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거래하기 좋은 날

당신 다음엔 무엇 54

by 강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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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중고 물품을 올리기 시작한 것은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였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몇 개월의 아이가 만지작거렸던 촉감 놀이책, 즐거운 물놀이를 위한 목욕 놀이 장난감, 원목으로 만들어진 기차와 버스 같은 탈것들. 팔 수 있는 것들은 무궁무진했다. 쓸 만한 것들은 섬에 있는 조카들에게 보내주곤 하지만, 조카들에게 있을 법한 것이나 조카들이 좋아하지 않을 만한 것들은 중고 카페에 올렸다.


중고 물품을 거래한다는 것은 새 제품을 사기엔 조금 머뭇거려지거나, 잠깐의 효용성만을 필요로 하는 것, 그리고 저렴한 가격으로 큰 행복을 사고픈 사람들의 마음이 숨어있다. 이런 조건에 딱 들어맞는 것이 육아용품이다. 아이들은 성장하고, 성장하는 시간 동안 순서에 맞는 장난감과 용품이 필요하게 되어 있다. 아직 걷지 못한 아기를 안아주는 아기 띠, 앉아 있는 것이 가장 큰 일이던 시절의 딸랑이. 막 걷기 시작했을 때의 무릎보호대와 막 뛰기 시작하는 아이가 쉬기 좋은 그늘막이 튼튼한 유모차.

아이의 흔적이 잔뜩 묻은 것들은 당연히 팔기 힘들므로, 깨끗하게 사용한 물건이나 손이 덜 탄 물건들을 주로 판다. 정면 사진과 물건의 뒷모습, 확대 사진과 전체적인 느낌의 사진을 찍고 적절한 말들과 정직한 말들을 골라 쓴다. 중고 거래가 적절한 말과 정직한 말이 필요한 것은, 중고임에도 새것 같은 세련됨과 말끔함을 원하는 엄마의 마음을 서로 잘 알고 있고, 누군가의 소중한 아이가 쓸 물건이기 때문에 기분 상하는 일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 아이가 쓰던 물건이 누군가에게 전해졌을 때 아름다운 시절의 한때를 장식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빨리 자라는 아이의 특성상 육아용품은 사진과 글을 올리는 동시에 바로 팔려나가는 일이 대부분이지만, 아이 낳기 전에 입었던 나의 옷들이나 신발, 가방 같은 물건은 쉽게 팔리지 않는다. 마음에 든다고 연락이 오지만 거래 성사까지 가는 일이 많지 않다. 옷의 사이즈나 화면에서 보이는 옷이 나에게 어울릴까, 정말 깨끗할까 하는 의구심이 생기게 마련이다. 간혹 중고 물품을 올려놓고 엉뚱한 물건을 보내는 사기범들이 실제로 존재하기도 하므로, 중고거래를 직거래가 아닌 온라인으로 거래하는 일은 의심이 당연히 따라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므로 나는 문의가 오면 정성껏 대답해주려 한다. 자신의 신체 사이즈를 공개하며 맞을까요? 하고 물어보는 여자에게는 내 신체 사이즈를 공개하고 입었을 때의 옷이 몸에 붙는 정도와 신축성에 대해 대답해준다. 조금 더 할인이 안 될까요? 라고 애교를 부리는 여자에게는, 시장에서도 가격을 깎아본 적 없는 애교 없는 내 성격을 떠올리며 몇천 원이라도 깎아 주려 한다. 택배 상자에 물건을 넣고 테이프를 붙이기 전에 루이보스티 티백, 한 번 마실 수 있는 커피 믹스, 과자나 초콜릿을 넣어 보내기도 한다. 그들이 얼굴 모르는 사람과 낯선 문자를 주고받고 거래를 했다는 사실을 잊고 아주 잠시 먼 친구로부터 선물을 받았다고 착각하길.


아이를 안고 손을 잡고 다녀야 했으므로 팔의 움직임이 자유로운 신축성이 좋고 헐렁한 프리 사이즈의 티셔츠를 주로 입었다. 아가씨 때도 하이힐은 신지 않았었지만 내가 신어봤던 가장 높은 5센티의 구두도 신지 않게 된 지 오래됐다. 기저귀와 물티슈, 자주 허기지고 변화무쌍한 감정을 가진 아이의 마음을 사로잡을 바나나나 작은 봉지에 들어 있는 과자, 기차 안이나 식당 같이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되는 장소에서 아이들이 몰입하고 그림을 그릴 작은 수첩과 색연필들.


그것들을 챙기고 다녀야 했으므로 나의 가방은 크고 넉넉하고 가벼워야 했다. 에코백이나 가벼운 소재로 된 백팩 같은 것이 나의 가방이었다. 아이들을 키우며 조금씩 달라진 물건에 대한 나의 취향은 이제 다른 방향으로 쉽게 흐르지 못한다. 아이들의 물건이 늘어 가면 늘어갈수록 수납공간은 부족하고, 안 쓰는 물건들은 어떻게든 처리해야 했다. 안 쓰는 컵과 그릇은 섬에 있는 엄마에게, 작아진 아이들의 옷과 신발은 조카에게, 멀쩡하지만 전혀 안 써질 것 같은 물건은 아름다운 가게에 기부한다.


아이가 거실 한 쪽에서 타고 놀았던 기린 미끄럼틀, 앞으로 뒤로 엉덩이를 힘껏 움직이며 탔던 파란 말, 두 팔에 쏙 들어왔던 작고 연약했던 아이가 누워 있었던 범퍼 침대 같은 덩치가 큰 물건들은 직거래한다. 같은 지역 사람들만 보는 중고 카페에 사진과 글을 올리고 아파트 주소를 알려주면 기꺼이 그들이 온다. 물론 물건에 비해 아주 저렴한 가격을 제시해야 하고, 물건 또한 생각 이상으로 좋아야 한다. 거래를 위해 문자를 주고받으면서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당연히 여자라고 생각해버린 내 앞에 뜻밖에 남자가 나타나기도 한다. 어떤 분은 적은 돈이지만 하얀 봉투에 단정히 넣어서 내게 건네기도 하고, 저렴한 가격에 물건을 사고 가는 기쁨을 몇 번이고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는 분도 만나게 된다. 그런 인사를 받게 되면 물건을 내놓기 전에 열심히 닦고 닦았던 내 마음이 환해진다. 안 쓰는 바이올린을 팔일이 있었는데, 그때 아파트 앞에 왔던 아이 엄마는 참 인상이 좋아, 친구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혼자 하기도 했다. 옆 동네에서 자전거를 사러 온 대학생은 안 쓰는 화장품 샘플을 줬더니 환하게 잇몸을 보이며 웃었다.


나 또한 중고로 책을 사기도 한다. 세상에는 다양한 취향과 관심사를 가진 아이들이 있으므로, 새 전집을 읽지 않은 아이들도 있다. 나는 그런 책들을 내 아이들에게 읽힌다. 나를 위한 전집도 그렇게 사곤 한다. 새 책을 주로 사지만, 중고 책 또한 새 책 못지않은 쓸모가 있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중고거래를 하는 것은 얼굴 모르는 사람과 오직 ‘그 물건’ 하나에 대해 나누는 비밀 담화와 같다. 얼굴 모르는 사람이 본 적 없는 물건에 대해 내게 묻고, 나는 얼굴 모르는 사람에게 본 적 있는 물건에 대해 설명한다. 우리는 아주 짧은 시간 대화를 나누고 계좌번호에 대해 말하면 될 뿐인, 아주 사무적인 관계일지 모른다. 그러나 내가 쓴 물건을 이어받아 쓰게 될 그 사람은 그 물건 만큼은 같은 취향을 공유했다는 것이 확실하고, 비슷한 생각과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사소하지만 아주 놀라운 발견에 이르게 된다.


연락할 핑곗거리를 찾지 못한 어린 시절의 동네 친구, 연락하고 싶지만 각자의 삶을 존중하며 살아가면서 변해버렸을 마음의 결을 감당할 자신이 없는 첫사랑 같은 친구, 그립지만 오랫동안 놓쳐버린 시간이 미안해서 차마 연락하지 못하는 연인 같은 친구. 친구들에게 연락을 못 하며 지내는 세월 동안 나는 부지런히 그들과 문자를 나누고 인사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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