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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범한지혜 Jun 01. 2023

성희롱은 피할 수 없다

성희롱에 대처하는 우리의 첫번째 자세

40년 간 여자로 살아오면서 다채로운 성희롱을 경험했다. 성희롱이 다채로웠던 만큼 성희롱에 대처하는 나의 자세도 중구난방이었다. 


중학생 시절, 학교를 마치고 수학단과학원에 가는 길이었다. 학교에서 학원으로는 지하철 세 정거장을 지나야 했다. 오후 4-5시경 지하철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앉아 있고 듬성듬성 서 있는 사람들이었다. 교복을 입고 지하철 연결부위 가까이 서 있는 사람들 사이 어딘가 서있었다. 고작 세 정거장을 지나면 내릴텐데... 첫번째 정거장을 지났을때 내 몸의 뒷부분에 무언가가 들러붙어 있었다. 내 뒤에 사람이 붙어 있을만큼 지하철은 번잡하지 않은데...? 휙 돌아보지도 못한 채 게 걸음으로 자리를 옮겼다. 고작 두 정거장만 더 이동하면 내리는데... 그리 긴 시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다시 내 뒤에 들러붙었다. 어떻게 시간이 흐르고 어떻게 학원이 있는 지하철역에 내렸는지 알 수 없지만 나는 기어코 내려야 할 지하철역에 내렸다. 지금이면 아무 역이나 내려버리기라도 했을텐데, 14살의 나는 그런 생각은 추호도 하지 못했다. 


여고 시절,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등장하는 바바리맨은 그나마 나았다. 나 혼자 당하는 것은 아니었다. 바바리맨이 출몰했다는 소리가 들리면, 자율학습 감독을 하던 남자 선생님들이 우리가 모두 하교할 때까지 교문을 지켜주셨다. 그 선생님들은 모두 지금쯤 어디 계실까. 


가장 황당했던 성희롱은 군법무관으로 임관하기 위해 훈련소에 입소하던 날이었다. 1월의 한 겨울, 괴산에 있는 학생군사학교로 가기 위해 혼자 내 몸만한 캐리어를 끌고 하필 가장 붐비는 아침 출근시간에 지하철을 타고 동서울버스터미널로 가던 길이었다. 사람의 무리에 쓸려서 내리던 와중에 방어할 틈도 없이 당했다. 그놈의 얼굴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 놈은 두 손으로 정확하게 내 가슴 위치를 움켜쥐고 사람의 무리에 쓸려 사라져갔다. 나역시 사람의 무리에 쓸려 그 놈을 돌아볼 틈도 없었다. 무단히 길 가다 뇌가 울릴 정도로 뺨을 세게 후려 맞은 듯 얼얼했다. 진짜 뺨은 맞아본 적도 없는데!


이미 다채롭다 생각하겠지만, 직장에서의 성희롱 경험도 결코 빠뜨릴 수 없다. 드라마에서 많이 본 장면이었다. 남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남초 직장에 다니면서도 성적인 이슈가 나에게 발생하리라는 생각은 별로 하지 못했다. 나름 직장생활의 관록이 있다 자신하던 7년차 정도였던 것 같다. 남자인 군법무관 선배들 10명 정도와 군법무관 아닌 남자 장군 한 명, 나와 나보다 몇 년 후배인 여자 군법무관 한 명이 같이 술자리를 하고 있었다. 나와 내 여자 후배는 남자 장군 바로 맞은 편에 앉아 있었는데, 군법무관 선배들 중 한 명은 우리 둘을 차례로 소개하고, 맥주 3000cc짜리를 내 손에 쥐어 주며, "술도 따라 드리고 그러지 뭐해?", 오징어 뒷다리를 뜯어 내 손에 쥐어 주며 "안주도 입에 넣어드리고 좀 그래봐." 


중학교 시절 칠판 높은 곳에 문제를 써두고 풀이를 시키고는 작대기로 치마 속을 쿡쿡 쑤시던 키 큰 수학 선생님. 나를 "사모님, 사모님!"이라고 불러대던 상급자인 군인. 아직 나의 성희롱 경험을 다 말하지 못했지만, 점점 구차스러운 기분이 들려고 하니 그만 하려한다. 나는 언젠가 내 일생 나의 다채로운 성희롱 경험을 집대성하고 싶었다. 내 뒤에 붙은 그것이 사람이었는데 사람 같지 않았던 그 느낌을 말하고 싶었다. 바바리맨의 우스꽝스러운 자세가 왜 무서웠는지 한 번 쯤 생각해보고 싶었다. 두꺼운 패딩을 입었음에도 정확히 가슴 부위를 움켜쥘 수 있었던 그는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할까 궁금해졌다. 내가 좋아했던 회사 선배들이 한 순간에 낯설게 느껴지던 그 느낌을 말하고 싶었다. 


성희롱을 생각하면 기분이 나쁘다는 일시적인 감정과, 그 뒤를 바로 따라오는 것은 그들은 도대체 “왜?“라는 생각이다. 

그들은 도대체 왜 성희롱을 하는가?


나의 다채로운 성희롱 경험들 속 그들은 너무나 평범했는데… 평범한 대학생이었고, 평범한 40대의 수학 선생님이었고, 평범한 선배였고, 평범한 지하철 탑승객이었는데… 그 사람들 모두 누군가의 아들이고, 남편, 아빠, 친구일텐데... 그렇게나 평범한 그들이 살면서 어떠한 독특한 경험과 역사를 가지게 되었길래 성희롱을 하는 걸까? 


한나 아랜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 속에서 유태인 학살에 가담한 아이히만이 지극히 평범하고 가정적이고 정상적인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아이히만을 검진한 의사들 조차 아이히만의 평범함 때문에 오히려 스스로가 미친 사람 같이 느껴졌다고 한다.


내게 성희롱 컬랙션을 만들어준 그들은 특별한 범죄인상도 아니었고, 특별히 느물거리거나 느끼한 관상도 아니었다. (관상은 과학이랬는데…) 지극히 평범한 관상의 사람들이 성희롱을 저지른다는 것이 과학적 결론이라면, 성희롱은 모든 사람의 유전자에 내재된 알고리즘인걸까?


굳이 아이히만까지 굳이 소환하지 않더라도.


그렇다. 성희롱은 피할 수 없다.


너무나 평범한 사람들이 특별한 문제 없이도 저지를 수 있는 성희롱. 사람이 누구나 조금씩 이상하다고 하지만, 일상 생활을 해나가는 한, 그들의 이상한 점은 이상하지 않은 점이 된다. 그들 마음 속과 그들의 과거, 그들의 유전자를 세밀하게 털어 볼 수 있는 현미경이 없는 한, 평범한 사람이라고 말해도 무방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성희롱은 당하는 사람에게는 길 가다 갑자기 하늘에서 벽돌이 떨어지는 것과 같고, 동남아 스타일의 소나기가 쏟아지는 것과 같다.


성희롱에 대처하는 우리의 첫번째 자세는 성희롱을 사라지게 하는 교육이라거나 예방사업이 아니라, 성희롱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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