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야기_두번째
오늘 둘째가 김치찌개를 끓였다. 엄마의 코치가 있기는 했다지만 아주 맛있게 잘 끓인 것을 보니 요리 실력은 아내에게 물려받은 모양이다.
결혼 후에 우리는 한강변의 오피스텔에서 살았다. 아내는 중학교 교사였고 나는 디자인 회사를 운영 중이었다. 당연히 아내가 바빴고 나는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아내는 부지런한 성격으로 요리와 빨래를 모두 감당하고 있었다. 나는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했는데, 아내는 내 야무지지 않은 손끝을 영 못마땅했다. 다만 현실적인 시간의 제약으로 내 손끝을 인고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른 일을 분담하려고 해도, 나는 가정 일에 영 꽝이었다. 경상도 집안에서 자란 나는 남자란 부엌에 들어가면 고추가 떨어진다는 말을 들으며 컸고, 부엌에서 냄비 하나를 찾을 능력이 없었다. 뭔가를 만들어볼 생각이 머릿속에 아예 들어있지 않았다.
그런데 하루는 아내가 몸살로 아팠다. 아픈 아내가 식사를 차리려는 것을 말리고 호기롭게 말했다.
"내가 해볼게. 재료는 다 있는 거지?"
아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된장찌개는 세상에서 제일 쉬운 요리니까 그걸 해봐. 하라는 대로만 하면 돼."
그래서 나는 시키는대로 된장을 풀고, 호박을 썰고, 두부를 자르고... 된장찌개를 만들었다. 오피스텔이라 아내는 침대에 누워서도 씽크대가 훤히 보였기에 일사불란하게 지시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완성된 된장찌개를 소반에 받쳐 침대에 누워있는 아내에게 가져다 주었다.
아내는 한 숟가락을 떠먹어보고는,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씽크대로 갔다. 아마도 나는 음식을 만든 게 아니라 감기 치료제를 만들었던 것 같다.
그날 이후로 아내는 내게 뭔가를 만들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