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그러나 단단히 살아가는 삶
아무도 나에게 묻지 않았다.
“그 후로는 괜찮았어요?”
“혼자라는 건, 어떤 느낌이에요?”
“이젠 외롭지 않으세요?”
하지만, 나는 안다.
그 누구도 묻지 않은 그 질문들을
내가 매일 밤 조용히 스스로에게 되묻고 있었다는 걸.
이혼 후의 삶은
한 장면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긴 영화 같았다.
고독, 두려움, 분노, 미련, 체념…
그리고 어느 날 문득 찾아온
낯선 ‘평온’이라는 감정까지.
그 긴 시간을 통과하며
나는 더 이상 누군가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그게 무례하거나 냉소적인 것이 아니라,
그저 내 삶의 기준을 ‘타인’이 아닌 ‘나’로 옮겨온 것이었다.
예전의 나는
늘 ‘누군가의 기준’에 맞추어 살았다.
‘이 나이엔 결혼은 해야지.’
‘아이 키우는 엄마는 이래야지.’
‘이혼했어도 당당하게 살아야지.’
‘혼자 사는 여자는 절대 외로워 보이면 안 되지.’
그 모든 말들이
마치 투명한 감시 카메라처럼
내 일상에 달라붙어 있었다.
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으며
‘이 나이에 이러고 있어도 되나’라는 생각을 했고,
혼자 카페에 앉아 있는 날엔
누군가 나를 ‘불쌍하게’ 볼까봐 괜히 당당한 척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서 퇴근하고 들른 동네 마트에서
라면 4봉지, 맥주 2캔, 1인용 샐러드 하나를 사서 계산하려던 순간,
알바생이 웃으며 말했다.
“오늘 야식 파티 하시나 봐요.”
그 말에 나는 웃으며 말했다.
“혼자 사는 사람의 파티죠 뭐.”
그날 밤, 나는 라면을 끓이고
샐러드와 맥주를 곁들이며
작은 촛불을 하나 켰다.
그리고 생각했다.
누군가 어떻게 볼까 하는 생각이 줄어들수록,
내 삶은 더 가볍고 따뜻해진다는 걸.
요즘은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거의 사라졌다.
SNS에 나를 포장해서 올릴 필요도 없고,
누구와 비교하지 않아도
내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이제는 내가 제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칭찬이 없어도
“오늘 힘들었지만 잘 버텼어”라는 내 말 한마디면 충분하다.
예전엔 자꾸 누군가가 나를 알아주길 바랐다.
“이혼 후에도 저렇게 씩씩하게 사는구나”
“혼자서도 참 단단하네”
그런 말을 들으면
왠지 내가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은
그 누구보다 내가 나를 가장 잘 알아주는 사람이 되었다.
눈물 쏟은 밤도,
불면의 새벽도,
혼잣말로 채운 주말도
모두 내가 견뎌낸 시간이고,
그 시간을 알아주는 사람은 결국 ‘나’밖에 없다.
회복은
“괜찮아졌어”라고 말할 수 있을 때 오는 게 아니다.
어느 날 문득,
조용히… 내 삶의 틈 사이로 스며드는 감정이다.
편의점 앞 벤치에서 커피를 마시다 문득 바람이 시원하다고 느꼈을 때.
퇴근길, 귀에 꽂은 음악 한 곡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을 때.
혼자 영화관에 들어갔다가 나올 때 “좋았다”라고 혼잣말한 순간.
그런 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
어느 날 문득
이전보다 조금 더 따뜻한 마음으로
내일을 기다릴 수 있게 되었다.
예전엔 ‘내일’이 무서웠다.
새로운 상처를 남길 것만 같아서.
하지만 지금은 안다.
내일은 상처가 아니라,
오늘을 잘 견뎌낸 사람에게 주는 보상일지도 모른다는 걸.
이혼 후 처음으로
‘다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내려놓았다.
지금은 누군가를 사랑하기보다
‘내일의 나’를 아끼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내일 아침
햇살이 유난히 좋다면
나는 창문을 열고 그 햇살을 온몸으로 맞을 것이다.
내일 퇴근 후
집에 들어와 문을 닫고 혼자 밥을 먹더라도,
나는 그 밥을 정성껏 차릴 것이다.
왜냐하면,
그건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이 아니라
나를 위한, 나만의 단단한 삶이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혼자다.
하지만 혼자라는 말이
이젠 전처럼 쓸쓸하게 들리지 않는다.
그 말 속엔
수많은 고통을 견딘 시간,
다시 나를 일으켜 세운 용기,
그리고 조용하지만 강한 회복의 결이 담겨 있다.
그래서,
오늘 이 글을 마무리하며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본다.
“수고했어. 참 잘 살아냈어.”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읽고 있을
어느 한 사람에게도 조심스럽게 건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