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아이와 함께 차를 타고 꽃피는학교 유치과정 체험학교에 다녀왔다. 전부터 관심이 있던 곳이라 첫째 아이가 돌 지났을 무렵인 2년 전에도 체험학교에 참석했었다. 그 후로 현실적인 여건 상 가까운 거리의 직장 어린이집을 보냈었는데, 유치원 입학 연령이 되니 다시금 생각이나서 두번째로 참여하게 되었다. 2년 전엔 나의 호기심으로 참여했다면, 이번엔 첫째 아이가 그 공간을 어떻게 느끼는지 궁금했다. 비 예보가 있어서 체험학교가 연기될 수도 있었지만 다행히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꽃피는학교는 산속에 있었다. 집에서 차로 30분 정도 걸렸다. 안내 받은 곳에 내리니 학교 앞이 아니라 산 아래 저수지 입구였다. 참석한 가족들이 둥글게 모여 선생님이 불러주시는 노래와 동작에 맞춰 준비운동을 했다. 서툴지만 열심히 따라하는 첫째가 귀여웠다. 꽃피는학교 아이들은 매일 이렇게 준비운동을 하고 학교까지 힘차게 걸어서 올라간다고 했다. 짧지 않은 오르막길이라 아이가 안아달라고 했지만, 격려해주니 씩씩하게 걸었다. 비가 막 그치고 난 뒤어서 산내음이 아주 좋았다. 아침부터 산길을 걸으며 흙냄새를 맡으니 템플스테이에 온듯한 기분이었다. 이 길을 어린 아이들이 매일 왕복하기는 쉽지 않아 보였지만, 매일 산의 정기를 받으며 등원하는 모습을 떠올리니 부럽기도 했다.
30분 정도 걸어서 학교에 도착했다. 모래 바닥으로 된 마당에는 큰 물레방아도 있고 정자도 있었다. 명찰을 받고 유치과정 아이들이 지내는 공간에 들어섰다. 2년 전에도 왔던 곳이지만 여전히 따뜻한 분위기였다. 나무로 만들어진 교실에는 창문마다 붉은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고, 교구장에는 플라스틱 장난감 대신 솔방울, 조약돌, 나뭇조각 같은 자연물들이 채워져 있었다. 뜨개질로 만든 끈과 인형들은 아이들의 손길이 닿은듯 단정했고, 나무로 된 아지트에는 작은 원목 책상과 의자가 놓여있었다. 자연 속에 들어온 듯 편안하고,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느낌이었다.
체험학교에 참석한 모든 가정이 둘러앉았다. 선생님께서 밀랍으로 만든 초에 불을 붙이고 한 가정씩 불을 옮겨 붙였다. 첫째 아이는 촛불을 빨리 붙이고 싶어서 연신 본인 차례가 언제인지 물어봤다. 가정마다 자기소개가 이어졌다. 세종, 대전, 공주, 모두들 먼 곳에서 어떤 동기로 이 곳까지 찾아왔을까 궁금했다. 첫째는 받아든 촛불이 마음에 쏙 든 눈치였다. 따뜻한 공간에서 밝혀진 작은 촛불들이 이 곳의 분위기를 잘 느끼게 해주었다.
설명회가 이어지는 동안 아이들은 근처 시냇가 놀이터로 향했다. 엄마와 같이 가겠다는 아이의 성화에 나도 따라나섰다. 마당을 지나 잠깐 걸으니 시냇가에 나무로 만든 그네와 넓은 정자가 있는 놀이공간이 나왔다. 시냇물에는 작은 물고기들이 있었다. 비가 그친 뒤여서 진흙이 군데군데 고여 있었다. 첫째는 신발에 진흙이 묻는 게 불편했는지 발걸음을 조심조심 내디뎠다. 선생님께서 간식을 먹자고 제안하자 아이의 표정이 밝아졌다. 평상 위에는 콩떡과 배가 준비되어 있었다. 아이가 자리를 잘 못잡고 있으니 선생님께서 불러주셨고, 아이도 또래들과 둘러앉아 웃으며 맛있게 먹었다. 이곳에서 생활하면 처음엔 불편함도 많겠지만, 금세 잘 적응하며 한 뼘 더 자랄 것 같았다. 자연과 더불어서 천천히 아이만의 속도로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재원생 학부모들이 체험학교를 도와주러 오셔서 궁금한 점들을 물어볼 수 있었다. 그 중 한 분은 5학년, 2학년, 7세 세 아이를 모두 이 곳에 보내고 있었다. 부모는 힘들어도 아이들에게만큼은 최고의 환경이라고 하셨다. 학교에 대한 애정과 신뢰가 느껴졌다. 선생님들은 오롯이 아이만 바라본다고 했다. 지금도 선생님 두 분에 5~7세 아이들 7명으로 구성되어있는데, 나는 이 점이 다른 기관과 비교했을 때 좋아보였다.
아이들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깥 활동을 한다고 했다. 기관에서 쏟는 에너지가 크다보니, 하원 후에, 그리고 주말에도 가정에서 온전한 휴식을 취해야 한다고 한다. 피곤한 컨디션으로 등원하면 하루의 흐름을 따라가기 어렵다고 했다. 좋은 환경에서 충분히 뛰놀며 지내니 아토피나 비염이 호전된 사례도 많다고 했다. 부모의 역할은 그저 선생님을 믿고 기관에 보내고, 집에서는 온전히 쉴 수 있도록 도와주면 된다고 하니, 어쩌면 더 편한 면도 있어보였다. 5세가 되면 주위에서는 사교육도 많이 시작하는데,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긴 방학은 현실적으로 부담스러운 부분이었다. 여름 6주, 겨울 9주에 이르는 방학 동안 아이를 돌보려면 맞벌이 가정은 조부모 등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상적인 환경과 현실의 조건이 맞닿는 지점에서, 마음이 조금 복잡해졌다.
체험학교에 다녀온 뒤, 아이는 종종 “꽃피는학교에 또 가고 싶다”는 말을 꺼낸다. 그리고 우리는 지원서를 제출했다. 지원서를 낼 때는 100% 확신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다만 한 번 부딪혀보자는 마음이었다. 아이가 잘 적응하고, 우리 부부가 감당할 수 있다면 둘째까지 보내고 싶다.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면 그때 다시 생각하면 된다. 꽃피는학교에서 아이가 자연과 더불어 단단히 자라나길 소망한다.
앞으로는 꽃피는학교 유치과정의 면접과 학부모 교육, 입학 이후의 생활 이야기를 이따금씩 연재해볼 생각이다. 이 시리즈를 통해 우리 가족이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배움을 이어가는지 천천히 기록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