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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선택기 1] 첫 기관, 청사 어린이집에서의 1년

만족스러웠던 첫 기관, 다음 선택을 고민하며

by 밤나무

내년이면 첫째가 유치원에 입학할 수 있는 나이가 된다. 그래서 요즘 나는, 아이가 앞으로 어떤 환경에서 자라면 좋을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아이의 첫 기관은 세종 정부청사 내 어린이집이었다. 청사 어린이집은 예산 지원이 많고 운영이 안정적이다. 교사 수와 지원 인력, 연장보육, 방학 중 돌봄 등 모든 면에서 일하는 부모에게 최적의 환경이었다. 세종에는 청사 어린이집이 11곳 있는데, 기관마다 조금씩 지향하는 가치와 보육 방향이 다르다. 가장 인기가 많은 기관은 특별활동이나 조기 교육 프로그램이 잘 되어 있는 곳이다. 거기에 다니면 초등학교 입학 전 별도의 사교육 없이도 한글이나 수 교육이 자연스럽게 이뤄진다고들 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반대 방향의 선택을 했다. 지금 첫째가 다니는 곳은 발도르프 교육을 지향하는 어린이집이다. “아이의 고유한 개별성을 존중하는 전인교육”이라는 설명에 마음이 끌렸고, 실제로 보내보니 만족도가 높았다. 처음 기관 생활을 시작하는 만큼 고민을 많이 했다. 영유아 시기에는 특별한 활동을 많이 하기보다는, 미디어 노출이나 놀이감 등에서 자극이 적고 따뜻한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기관을 원했다. 두 군데를 상담했는데, 지금의 원은 원장님이 발도르프 교육에 관심이 많으셨고, 우리 부부의 보육 철학과 잘 맞았다. 자연스러움, 바깥놀이, 인위적인 행사나 사진찍기 등 교사의 추가 부담을 최소화하는 운영방침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아이는 3월 신학기가 아닌 8월 중간 입소였는데, 당시 결원이 있는 기관이 많지 않았다. 마침 이곳은 중간 입소가 가능했고, 보육 철학도 마음에 들어서 계획보다 조금 이른 22개월부터 등원을 시작했다.


세종 정부청사 어린이집


점진적 적응과 안정된 리듬


아이의 기관 적응은 육아휴직 중이던 남편이 맡았다. 한 달이 넘는 적응 기간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10분~30분 정도 머물다 차츰 시간을 늘려나갔다. 기관마다 적응 방식이 다르지만, 이곳은 무리하지 않고 아이의 속도에 맞춰 점진적으로 진행했다. 한 달이 지나서야 오전에 한 시간 정도 머물 수 있을 정도였다. 적응이 끝난 이후 지금까지 1년 넘게, 아이는 등원을 거부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올해 초 남편이 복직을 계획하면서 연장반 적응을 시도해보려 했는데, 담임선생님께서 아이의 기질상 그 시점에 시간을 늘리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거라고 조언해주셨다. 당시 아이는 또래와의 상호작용이 많지 않고 활동에도 소극적인 편이었기 때문이다. 선생님 말씀을 듣고 남편은 복직을 미뤘고, 덕분에 지금까지도 아이는 별다른 스트레스 없이 어린이집 생활을 즐겁게 이어가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놀이사진 속 밝은 표정을 보면, 아이도 이 기관을 편안하게 느끼고 있는 것 같다.



따뜻한 보육 환경과 교사의 세심한 시선


이곳은 미디어 노출이 전혀 없다. 음악도 음원을 트는 대신, 선생님이 직접 노래를 불러주신다! 화장실을 갈 때, 낮잠을 잘 때, 일어날 때, 산책할 때, 식사할 때… 상황마다 어울리는 노래를 따뜻한 육성으로 들려주신다. 아이가 원에서 부르는 노래를 좋아한다고해서 어떤 노래를 불러주시는지 여쭤보았었는데, 김희동 선생님의 동요가 많았다. 아래는 아이들 생일에 부르는 ‘축복송’인데, 가사가 따뜻하고 정말 좋다.


축복송 - 김희동

하늘에서 내려온 아름다운 꽃
이 땅 위에 곱게 곱게 내려와
사랑스런 고운 꽃을 피워요
세상 하나 뿐인 너의 꽃을 영원히

https://youtu.be/cNrfTDIYCb4?si=QkHwiBmvJboEk-1f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건 키즈노트 업로드용 사진 촬영이 없다는 점이다. 대신 매달 홈페이지에 놀이사진이 몇 장씩 올라온다. 특별활동도 거의 없고, 현재는 주 1회 20분씩 체육·음악 시간이 전부다. 행사도 최소화되어 있다. 원장님은 “행사를 준비하느라 교사들이 아이 곁을 떠나는 시간이 많아진다”는 이유로, 가을운동회와 연말 음악회 정도만 진행한다고 했다. 바깥놀이도 자주 있다. 영아반이지만 날씨가 좋으면 호수공원까지 걸어갔다 오기도 한다. 유아반은 먼거리 숲에도 자주간다고 들었다. 덕분에 아이의 체력과 정서 발달에 도움이 되고있다.


매 학기 부모 상담시간이 있는데, 작년 말에는 담임선생님께서 첫째의 언어와 감각 발달을 세심하게 관찰하시며 언어검사와 놀이치료를 권해주셨다. 당시 아이는 또래들과 상호작용이 적고 감각이 예민한 편이었는데, 선생님은 조기 개입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그때 바로 발달검사를 받고 감각통합치료와 놀이치료를 시작했다. 그 덕분인지 지금은 사회성도 많이 좋아지고있고, 재잘재잘 말도 잘하는 수다쟁이가 되었다. 최근 원장님과 이야기하다가 우연히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담임선생님이 첫째를 위한 관찰일지를 매일 기록하고 계셨던 것이다. 매일 좋아진 점과 개선이 필요한 점을 적으면, 원장님이 직접 피드백을 주신다고 했다. 많은 아이들을 돌보면서도 이렇게 한 명 한 명에게 세심한 관심을 쏟는다는 사실에 마음이 따뜻해지고, 너무 감사했다.



교사들의 집중과 원의 공기


원장님 말씀으로는 외부 강사가 특별활동을 하러 왔을 때마다 “이 기관 아이들은 유난히 안정적이고 집중력이 높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고 했다. 자극이 적은 환경 덕분인지 아이들은 전반적으로 차분한 편이다. 원장님은 발도르프 교육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셔서 교사들과 함께 정기적으로 교육 방향을 연구하고 공부하는 시간을 갖는다고 했다. 그런 분위기가 교사 전반에 자연스럽게 스며 있다. 또 한 가지 마음에 드는 점은 교사들이 근무 중 휴대폰을 소지하지 않는 운영방침이다. 필요한 연락은 행정실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보육 시간에는 오롯이 아이들에게 집중한다는 철학이 분명하다. 나는 사진을 자주 찍는 행위가 아이의 몰입을 방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원의 운영 방식이 무척 마음에 든다.



다음 선택을 앞두고


이렇게 만족스러운 기관이지만, 내년 만 3세반을 앞두고 고민이 생겼다. 가장 큰 이유는 교사 대 아동 비율의 변화(1:7 1:15)다. 물론 많은 수의 또래와 부대끼며 사회성을 키워나갈 수도 있겠지만, 교사가 한 아이에게 쏟을 수 있는 관심과 지원이 줄어드는 건 피할 수 없다. 또 하나의 고민은 국공립 시스템의 한계다. 아이의 담임선생님과 원장님은 충분히 신뢰하지만, 적지 않은 규모의 기관이어서 일정한 규칙과 틀을 벗어나기 어렵다. 하루 일과표가 정해져 있고, 바깥놀이도 정해진 시간에만 가능하다. 나는 영유아기에는 아이가 조금 더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리듬으로 지냈으면 한다. 잠자는 시간을 빼면 평일의 대부분을 보내는 곳이니까, 조금 더 ‘아이의 속도’를 존중하는 환경이면 좋겠다.


그래서 요즘 다시 기관을 알아보고 있다. 이 고민의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아이 기관 선택기” 시리즈를 써보기로 했다. 다음 편에서는 내년부터 보내고 싶은 기관들을 소개하고, 각각의 교육 철학과 환경을 비교해볼 예정이다. 그리고 이달 중에는 공동육아 어린이집과 발도르프 숲 유치원 입학설명회에도 참여할 계획이다.


첫 기관이 너무 만족스러웠기에, 다음 선택이 더 신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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