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집에서 자라난 딸이 뒤늦게 알게 된 엄마의 삶
내 기억 속 어린 시절의 처음 장면은 의외로 따뜻하다.
나는 일곱 살까지 꽤 잘 살았던 것 같다.
제일 좋다는 유치원에 다녔고,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했다. 마당이 있는 큰 단독주택에서 살았고 집은 늘 넓고 밝았다. 어린 나에게 세상은 꽤 안정적인 곳이었다.
하지만 그 안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 순간 모든 것이 무너졌다.
집안은 빠르게 가난해졌다.
빚은 늘어났고, 우리가 살던 집도 더 이상 우리의 것이 아니었다.
그때부터 삶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졌다.
예전에는 당연했던 것들이 하나씩 사라졌고, 대신 불안과 싸움이 집 안을 채우기 시작했다.
엄마는 어린 나이에 결혼했다. 제대로 사회생활을 해본 적도 없이 아빠를 만나 가정을 꾸렸다. 그래서인지 집이 기울기 시작했을 때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배운 것도, 경험도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엄마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시장에 가게를 열어보기도 했고, 보험이나 판매 같은 일을 시작하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엄마는 늘 무언가를 팔고 있었다.사람을 만나고, 설득하고, 무언가를 판매하는 일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중에는 다단계 같은 일도 있었던 것 같다.
엄마는 그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 뛰어들었을지도 모른다. 그저 돈을 벌어야 한다는 마음 하나로 시작했을 것이다.
아빠는 조금 달랐다.
일은 열심히 했지만 돈을 모으는 사람은 아니었다. 돈은 들어오면 흘러나갔다. 술도 좋아했고, 한탕을 노리는 일에도 쉽게 빠졌다. 가진 것보다 더 큰 것을 꿈꾸는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점점 더 맞지 않았다.
그래서 집 안에는 늘 싸움이 있었다.
우리는 집이 없던 시절도 있었다. 가게 한편에 있는 작은 공간에서 가족 네 명이 함께 살았다. 오빠와 나, 그리고 엄마와 아빠. 나는 그때 중학생이었다. 그 시절의 나는 그냥 모든 것이 싫었다. 집에 들어가면 들리는 싸우는 소리도, 돈 걱정으로 가득한 공기도, 어른들의 무너진 표정도 전부 싫었다.
그저 평범한 가족이 부러웠다. 아무 일 없이 저녁을 먹고, 조용한 집에서 사는 그런 평범함이 너무 멀게 느껴졌다.
시간이 지나 부모님은 결국 이혼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때 나는 처음으로 조금 편해졌다.
더 이상 밤마다 싸우는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그 무렵 말없이 우리 곁을 떠났다.
아빠와 나 오빠는 그대로 남았다.
아빠에게도 문제가 많았지만 그래도 그는 우리를 책임지려고 했다. 적어도 내가 스무 살이 될 때까지는 그랬던 것 같다. 완벽한 아버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끝까지 남아 있었던 사람은 아빠였다.
엄마의 삶은 그 이후에도 순탄하지 않았다.
여러 번 사기를 당했고, 또 다른 일을 시작했다가 실패하기도 했다. 누군가를 만나기도 했지만 오래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엄마는 뇌출혈로 쓰러졌다.
죽을 고비를 겨우 넘기고 다시 살아났다.
그때 나온 보험금이 있었다.
어쩌면 그 돈은 엄마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마는 그 돈으로 또 한 번 사기를 당했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화가 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허탈하기도 했다.
왜 같은 일을 반복할까. 왜 또 믿을까. 왜 또 그렇게 쉽게 무너질까..하지만 그 일이 있고 나서야 엄마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큰돈을 꿈꾸지 않게 되었고,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을 믿지 않게 되었다. 그제야 엄마는 조용히 식당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는 평범한 일이었지만, 그 일은 적어도 누군가의 말에 속아 넘어가는 일은 아니었다.
여전히 엄마에게는 가진 것이 많지 않다.
하지만 지금의 엄마는 예전보다 조금은 단단해 보인다.
어쩌면 엄마는 아주 늦게 철이 든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이제야 조금씩 엄마의 삶을 이해하게 된다.
서른이 된 지금의 나는, 예전과는 조금 다른 눈으로 엄마를 바라보게 된다.
그때의 엄마는 아직 너무 어렸다.
배운 것도 많지 않았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대로 알지도 못했다. 그런 상태에서 가난은 갑자기 찾아왔고, 아이 둘을 키워야 했다.
엄마에게 선택지는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장사를 했고, 판매 일을 했고, 누군가가 돈을 벌 수 있다고 말하면 그 일을 믿고 시작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위험한 선택들이었지만, 그때의 엄마에게는 그게 유일한 길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스무 살이 되자마자 꿈을 포기하고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나는 부모님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고 있는 것 같다.그래도 가끔 생각한다.
그때 엄마는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왜 그런 길을 반복해서 걸었을까.
예전의 나는 그 질문에 화부터 났다.
지금의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엄마는 아마 그저 살아보려고 했던 것 같다.
서툴렀고, 많이 틀렸고, 많이 속았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했던 사람.
그래서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여전히 엄마의 모든 선택을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마음만큼은,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그때의 그 선택들이 얼마나 두려운 상황 속에서 나온 것인지.
얼마나 막막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냈을지.
서른이 되고 나서야 나는 깨닫는다.
그들이 나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훨씬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삶과 싸우고 있었다는 것을.
그래서 이제는 예전처럼 쉽게 말할 수 없다.
‘나는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라고.
대신 이런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살아내려고 했구나.’
아마 완전히 이해하게 되는 날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나는, 그 시절의 엄마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