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도르프 유치원에 보내지 않기로 했다

현실과 다시 마주하게 된 이야기

by 밤나무

입학 신청서를 제출하고

이전 글에 썼듯이, 우리 부부는 한때 첫째를 발도르프 유치원에 보내기로 마음을 먹었다. 입학신청서를 제출했고, 아이 면접과 부모 상담을 다녀왔으며, 신입가정 부모교육까지 모두 마쳤다. 기관에 갈 때마다 느꼈지만, 환경이 참 마음에 들었다. 꼬불꼬불 산 마을로 들어가는 길부터 동화 같았고 도시와 다르게 공기도 깨끗했다. 시설이 허름하다고 느낄 수도 있었지만, 교사와 부모가 손수 지은 듯한 공간이라 더 정겹게 느껴졌다. 갈 때마다 이곳에서 아이가 유년기를 행복하게 보내는 상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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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 변경을 결심하고 건네받은 질문들

현실적인 어려움을 뒤로한 채 우리 부부는 발도르프 유치원의 등하원에 편한 곳으로 새로운 거주지를 정했고, 기존에 다니고 있던 직장 어린이집에도 기관 이동을 하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지금 다니는 곳도 만족스럽고 아이도 잘 적응해서 다니고 있었지만, 자연과 가까운 환경에서 유년기를 보내게 해주고 싶다는 이유였다.

원장님은 부모의 선택을 존중한다고 하시면서도, 현재 기관을 유지하는 것도 충분히 좋은 선택일 수 있다며 몇 가지 이유를 차분하게 말씀해주셨다.

첫째는 아이에게 기관을 옮기는 스트레스가 생각보다 클 수 있다는 점, 둘째는 주양육자인 엄마가 너무 지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긴 통학 거리와 등하원 라이딩, 그리고 긴 방학을 감당해야 하는 구조에 대한 이야기였다. 셋째는 아이가 감각통합 치료와 놀이 치료를 병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만 3세는 중요한 시기이니 치료를 유지하는 것이 좋겠다는 점, 그리고 현재 기관에서도 아이의 발달에 필요한 부분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는 말씀이었다. 넷째는 대안 교육과정을 선택할 경우 이후 제도권 교육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이 생길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다시 고민하게 된 계기

원장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 우리는 각 이유를 하나씩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다. 아이의 적응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어느 정도 성장했고 새로운 환경에도 잘 적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에 큰 걸림돌은 아니었다. 두 번째 이유는 솔직히 마음에 많이 남았다. 꽃피는유치원에 보내기 위해서는 부모 중 한 명이 아이의 등하원과 방학을 전담해야 하는 구조였다. 여기에 더해 아이 한 명당 월 100만 원이 넘는 교육비를 감당해야 했다. 아이 둘을 발도르프 유치원에 보내는 것은 외벌이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했고, 맞벌이로는 등하원과 여름방학 6주, 겨울방학 9주를 버티기에 한계가 있었다. 친정어머니가 도와주신다고는 했지만, 둘째까지 생각했을 때 6년 이상을 부모님의 도움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상황은 너무 길게 느껴졌다. 세 번째, 발달 치료에 대해서는 아이의 사회성이나 예민했던 부분이 많이 개선되고 있다는 점에서 과감하게 중단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네 번째 이유인 제도권 교육과 대안 교육에 대해서는 우리 부부도 아직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상태였다. 아이가 원하고 아이에게 잘 맞는다면 굳이 제도권 교육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이 부분은 큰 고려사항은 아니었다.


끝내 외면하기 어려웠던 현실

결국 가장 크게 남은 것은 현실적인 문제였다. 사실 우리는 아이를 발도르프 유치원에 보내기 위해 이사까지 결정했고, 처음으로 큰 대출을 받아 집을 마련했다. 지금도 이사 준비에 한창이다. 기관을 옮기기 위해 이사를 결정해놓고 돈이나 시간 같은 현실적인 이유로 인해 결정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았다. 우리 부부는 오랜 이야기를 나누었고 결국 현재 다니는 직장 어린이집에 더 보내기로 했다. 결정을 하고 나니 아쉬움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한편으로는 후련했다. 교육비와 생활자금 마련을 위해 대출을 더 받고 부모님에게 손을 빌려가며 생활을 이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경제적인 부담을 안은 채 부모님에게 의지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삶이 더 위태롭게 느껴졌다. 안정적인 가정에서 아이들이 자라는 것이 아이에게도 더 안정감을 줄 거라는 믿음이 강해졌고, 그 믿음으로 남편을 설득했다.


보내지 않았지만, 남겨진 것들

지금 첫째는 잘 자라고 있다. 무엇보다 현재 다니는 기관에 대한 신뢰도 여전히 확고하다. 그래서 이 결정에 대해 큰 후회나 아쉬움은 없다. 다만 아이가 자연에 가까운 환경에서 자라며, 특히 유아기에는 몸과 마음이 튼튼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여전히 같다. 그래서 기관을 바꾸지 못하더라도 부모로서 양육 환경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에 더 집중하기로 했다. 발도르프 유치원의 영향을 받아 우리 가족은 새로운 일상을 하나 만들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주 토요일 아침마다 아이와 함께 집 근처 산을 오른다. 아이의 팔다리가 튼튼해지고, 점점 더 씩씩하게 산을 오르는 모습을 볼 때마다 참 기특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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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은 그대로, 방향도 그대로

우리 부부의 교육관은 바뀌지 않았다. 튼튼한 몸과 따뜻한 마음을 가진 아이로 자라는 것, 아이에게 무언가를 더 해주기보다는 편안하고 안정된 환경에서 하루하루 행복을 느끼며 자라게 하는 것. 기관도 중요하지만 아이가 매일을 살아가는 가정의 분위기와 문화 역시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부모로서 조금 더 안정된 양육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다. 기관은 바꾸지 못했지만, 우리 가족의 방향까지 바뀐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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