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다시 만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지금 나는 엄마를 다시 만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원래 많은 사람을 만나는 성격이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마음속에 어떤 결핍이 있었는지 늘 조금 우울했고, 외로운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그나마 가족이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에게는 작은 힘이 되었다.
완벽한 가족은 아니었지만
나에게는 어떤 위안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그래서 엄마를 쉽게 내칠 수는 없었다.
혼자 살면서 성인이 된 뒤
나는 몇몇 친구들을 만나게 됐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 역시 사람을 쉽게 믿는 편이었다.
친구가 아프다고 하면
정말 아픈가 보다 생각했고,
돈이 없다고 하면
내가 조금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마음을 쉽게 여는 편은 아니었지만
한 번 마음을 연 사람에게는
정말 잘해주려고 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도 비슷한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기댈 곳이 많지 않았던 사람,
어쩌면 나와 비슷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가까워진 사람들에게
쉽게 마음을 열고 매정하게 대하지 못했던 건 아닐까.
나 역시 그런 경험을 했다.
믿었던 친구에게
사기를 당한 적이 있었다.
그 일을 겪고 나서야
나는 한 가지 결심을 했다.
친구와는 절대 금전적인 거래를 하지 않겠다고.
그때 처음으로 엄마의 마음을 조금 이해하게 된 것 같았다.
사람을 믿고 싶었던 마음,
누군가와 가까워지고 싶었던 마음.
어쩌면
그건 엄마도 나도 비슷했는지도 모른다.
지금 나는 친구가 많지 않다.
한 번은 아예 모든 사람과 연락을 끊고
혼자 살아본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시간이 오히려 편하게 느껴졌다.
지금 내 곁에 남아 있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는다.
그 사람들과도
금전적인 문제는 만들지 않으려고 한다.
그리고 예전처럼
누군가에게 쉽게 다가가는 일도
이제는 조금 어려워졌다.
한 번 상처받은 마음은
완전히 이전으로 돌아가지는 않는 것 같다.
그래도 지금의 삶이
나는 나쁘지 않다.
다른 사람에게 맞추기보다
나 자신을 돌보며 살아가는 지금의 방식이
나에게는 조금 더 편안한 삶인 것 같다.
나는 엄마의 삶을 보며
많은 것을 배웠다.
때로는 정답보다
다른 사람의 시행착오가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도 한다.
어쩌면 내가 엄마를 이해하게 된 순간은
나 역시 엄마와 닮아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였는지도 모른다.
엄마도 그 순간
자신이 할 수 있는 선택을 했을 뿐이었을 것이다.
그 선택이 결국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 되었을지라도
엄마는 그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엄마를 이해하게 된 순간은
나 역시 외로웠고,
그래서 누군가를 믿어 보기도 하고
그 믿음에 상처를 받아 보기도 했을 때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제는
그때의 엄마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