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토화와 자기표현
한 개인에게 공간은 자기표현(Self-expression)의 수단 중 하나이다. 내 방을 꾸미는 일, 사무실의 내 책상 위에 내 물건들 — 가족이나 연인의 사진, 좋아하는 스타의 굿즈, 좋아하는 책 등 — 을 올려두는 일 모두 이런 자기표현의 수단이 된다. 환경심리학에서는 이러한 인간 행위를 영토화(Territorialization) 라고 이른다. 공간을 통한 자기표현이 개인 외부의 타인을 향하는 동시에, 개인 스스로를 향하기도 한다는 점은 영토화와 자기표현에서 매우 흥미로운 사실 중 하나이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것과 상관없이, 내 취향대로 잘 꾸며진 방을 바라보며 뿌듯해하지 않는가?
비단 현실의 공간뿐 아니라,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상의 '공간' 역시 이러한 자기표현의 한 수단임은 우리 모두에게 명료하다.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의 공간성은 우리가 자신의 게시물, 스토리, 그리고 하이라이트들을 매우 신경 써서 관리한다는 점에서, 즉 영토화한다는 점에서 잘 드러난다. 우리는 올리는 게시물들이 가급적 스스로를 잘 반영하는 — 혹은 반영한다고 생각하는, 즉 추구미 — 하나의 톤으로 정돈되기를 바란다. 2024년 메타(META) 측에서 갑작스럽게 게시물의 비율을 바꾸어 잘 정돈해 놓았던 나의 공간이 흐트러졌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불쾌함을 느꼈는지 생각해보라. 인스타그램 사용자들에게 이 사건은 단순한 운영 정책의 변경이 아니라, 자신들이 열심히 가꾸어 온 영토를 침범당한 사건이었다.
인스타그램의 영토화와 관련하여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우리가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많은 게시물들이 실제의 공간, 그리고 그 공간에서의 경험을 반영한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공간을 꾸미는 것이 자기표현의 한 수단인 것처럼, 내가 어떤 공간을 소비하는지도 패션, 음악, 혹은 기호식품의 소비와 마찬가지로 자기표현의 한 방식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당연히, 공간 경험 역시 대중이 소비할 수 있는 하나의 상품이라는 점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영토화는 자기표현의 한 수단이고, 인스타그램이 대중에게 비지리적 차원의 영토화를 가능하게 했다면, 이러한 공간 경험의 상품화는 개인의 자아와 어떤 관련을 맺는가?
개인의 자아(self)를 특징짓는 기질 중 하나는, 개인들이 저마다 자전적 작가(autobiographical author) 라는 점이다. 발달심리학적 관점에서 인간은 이른 청소년기부터 성인 초기까지의 과정에서 자아의 자전적 특질을 갖추게 된다. 즉, 스스로를 서사적인 흐름을 통해 판단하고 표출할 수 있는 역량이 성장하며, 이는 저마다의 독특한 과거 경험들이 현재의 자신을 어떻게 형성했고, 어떤 미래를 향한 비전을 갖게 되었는지에 대한 통일된 관점을 형성하게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자신의 경험이 오롯이 독자적인 토대이자 나를 구성하는 양분이라 여긴다. ‘가치 있는 경험’을 위해 아낌없는 시간과 자원을 투자하는 모습은, 앞으로 해 나갈 경험들 또한 미래의 나를 형성하는 토대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과연 우리의 경험은 오롯이 우리 스스로에 의해 이루어지는가? 물론 아니다. 우리는 각자의 방을 꾸밀 때, 자신의 취향에 맞는 물건들을 고르기 위해 여러 온라인 쇼핑몰을 돌아보고, 유튜브에서 상품 후기를 살펴본 뒤, 결국 어떤 산업 생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상품들을 구매한다. 우리에게는 스스로의 의지로 선택할 자유가 있지만, 그 선택의 범주는 대부분 사회적 체계(System) 안에 주어진 것들에 한정된다. 그렇기에 우리가 스스로의 경험이라 여기는 것의 많은 부분은, 사실상 외부 체계에 의해 미리 결정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우리는 자신을 개인의 독특한 경험의 총체로 설명하지만, 우리의 경험들은 상품으로 제작되어 유통되고 소비된다.
우리 집 한구석의 작은 방을 꾸미는 것으로 나의 영토를 갖기 시작했던 우리는, 인스타그램이라는 영토에 우리의 경험을 축적해 간다. 그리고 이 경험들의 많은 부분은 특정 공간을 기반으로 하는 공간 경험이다. 인스타그램은 사진과 영상 중심의 플랫폼이기 때문에, 다른 SNS 플랫폼에 비해 이러한 성격이 특히 두드러진다. 사진과 영상은 현실의 한 순간을 시공간적 연속에서 박리해내어 물질화하기 때문이다. 또한, 개인적인 사진첩과는 명확히 구분되는 사회적 특성으로 인해, 인스타그램은 공간 경험 상품을 선보이는 가장 효과적인 쇼케이스가 되었다.
이전까지 인스타그램과 비견할 만한 경험의 매대는 없었으며, 인스타그램의 등장은 경험의 상품화를 빠르게 가속시켰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의 상품화는 필연적으로 경험이 경제에 귀속됨을 의미한다. 어떤 경험들은 편의점 삼각김밥처럼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어떤 경험들은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처럼 소수에게만 열려 있다. 사람들은 더 좋은 경험을 경쟁적으로 소비하고, 이러한 경험의 수집이 곧 나의 영토를 이루는 자산으로, 즉 자기표현의 수단이 된다.
부모님과 좋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멋진 식당을 찾고, 연인과의 데이트를 위해 분위기 좋은 공간을 검색하며, 혹은 나의 성장을 도와줄 만한 전시를 찾아다닌다. 마음에 드는 청소기를 고르기 위해 카탈로그를 넘기던 20년 전의 우리처럼, 이제는 인스타그램에서 타인의 공간 경험을 빠르게 훑어본다. 마음에 드는 공간을 발견하면 캡처해 두었다가 적당한 때에 방문한다. 그리고 역시나 '나만의'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게시한다. 이렇게 하나둘 모아온 공간 경험들은 게시물과 하이라이트에 쌓여 나의 영토를 이룬다. 그렇다면, 이렇게 만들어진 나의 영토는 표현과 모방 그 중간 어디쯤에 위치하는가?
이 글의 목적은 SNS가 야기하는 사회적·심리적 문제를 고발하거나 자아의 위기를 역설하는 데 있지 않다. 이 글은 개인의 자아와 자기표현, 그리고 살아가며 필연적으로 마주치는 체계들 사이의 관계를 그려내고자 했다. 우리는 저마다 무대 위에 선 한 명의 배우다. 배우들이 저마다의 롤모델을 가지고 무대에 오르듯, 우리 역시 각자의 역할을 가지고 자신을 표현하며 세상과 소통한다. 배우의 역할이 각본에 의해 규정되듯, 개인들 역시 외부 체계에 크게 영향받는다. 그러나 같은 햄릿을 연기하는 배우들이 모두 같은 햄릿은 아니듯, 동일한 체계 안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개인들 역시 저마다 다른 자아를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먼저, 우리가 체계와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으며 어떻게 영향받고 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