간부터

우리의 얼굴에 털이 자라기 시작한다.



교만은 자유를 없앤다


야수는 성에 갇힌다.

사실은 스스로를 가둔 것이다.

질문을 외면하고, 감정을 무시하고,

사랑을 밀어낸 결과다.


누군가가 말했다.


“남성성은 도전과 보호로 향할 때 건강하지만,
교만과 회피로 흐르면 괴물이 된다.”


야수는 진짜 남자가 되지 못했다.

그는 소유는 했지만, 책임지지 않았다.

보호할 수 있었지만, 버렸다.


그래서 그는 짐승이 된 거다.

우아한 껍데기를 벗고, 자기 얼굴을 갖게 된 것이다.



질문은 간단하다. 하지만 불편하다.

나는 누군가를 외면한 적이 있나?

나는 힘을 가졌을 때, 그걸 어떻게 썼나?

나는 나를 잘생겼다고 착각하고 있나?


당신 안의 야수는,

어쩌면 거울 속에서 이미 눈을 깜빡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당신 안의 노파는,

조용히 다시 한번 장미를 내밀고 있을지도 모르고.


그걸 받을지는 당신 자유다.

물론, 그 자유는 책임을 포함한다.


다음 편:
“벨은 왜 모두가 싫어하는 삶을 선택했을까?”
– 따뜻한 지혜, 고립된 여성성, 그리고 혼자서 살아남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