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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 Jun 18. 2023

누구나 글 쓸 수 있다는 거짓말 같은 진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다고, 당신도 쓸 수 있다고 수많은 글쓰기 책에서 말한다. 한두 사람도 아니고, 글 써 본 경험자, 전문가 다수가 이리 말하니 믿을 만한 사실일 게다. 이를 근거로 온라인, 오프라인에 많은 글쓰기 강의와 모임이 등장한다. 실제 글쓰기를 시도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소박한 글쓰기로 시작해 출간작가가 되는 이들도 봤다. 반면 '글처럼' 써지지 않아서, '남들만큼' 잘 쓰지 못한다며  포기하는 사람들도 여럿 안다. 정말, 누구나, 다, 글을, 쓸 수 있는 걸까?     


'누구나'는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을 말한다. 말하는 것처럼, 글로도 우린 의사소통을 한다. 사야 할 식재료, 매일 해야 할 일 목록, 아침저녁 적어 내려가는 일기, 감사노트처럼 나만 보는 것부터 하루에 수십 번 오가는 카카오톡 메시지, 다양한 이메일, 사진 찍어 해시태그와 함께 올리는 SNS까지, 이 모든 게 글이다. '글쓰기'를 거대한 작업으로 여기는 탓에 매일 끄적거리면서도 스스로 '글을 쓴다'라고 여기는 이들이 많지 않겠지만 말이다.


평소 하고 싶었던 말, 오래도록 마음에 담아둔 생각에 손을 움직여 글자라는 옷을 덧입혀주면 그게 나만의 이야기다. 글을 쓰면 쓸수록 맛깔스럽게 쓰고 싶고 스펙터클 해서 흥미진진하면 좋겠고, 다양한 어휘에다 위트 넘치는 표현까지 곁들여져 읽는 사람 마음을 홀랑 빼앗고 싶어 진다. 타인에게 잘 읽히고 싶은 욕심이 들어가면 이 지점부터 쓰는 이의 머리는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설렁설렁 쉽게 쓰던 글이 갑자기 어려워진다.


그래도 여전히 '쓸 수 있다'는 건 '누구나' 가능한 일이다. 물론, 글쓰기 감각을 뱃속에서부터 갖고 태어난 '금수저 작가'에게 멋진 글을 쓰는 건 1000분의 1 정도 쉬울지 모른다. 노상 글 쓰는 이는 나도 남도 만족할 만한 글을 얼마간에 뚝딱 써낼 수도 있다. 그렇게 되기까지, 모든 이가 읽고 감탄할 만한 글을 쓰기까지, 예상 가능하겠지만, 그들도 처음엔 막막하고 난감하며 머리와 손이 따로 놀아 가슴이 갑갑해지는 경험을 수도 없이 한다. 그러니 이제 막 글쓰기 시작한 사람이 높은 기대치의 글을 스스로 흡족할 만큼 써내려면 며칠, 몇 달, 몇 년이 걸릴 수밖에.


하지만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다는 건 100% 진실이지 않기도 하다. 잔뜩 부풀어 오른 글쓰기 초심이 천 년 만 년 이어지지 않아서다. 꾸준히 계속 쓰는 이들이 매우 드물다는 뜻이기도 하다. 글쓰기를 돕다 보면 많은 사람이 글을 쓰고 싶어서 찾아온다. 정해진 기간 동안 배운 방법을 적용해 주어진 환경 안에서 열심히 쓴다. 난 쓰지 않으면 안 될 여러 장치를 만들어둔다. 쓰고자 하는 마음이 열매 맺도록, 쓰다 보면 결과물이 반드시 나온다는 걸 경험하도록 말이다. 스스로 '글감옥'에 들어온 이들이 변심하여 탈출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들은 성실히 글을 쓰고 당당히 '만기 출소'한다.


문제는 강제성에서 벗어난 이후다. 영화 <쇼생크 탈출>의 장기 복역수 '레드'(모건 프리먼)가 감옥 문을 벗어난 후 너무 자유로워 어쩔 줄 몰라했던 것처럼 일상에서 자기 주도적으로 글을 써야 한다는 사실은 우릴 당황케 한다. 이때 또 다른 장치를 자신의 발목에 달 건지, 아니면 자유로운 새처럼 온 세상을 훨훨 날아다니다 쓰고 싶을 때만 선택적으로 쓸 건지, 그러다 쓰지 않은 게 다시 '일상'이 되어버릴지는  철저히 자신의 선택이다. '누군가 글을 쓸 수 있다'는 말이 거짓이 돼버리는 건, 계속 쓰고자 하는 마음이 쓰지 않아도 될 환경을 이기지 못해서, 먹고사는데 하등 상관없는 글쓰기에 시행착오 따윈 허용하고 싶지 않아서 일 게다. 어쩌면 재능도 없을 텐데 '나도 글을 쓸 수 있다'는 마법 같은 말에 홀랑 넘어가서 삽질하고 있지 않은지 의심스러워서일 지도 모른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내 안에 원래 소설을 쓰는 재능이 다소나마 있었다고 해도 그건 유전이나 금광 같아서 만일 발굴되지 않았다면 깊고 깊은 땅속에 하염없이 잠들어 있었겠"다고 말한다. 글 한두 편으로 잘 쓰게 되는 재능이 자신에게 있었다면 모를까, 단 한 번도 알아채지 못한 글쓰기 능력이 당신 안에 깊이 파묻혔다면 석유 시추하듯 파고 파고 또 파야한다. 야구선수가 홈런 한 방을 날리기 위해 매일 수없이 방망이를 휘두르며 공 치는 연습을 하듯, 글 쓰는 이도 이리저리 써보고 지워보고 고쳐보는 애씀이 있어야 한다.     


  몇 번 글쓰기만으로 손에 모터 달리기를 원하는 마음이야 이해되지만 그건 제아무리 유능한 선생도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다. 쓰는 사람으로 살려면 직접 써야 한다. 시행착오 없이, 단번에 조회수 대박 나고 출판사에서 러브콜을 던지는 글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가. 그런 맥락에서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다', 나아가 '잘 쓸 수 있다'는 말을 신줏단지처럼 모시고 있다면 그 믿음을 깨뜨려주고 싶다. 그건 거짓말이라고.


 언제일지 모르는 시간과 얼마나 쏟아부어야 할지 가늠할 수 없는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게 글쓰기라면, 그렇게까지 해서 꼭 글을 써야 하냐고 묻는다면 뭐, 꼭 그래야 할 필요는 없다는 말도 덧붙이고 싶다. 그 역시도 선택이니까. 분명한 건, 쓰는 일을 이어갔을 때 누리는 기쁨과 풍성함, 나를 반영한 글이 점점 말쑥해지는 벅차오름을 쓰지 않을 때는 결코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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