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이 끝난 뒤
엄마는 바로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중환자실에서
눈을 떴다가 다시 잠들기를 반복했다.
그때의 기억은
사실 또렷하지 않다.
그래도 하나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중환자실 면회 시간에
엄마가 잠깐 눈을 떴던 날이다.
내가 너무 울고 있으니
엄마가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손을 꼭 잡고 있었다.
그 순간은
이상하게도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는다.
나는 회사에 다니고 있었고
병원과 일을 오가며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다.
매일 갈 수는 없었지만
가능한 날에는 병실에 들렀다.
아빠도 병원을 자주 찾았다.
병실에 가면
아빠는 잠든 엄마 옆에 앉아
조용히 팔과 다리를 마사지해 주고 있었다.
말은 거의 없었지만
그냥 묵묵히 그 자리에 있었다.
엄마가 일반 병실로 옮겨지고
간병인이 필요해졌을 때
나는 아빠에게 전화를 한 적이 있다.
나는 아빠에게 말했다.
우리는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난 사람이 아니지만
아빠는 엄마를 선택해서 결혼한 사람이라고.
그래서 엄마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그 책임은 아빠에게도 있는 거라고.
우리에게만 그 책임을 떠넘기지 말라고 말했다.
나는 일을 그만둘 수도 없었고
간병인을 쓸 형편도 아니었다.
병원비는 내가 냈다.
금액이 작지는 않았지만
어떻게든 먼저 해결했다.
다행히 엄마는 보험이 있었고
나중에 병원비는 다시 돌려받을 수 있었다.
그때는
이런 현실적인 문제들을
먼저 해결해야 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상황이 오면
많은 것을 포기하고
가족 곁에 남는 선택을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동안 마음속에 쌓여 있던
서러움과 원망이
나를 조금 더 현실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 것 같았다.
병원에 있으면서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들을 보기도 했다.
밤새 병실을 지키고
일을 쉬고
당연하다는 듯 간호를 하는 가족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어떻게 살아오면
저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어쩌면
내가 늘 부러워하던
그 평범한 가족들의 모습이었을까.
병원에 있으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서
엄마는 조금씩 괜찮아졌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
엄마는 이런 말을 했다.
혼자 있어도 괜찮으니까
굳이 자주 오지 않아도 된다고.
엄마도 아프고 불편했을 텐데
어느 순간 내 눈치를 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나도 괜찮다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내가 모르는 사이
엄마에게 틱틱거렸던 순간들이 있어서
엄마도 눈치를 보고 있는 건 아닐까.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이제는
화내지 말자고.
나는 그동안
부모에게 말을 할 때
화가 섞인 말투로 말하는 일이 많았던 것 같다.
사실은
조금 더 좋게 말할 수도 있었는데도
마음속에 쌓여 있던 감정 때문에
늘 날카롭게 말하곤 했다.
그런데 엄마가 아프고 나서부터는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됐다.
부모를 원망보다는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마음속에 있던
미움을 조금씩 지워보자고.
우리 부모는
그저 가난했고
많이 배우지 못했고
그래도 아이들을 키워보려고
나름대로 아등바등 살아온 사람들이었을 뿐이라고.
병원 복도 끝에서
나란히 앉아 있던
엄마와 아빠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처음으로
그 두 사람이
조금은 약한 사람들처럼
보였던 것 같다.
그리고 그때부터
내 마음속에도
작은 소화기 하나가 생긴 것 같았다.
올라오던 화를
조금씩 눌러 끄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