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진화론의 진화
진화론에 대한 예열은 충분히 되었으니 이제 최고의 슈퍼스타가 등장할 차례이다. 그의 이름은 초등학생들도 알고 있다. 근대 이후 최고의 과학자를 꼽을 때 물리학에 아인쉬타인이 있다면 생물학에는 그가 있다. 이쯤 되면 독자분들도 모두 짐작하셨을 것이다. 그의 이름은 찰스 로버트 다윈(Charles Robert Darwin, 1809-1882)이다.
다윈은 1809년 영국에서 부유한 의사 집안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의사이자 박물학자였는데 그의 영향을 받아 어린 시절 생물학, 광물학에 관심을 가졌다. 가업을 이어받으라는 압력이 있었던지 처음에는 의과대학에 진학했으나 적성에 맞지 않아 중퇴하고 전과하여 케임브리지 신학대학을 졸업한다. 젊은 시절 다윈의 사고방식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책 한 권이 있다. 찰스 라이엘(Charles Lyell, 1797-1875)이 쓴 '지질학의 원리'라는 책이다. 이 책은 산이나 강 등의 지형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설명한 것으로 라이엘은 이 책에서 산과 골짜기가 있는 울퉁불퉁한 지형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아주 느리게 변화하면서 수백 년에 걸쳐 조금씩 지금의 모습을 갖춰나갔다고 설명했다. 아마도 다윈은 이 책을 읽으면서 생물들도 늦은 호흡을 하며 천천히 변화되어 가고 있지 않을까 상상했을 것이다. 성공회 신부가 되었으나 그의 핏속을 흐르고 있는 생물학에 대한 열정과 모험심은 누그러들지 않았었나 보다. 22세의 젊은 나이에 그는 그의 인생을 바꿀 여행을 떠날 결심을 한다.
1831년 대영제국 해군은 측량선 비글호를 보내 남아메리카 해안과 포틀랜드 섬, 갈라파고스 제도의 지도를 작성하게 했다. 아마추어 과학자였던 선장은 탐험 도중 만나게 될 지형을 연구하기 위해서 탐험대에 지리학자를 추가하기로 결정하였다. 전문 지리학자 여러 명에게 승선을 부탁했으나 아무도 그 험난한 여정을 동행하려 하지 않았다. 이 기회는 여차 저차 해서, 성직자가 되었으나 성경보다는 자연과학에 더 관심이 컸던 초보 과학자 다윈에게로 돌아왔다. 선장에게는 마뜩잖은 결정이었겠지만 이 우연한 인연이 생물학의 역사를 바꿨다. 자신의 재능과 열정을 쏟아부을만한 일을 찾은 다윈은 성실하였다. 선장이 군사 지도를 그리느라 시간을 보내는 동안 다윈은 실증적 자료를 수집하고 그것을 분석하였다. 그리고 '생물은 느리지만 변화한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라마르크에게 기린이 있었다면 다윈에게도 역시 두 가지 대표적인 동물들이 있었다. 갈라파고스 핀치라는 새와 코끼리거북이었다. 이들은 다윈의 영감을 일깨워 그의 진화론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우선 갈라파고스 제도가 어떤 곳인지부터 알아보자.
갈라파고스 제도는 19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중앙아메리카의 에콰도르 연안에서 965km 떨어진 해상에 있다. 이렇게 본토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까닭에 토착민이 살고 있지 않았고 인간에 의한 자연 오염 및 생태계 교란이 일어나지 않았던 곳이다. 갈라파고스 제도에 있는 생물들은 본토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건너와서 각각의 섬에 정착한 것이 아니라 한 번에 제도로 들어와서 이후 각 섬으로 널리 분포되었다고 생각하는 편이 자연스럽다. 즉, 갈라파고스의 섬들은 육지나 다른 섬들과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 있고 인간의 발길도 닿지 않았었기 때문에 그들 고유의 폐쇄된 생태계를 오랫동안 유지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장시간에 걸친 생물의 변화를 관찰하기 위해서 이보다 적합한 곳은 없을 것이다.
핀치(다윈의 핀치라고도 불린다)라는 새는 모든 섬에 있었는데, 종만 같을 뿐이지 각각의 섬에 살고 있는 핀치는 생김새에 차이가 있었다. 특히 부리의 모양이 눈에 띄었는데 길쭉하고 뾰족한 부리부터 굵고 짧은 펜치처럼 생긴 부리까지 다양했다. 부리가 가늘고 뾰족한 핀치들은 주로 벌레를 잡아먹었다. 녀석들은 가늘고 뾰족한 부리를 나무 구멍 속에 박아 넣고 숨어 사는 벌레들을 쪼아 먹었다. 한편 부리가 굵고 짧은 핀치들은 나무 열매를 먹었다. 부리가 펜치처럼 두꺼워서 딱딱한 껍질을 깨고 부드러운 속살을 파먹는데 효율적이었다. 또한 저마다의 부리를 가진 핀치가 사는 섬에는 그 핀치가 먹는 먹이의 양이 많았다. 다시 말해서 각 섬의 먹이의 종류와 양에 따라 그 먹이를 사냥하거나 채집하기 편한 구조의 부리를 가진 새들이 주종을 이루었다는 말이다. 이상의 관찰 결과는 핀치가 자신이 사는 환경에 적합한 부리를 가졌음을 보여준다. 새로운 발견이었지만 이것만으로 수천 년간 인간의 믿음을 지배해 왔던 창조설을 부정할 수 있을까? 그렇지는 못할 것이다. 어쩌면 부리가 뾰족한 핀치와 굵고 짧은 핀치가 자신들이 취하기 쉬운 먹이를 기막히게 찾아 그 섬으로 날아들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다윈의 마음속에 진화론을 더욱 불 지핀 동물이 하나 더 있었다. 몸길이 1m가 넘는 육중한 몸을 가진 갈라파고스 코끼리거북이었다. 이 녀석들은 몸 크기 때문에 움직임이 느리고 거북이라고 부르는 것도 민망할 정도로 헤엄도 칠 줄 모르는 모질이들이었다. 따라서 갈라파고스 제도 안의 섬들을 자유로이 넘나들어 이동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이들에게서도 유사한 현상이 발견된 것이다. 갈라파고스 코끼리거북은 생긴 것만큼 순둥순둥 하여 초식성이고, 수영을 못하니 만큼 몸이 빠지지 않을 정도의 얕은 물가에 산다. 이들은 등에 딱딱하고 무거운 등껍질을 지고 있는데 특이하게도 이 등껍질의 앞부분 모양이 섬마다 다르게 생겼다. 땅에 먹이가 되는 풀이 많은 섬에 사는 코끼리거북은 목을 치켜들 필요가 없어서 그런지 등껍질의 앞부분이 목 뒤를 편평하게 누르고 있었다. 그러나 건조한 기후 때문에 풀이 거의 자라지 않아 뿌리가 목질화 된 단단한 선인장류를 주식으로 삼아야 하는 섬에서는 목을 들어 높은 곳에 있는 목질화 되지 않은 부분을 먹을 수 있도록 등껍질의 앞부분이 움푹 패여 있었다.
이처럼 코끼리거북은 핀치와 마찬가지로 절묘하게 자신들이 살고 있는 환경에 적합한 형질을 갖추고 있었다. 코끼리거북은 헤엄을 칠 수 없기 때문에 좁은 해협이라 하더라도 건너갈 수 없다. 핀치처럼 부리의 모양이 다른 종이 여러 번에 걸쳐 각각의 섬으로 이동했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섬과 섬 사이를 어떻게 건너갔을까? 어느 때인가 우연히 해수면이 낮아져 섬과 섬이 연결되었을 때를 이용해 그 느린 걸음으로 뚜벅뚜벅 건너갔을까? 아니면 물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험가 거북이 바다를 떠다니는 나무등에 올라타 험난한 파도길을 이겨내고 새로운 섬을 찾아 이동한 것일까?
그런 천재일우의 우연을 우선적으로 떠올리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 그래서 다윈은 이 동물들이 자신이 몸담고 있는 환경에 맞춰 자신의 생김새를 바꾸며 진화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운다. 다윈이 라마르크를 넘어선 훌륭한 점은 지금부터이다. 그는 자신의 가설을 스스로 비판한다. 창조론으로 자신의 진화론을 공격하는 것이다. "핀치와 코끼리거북이 환경에 맞춰 살기 위해 진화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그 환경에 적합한 모양으로 그들을 만들어 내신 것은 아닐까?"라는 질문을 해보는 것이다. 사실 이렇게 밀어붙이면 할 말은 없다. 창조론은 그냥 그렇게 믿으라고 강요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에 반하는 증거 몇 개를 거론한다고 해서 쉽게 부정하기가 어렵다. 빼도 박도 못할 확실한 관찰 결과를 들이밀어도 "그래, 그런 것들을 찾아내느라고 수고했어. 하지만 그것이 신의 뜻이야. 그렇게 만들어 놓으셨거든."이라는 한마디 말로 일축되기 십상이다.
다윈이 자신의 가설을 이론으로 발전시키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설득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했을까? 우선은 더 많은 증거들일 것이다. 또 하나는 생물체들이 환경에 적응하면서 변화하였다면 그 기전이 어떻게 되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수천 년간 인간의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는 창조론의 두터운 벽을 허물 수 없었다. 다윈은 비글호의 항해를 마치고 돌아와 이 두 가지를 해결하기 위해 평생을 보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