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로의 초대
미켈란젤로는 불같이 화를 내었다. 1504년 2월 어느 날, 이탈리아 피렌체에 있는 그의 작업실이었다.
“빈치 사람 레오나르도가 도대체 무슨 권한으로 다비드(David; 미켈란젤로가 제작한 석상의 이름, 골리앗을 물리친 유대의 왕)를 로기아(Loggia, 개랑(開廊); 한쪽 벽이 없는 복도)에 설치하라고 하는 것입니까?"
미켈란젤로를 설득하러 온 마르코 시의원은 대답했다. 그는 다비드 석상 배치 건에 대한 성당위원회의 위원이기도 했다.
“그는 성당위원회에서 임명한 고문(顧問)입니다. 피렌체에서, 아니 전 이탈리아 반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존경받는 예술가 아닙니까?”
“그렇게 따지면, 나를 모르는 사람은 있습니까? 거기다가 나는 직접 내 손으로 다비드를 완성한 조각가요. 형편없는 실력의 두치오와 로셀리노가 망쳐놓은 애물단지 대리석에 저렇게 아름다운 영혼을 불어넣은 사람이 누굽니까? 내가 아니었으면 그 대리석은 25년이 아니라 100년이 지나도 여전히 피렌체의 골칫덩어리로 방치되어 감당할 사람이 없었을 것이오. 나는 내 고향 피렌체 성당의 의뢰를 받고, 시에나 성당을 위해 만들던 성인상도 팽개치고 돌아왔소. 저 다비드를 위해, 이 위대한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가 말이요. 나는 다비드의 아버지요. 아버지가 자식이 있을 곳을 정할 수 없다니 말이나 됩니까?”
“하지만 다비드를 어디에 설치하는지는 시뇨리아(시의회)와 두오모(피렌체 성당)가 결정할 문제입니다.”
“도대체 레오나르도가 그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이랍니까?”
미켈란젤로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속내가 의심스러웠다. 시의원은 담담히 대답했다.
“그도 다비드를 아끼는 사람이요. 깊은 벽감(壁龕, 벽면을 우묵하게 해서 만든 공간)을 파고 설치해야 비바람을 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더 오랫동안 피렌체 시민들에게 아름다운 다비드의 모습을 감상하게 해 줄 수 있을 것 아니요. 또한, 다비드의 앞면도 더 강조될 것입니다. 당신이 더 잘 알겠지만 다비드의 뒷면은 다듬어지지 않았소. 사방에서 올려다보는 광장에는 설치하기 어려워요.”
“그건 당신들이 처음부터 피렌체 대성당의 높은 벽에 설치하게 만들라고 해서였습니다. 사람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는 나의 손길도 닿을 필요가 없었소. 멀리서 올려다보는 작품을 만들어 달라고 해서 일부러 다비드의 머리와 어깨, 손을 크게 조각했다는 건 당신들도 아는 사실 아닙니까. 그런 다비드를 버팀벽에 올리기에 아까울 정도라고, 피렌체 시민들과 더욱 가까이 있어야 한다며 계획을 바꾼 것도 바로 당신들이오. 시민들과 가장 가까운 곳은 시뇨리아 광장(시의회 건물이 있는 도심 광장)이오. 로기아가 아닙니다. 다비드의 비율은 광장에 세워져 올려다봐야 최상이란 말이오. 도대체 로기아가 성당 벽보다 나은 것이 무엇입니까? 그곳은 내 작품의 무덤이 될 것이요. 뒷면은 내가 얼마든지 마무리해드리겠습니다. 다비드의 아름다운 나신(裸身)은 막힌 곳 없는 데에 놓여 사방으로부터 피렌체 시민들의 찬사를 받아야 합니다."
(계속)
* 자, 이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그리고 마키아벨리가 함께 살고 있던 르네상스의 피렌체로 여행할 준비가 되셨나요? 제가 가이드가 되어 여러분들을 모시고 함께 떠나겠습니다. 아름다운 예술 작품들의 감상은 보너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