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 겨울, 스키강사 아르바이트로 일했던 이야기

면접, 강습, 예상치 못한 사고까지

by 밤나무


공백의 계절, 스키장에서 보내기로 했다


5급 공채에 합격하고 나면, 연수원에 들어가기까지 몇 개월의 휴식기가 주어진다.

누군가는 여행을 떠나고, 누군가는 쉬면서 다음을 준비하는 이 시간 동안 나는 운동을 좋아하는 성격을 살려 무언가 색다른 걸 해보고 싶었다.


공고사이트에서 스키 리조트의 모집 공고를 발견했고, 망설임 없이 지원서를 냈다. 바로 다음 날, 면접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스키학교 면접

면접은 스키장 개장 전에 이루어졌다. 하얀 눈 대신 초록색 잔디가 슬로프를 덮고 있었다.


사무직 면접이 아닌 만큼, 복장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됐다. 나는 청바지에 흰 니트, 자켓을 걸치고 갔다. 면접장에 도착하자, 스키학교장이 “자켓은 벗고 편하게 하세요”라고 말씀해 주셨고, 면접은 편안한 분위기에서 짧게 진행되었다.


Q. 스키학교 지원 동기. 1지망은 패트롤인데, 2지망인 스키학교도 괜찮은지?

> 평소에도 운동을 좋아하고, 특히 스키도 배우면서 강습을 경험해보고 싶어서 지원했다고 했다.

패트롤을 하면 스키를 더 많이 탈 수 있을 것 같아서 지원했다고 했지만, 면접관은 패트롤의 주요 업무가 펜스 보수나 순찰이라며, 스키를 체계적으로 배우려면 스키강사가 적합하다고 했다.


Q. 다른 운동도 좋아하는지?

> 로드 자전거를 즐겨탄다고 답변했다.

어떤 자전거를 타냐고 물어서 ‘자이언트 FCR’을 탄다고 했더니, 면접관들은 “오, 좋은 자전거 타네요~” 하며 가볍게 웃었다. (그분들은 자이언트 TCR advanced, 피나렐로를 타신다고)


Q. 지금까지의 생활과 스키학교에서의 생활은 다를 수 있다. ‘wild 해질 필요’가 있는데 괜찮겠나?

> 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경험이 있다고 말씀드렸다. 운동은 아니었지만, 스키 강사를 하면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강사 일을 하면서 실제로도 스키 실력 못지않게 아이들을 티칭하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걸 직접 느꼈다.


Q. 국제기구 인턴 경험이 있던데, 무슨 일을 했나?

재난대응 관련 업무를 했다고 말씀드렸어요.면접관 중 한 분이 개발 분야에 관심이 있다고 하시며 진로 방향까지 물어보시기도 했고,‘영어는 문제 없겠군. 영어 잘하나요?’라고 물으셔서 ‘기본적인 의사소통은 가능하다’고 대답했다. 아마 이 대답 덕분에 외국인 강습을 맡게 된 것 같다.


Q. 언제부터 근무 가능한가?

당시 외국어 학원을 다니고 있어서 12월부터 입사 가능하다고 말씀드렸다. 스키장 측은 조기 입사가 가능한 지원자를 우대하는 분위기였고, 특히 1년차 강사들은 첫 강습에 나가기 전 교육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빠를수록 좋다고 설명하셨다.


참고로 스키장은 짧은 시즌 동안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구조라서 특별한 결격 사유만 없다면 합격률이 높다고 생각한다. 다만 업무 강도가 높아 초반에 퇴사하거나 잠적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면접 결과 나는 스키강사로 배정받았고, 그렇게 내 겨울은 스키장 숙소에서 시작되었다.



스키강사의 하루는 이렇게 흘러간다


생활은 스키장 리조트 내 강사 전용 숙소에서 했다. 숙소는 공용공간과 침실 두 개로 구성되어 있었고, 각 침실에는 2층 침대가 두 개씩 놓여 있었다.


하루 일정은 대략 이렇다:

• 기상 후 조식 (리조트 식당)

• 스키강사 대기실 집합: 당일 강습 스케줄과 유의사항 브리핑

• 준비운동 후, 원한다면 슬로프 자유이용

• 오전 강습

• 점심 식사 후 오후 강습

• 저녁 식사 후 야간 강습 or 자유 스킹


자유 스킹의 경우 저연차 강사는 반드시 고년차 강사와 동행해야 했다. 나는 스키 실력을 늘리고 싶어서 하루도 빠짐없이 선배들을 따라다니며 슬로프에 올랐다. 내가 생각하는 스키강사의 최대 장점은 바로 이거다.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실전에서 배우는 고급 스키 강의.



다양한 강습, 다양한 사람들


스키학교에서는 나름 체계가 있었다. 1~2년차 저연차 강사는 주로 입문자나 기초 강습을 맡았고, 그중에서도 아동 대상 수업이 많았다.


단체 수업과 개인 수업 모두 경험했는데, 외국인 강습이나 장애 아동 대상 수업도 맡은 적이 있다. 특히 아동 수업은 장비 착용부터 눈 위에서 걷는 법, 넘어지고 일어나는 법까지 모든 걸 밀착 지도해야 했다.


리프트에 태우는 것조차 긴장의 연속이었고,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일이었다. 스키 실력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관찰력, 체력, 인내심 모두 필요한 일이었다.



잊을 수 없는 수업, 말 대신 태도로


기억에 남는 수업이 있다. 중학생 정도 된 장애 아동 두 명과 그들의 어머니 두 분이 함께 초급 수업을 들은 날이었다.


말은 서툴렀지만 두 아이는 정말 성실하게, 진심으로 배우려 했다. 그 모습에 감동받아 나도 더 열심히 가르쳐주고 싶어졌다.

기초 자세도 어려워하던 아이들이 A자 활강으로 내려오게 된 순간, 나는 감동을 느꼈고, 틈틈이 사진과 영상을 찍어 추억을 남겨주었다.


아이들과 함께한 어머니들도 뿌듯해하셨고, 나 역시 보람을 느꼈다. 지금도 그 아이들이 어딘가에서 스키를 즐기고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사고


어느 날은 외국인 성인 두 명의 중급 강습을 진행하고 있었다. 초심자가 아니었기에 중급 슬로프에서 수업을 시작했고, 내가 시범을 보이며 활강하던 도중 사고가 일어났다.


중국인 관광객 한 명이 제어 불가능한 상태로 수직 활강해 내려왔고, 나는 그를 피하려 했지만 충돌했다. 순간적으로 튕겨나가 쓰러졌고, 너무 아파서 일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강습은 30분 정도 남아 있었다. 아픈 다리를 부여잡은 채 끝까지 강습을 마치고 의무실로 향했다. 무릎은 퉁퉁 부어 있었고, 정형외과에서 찍은 엑스레이 결과는 심한 인대 손상. 통깁스. 시즌 아웃.


몇 주만 쉬면 복귀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번 시즌은 끝났습니다”라는 의사의 말에, 눈물이 났다.



산재 처리와 싸움, 그리고 분노


사고 이후, 당연히 산재 처리를 요청했다. 근무 중에, 근무지에서 발생한 사고였으니까. 하지만 스키학교는 처음부터 산재 처리를 회피하려 했다.


대화를 통해 해결이 어려워지자, 나는 지방노동청에 사업장을 신고했다. 그 이후로 스키학교 측의 회유와 압박이 이어졌고, 그러던 중 나처럼 산재 처리를 못 받은 아르바이트 강사들이 여럿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스키강사 아르바이트는 사고 발생 확률이 높은 일이다. 하지만 스키학교는 군대식 문화가 강하고, 대부분의 강사들은 대학생이거나 20대 초반으로 권리 주장에 익숙하지 않다.


결국 많은 경우 ‘열정’이라는 이름의 착취, ‘페이 없는 헌신’이 되곤 한다.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처우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다는 이유로 부담을 주고 회피하려는 구조, 그 안에서 무력해지는 젊은 노동자들의 현실을 방관하고 싶지 않았다.



마치며 – 스키강사가 되고 싶은 이들에게


스키강사 아르바이트는 쉽지 않은 일이다. 몸이 고되고, 책임도 크며, 때로는 위험하다. 하지만, 스키를 배우고 싶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즐겁다면 그만큼 얻는 것도 크다.


무엇보다, 나는 이 경험을 통해 스키 실력, 인내심, 책임감 그 이상을 배웠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스키장에서의 겨울을 꿈꾸고 있다면, 이러한 현실도 함께 준비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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