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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벽돌 Sep 10. 2022

인간은 왜 이따위로 생긴 것일까?-5

2. 진화론의 진화

진화론의 역사상 최초로, 앞서 제기된 질문들에 대한 설득력 있는 가설을 제시한 사람은 프랑스의 박물학자인 장 라마르크(Jean Lamarck, 1744-1829)이다. 현대에는 사실 그의 가설이 찰스 다윈의 이론에 패배해 뒷전으로 밀려 있다. 그래서 자칫 우리들은 그의 업적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나는 라마르크가 다윈을 능가하는 천재라고 생각한다. 그는 진화론의 등장 초기에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에 높은 탑을 쌓아 올렸다. 하지만 그것은 아쉽게도 마지막 단계에서 허물어져 버렸다. 오류가 있었기 때문이다. 탑은 무너져 내렸지만 바닥까지 주저앉은 것은 아니었다. 남은 부분이 꽤 높았다. 그 잔해를 이용해 휘몰아치는 태풍에도 무너지지 않을 단단한 탑의 꼭대기를 완성한 이가 바로 다윈이다. 라마르크는 그때까지 누구도 감히 생각하지 못했던 기발한 가설을 창안하여 소개하였다. 그의 아이디어가 없었다면 다윈도 그의 이론을 완성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실 다윈의 진화론은 라마르크의 진화론을 살짝 변형한 것이다. 다윈이 당시에 창조론의 굳건한 장벽을 넘어설 시도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라마르크가 든든한 그의 어깨를 내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이론은 한동안 후계자들에 의해 격렬한 논쟁의 씨앗이 되었지만 돌이켜보면 두 사람은 경쟁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서로의 논리를 뒷받침해주는 조력자들이었다.


장 밥티스트 라마르크(Jean-baptiste Lamarck) (1744~1829). 양 정수리의 올림머리가 참 예쁘게 말렸지요?


라마르크는 생물학에만 정통한 것도 아니었고 진화론에만 기여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다재다능한 팔방미인의 면모를 가진 소위 르네상스적 인간이었다. 어려서부터 식물학과 음악에 많은 관심을 가졌고, 청년기에는 파리의 은행에 근무하면서 의학 공부를 하기도 하였다. 장 자크 루소를 만나 식물을 채집하면서 식물학 연구에 심취하였고 그 결실로 '프랑스 식물지' 3권을 출판하여 주목을 받았다. 이후 그는 동물학으로 관심을 돌렸다. 그가 괄목할 만한 업적을 남긴 것은 역시 동물학이었다. 그는 여러 동물들의 특성을 유심히 관찰하였다. 그러면서 동물들 중에는 인간처럼 등뼈를 가진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중에서 등뼈가 없는 것들은 동물의 대부분(약 97%)을 차지하고 있다. 그는 그들을 연구하는 데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다. 사실 무척추동물(invertebrate)이라는 명칭을 명명한 것도 그였다. 그는 인생의 황혼기인 1815~1822년, '무척추 동물지' 7권을 출판, 고대 무척추 동물학의 창시자가 되었다. 


주변에는 가끔 무딘 신경을 날카롭게 만들고, 괜히 착한 사람을 악인으로 흑화 시키는 '재수 없는 친구들'이 있다. 평소에는 수업도 빠져가면서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르게 탱자탱자 놀다가, 시험을 코앞에 두고는 급하게 책 몇 줄을 읽고 원리를 깨우치는 친구들 말이다. 심지어 그들은 시험 전날, 수개월 간을 암기력에 의존하여 근근이 내용을 파악하고 있는 우리들 앞에서 자기가 알아낸 것을 조곤조곤 설명해 주기도 한다. 매우 억울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해석을 들으며 '아, 그래서 그랬구나?' 하며 암기한 내용을 겨우겨우 이해의 단계로 업그레이드시키기도 한다. 시험을 치르면 그들의 성적은 당연히 우리보다 월등하다. 그러면 우리들은 '노력이 재능을 이길 수 없는 더러운 세상'을 저주하며 성실하지 않은 그들에게 내려진 과분한 재능을 시기한다. 자신하건대 나는 그런 친구들이 꽤 많다. 젊은 시절에는 나도 감출 수 없는 질투를 느꼈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여왕벌이 있으면 일벌도 있어야 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한동안은 나도 그들을 본받으려 했다. 그래서 그들을 열심히 관찰해 보았다. 역시 그들은 다른 이들에게 없는 몇 가지를 분명히 가지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그런 능력들의 대부분은 내가 흉내낼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중에서 내가 가장 부러워했던 것은 그들의 통찰력이다. 그들은 마치 우리와는 다른 차원에 사는 것처럼 그들이 받아들인 정보를 입체적, 복합적으로 분석한다. 우리가 주어진 정보의 파악에 집중하고 있는 동안 그들은 뛰어난 두뇌로 그것들을 빠르게 이해하고, 해체하고 다시 조합한다. 그리고 이미 자기가 알고 있던 지식을 첨가하여 맥을 잇는다. 우리가 이차원적인 선 끝에 달린 목표점을 향해 느린 발걸음을 재촉하는 동안 그들은 시선을 확대하고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사차원적인 시공간을 생각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기다란 선을 툭 접어 단숨에 목표점에 다다르는 축지법을 발휘하기도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라마르크는 그런 통찰력을 갖춘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의 아이디어가 뜬금없다 싶을 정도로 너무나 신선하고 독창적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의 관찰과 연구에 의해 얻어진 것이었기 때문에 그는 남들이 볼 수 없는 것들을 보고 분석했을 것이다. 거기다가 그는 내 '재수 없는 친구들'이 가지고 있지 못하던 성실함까지도 갖추고 있었다. 다방면의 학습으로 얻어진 지식, 그리고 꾸준함, 진리에 대한 열망, 그리고 변치 않는 저술력이 결국 그의 말년에 자신의 앞선 업적들을 뒤덮고도 남을 결실을 만들어 내었는데 그것이 여러분들이 이미 들어 알고 있는 '용불용설(use/disuse theory)'이다. 이 가설은 '획득 형질의 유전(inheritance of acquired characteristics)' 혹은 아예 '라마르크 주의(Lamarckism)'라고도 불린다. 이 가설은 사실 한 번 읽고 이해하기가 힘들다. 라마르크도 그것을 알았는지 친절하게도 귀여운 동물 하나를 모델로 등장시켜 설명해 주었는데 그것이 바로 '라마르크의 기린(Lamarck's giraffes)'이다.

(계속)


* 내둥 게으른 시간을 보내다가 추석 연휴를 맞이하여 급하게 글 몇 편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평생 바뀔 수 없을 줄로만 알았던 '올빼미형 생활 습관'이 어느새 '종달새형 생활 습관'으로 바뀌었어요. 쉽게 얘기하면 젊은 시절 그렇게 집착했던 새벽잠이 아예 달아나 버리고 만 것이지요. 추석날이라서 차례 준비를 해야 하는데 필요 이상 일찍 일어난 관계로 딱히 할 일이 없어서 밀린 글을 쓰게 되었네요. 

우리 독자님들 한 해의 가장 풍성한 날에 가족들과 함께 행복한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쉬는 시간에는 엉성한 글이지만 제 글도 재미있게 읽어주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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