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을 세우고, 단단해지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마음가짐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첫째 때는 그저 다 받아주고 품어주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둘째가 태어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아이의 수많은 요구사항과 돌발 행동 앞에서, 부모로서의 태도와 원칙이 필요하다는 걸 느끼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번 2편에서는 조금 더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이야기들을 나누고자 한다.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매일은 여전히 시행착오의 연속이지만, 그 속에서 내가 붙잡은 작은 원칙들을 나누려 한다.
첫째는 기질이 순한 편이라 두 돌이 넘을 때까지도 훈육에 대한 고민이 크게 없었다. 게다가 나 역시 웬만한 요구는 대부분 들어주는 허용적인 엄마였다.
하지만 둘째가 태어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둘째를 수유하고 있을 때 첫째가 물을 따라 마시다가 일부러 쏟고는, 오히려 나에게 “왜 바로 안 닦아주냐”며 화를 낸 적이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아이에게 훈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 같았으면 달려가서 닦아주고 상황을 종료했겠지만, 둘째가 생긴 후에는 그럴 수 없었다. 아이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는 것만이 좋은 엄마가 아니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첫째에게 동생이 생기면서 꼬집기나 깨물기 같은 퇴행 행동도 나타났다. 또 식기세척기나 세탁기를 꺼버리는 행동을 하기도 했다. 남편은 이런 상황에서 정색하며 때로는 화를 내기도 했지만, 나는 아이가 아직 어리다고 생각해서 좀 더 효과적인 훈육 방식을 찾고 싶었다. 그래서 훈육 전문가들의 강의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조선미 교수, 최민준 소장, Lisa Bunnage와 같은 육아 전문가들이 강조하는 공통된 메시지는 명확했다.
훈육은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
예컨대, 아이가 물을 일부러 흘리면 “하지 마”라고 반복하는 대신, “한 번 더 쏟으면 물컵을 치울 거야”라고 행동을 예고한 뒤 실제로 치워버린다. 행동 예고를 해주어야 아이도 예측이 가능하고, 더 큰 전쟁은 막을 수 있다.
꼭 필요한 메시지만 짧고 명확하게 전달한다
훈육이 길어지면 효과가 없다. 상황이 생긴 순간 즉각, 필요한 말만 하고 끝내야 한다. 메시지 전달이 끝났다면 무거운 분위기를 이어가지 말고, 별 일 없었던 것처럼 분위기를 전환하는 것이 좋다.
감정을 빼고 휸육한다
훈육은 아이에게 필요한 메시지를 전달하며 가르치기 위한 것이지, 부모가 감정을 해소하는 시간이 아니다. 부모가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일관된 모습을 보여야 아이도 배운다.
남편은 아이가 돌발 행동을 할 때 “왜 저럴까” 생각하며 화를 느끼는 편이었는데, 훈육에 감정을 빼고나니 훈육 상황이 한결 편해졌다고 한다.
침묵과 기다림의 힘
예컨대, 아이가 이유없이 짜증을 내면, 대응을 하기보다는 아이가 감정을 가라앉힐 때까지 옆에서 기다려준다. 기다리는 동안 다른 일을 하기보다는,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릴 때처럼 멍 때리는 느낌으로 ’적당한 무시‘를 하면 아이는 곧 진정한다. 아이가 차분해졌다면, 지나간 상황에 대해서 다시 훈육하기보다는, 다른 상황으로 자연스럽게 전환하는 것이 좋다.
가장 중요한 건 ‘일관성’
일관성 있는 훈육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양육자 간의 소통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남편과 성격이 잘 맞는 편이지만, 육아나 훈육 방향을 정하는데 있어서는 끊임없는 대화와 조율이 필요했다.
그리고 배우자가 훈육하는 상황이 당장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 자리에서 얘기하지 말고 육퇴 후에 대화하는 것이 좋다는 걸 배웠다. 답답한 마음에 한번씩 개입을 하게 되는데, 남편의 권위나 아이의 훈육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 가급적 중간에 개입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둘째가 태어난 지 백일 정도 지난 지금, 나는 첫째에게 예전보다 더 단호한 엄마가 되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 결과 첫째의 감정 조절 능력과 만족 지연 능력은 오히려 더 좋아졌다. 부모만 느끼는 것이 아니고 아이가 다니는 기관에서도 피드백이 좋아졌다. 모든 걸 다 들어주는 것이 좋은 엄마가 아니라, 적당한 한계를 두고 일관성 있게 옳고 그름을 알려주는 엄마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새삼 배우고 있다.
아이를 키우면서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아이를 위한 소비를 줄인 것이다. 아이들은 금방 자라기 때문에 새 옷을 사도 한 계절 입히기 어렵고, ‘국민템’이라 불리는 장난감도 오래 쓰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새로 사는 대신 중고 거래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둘째는 아직까지 새 옷을 거의 사주지 않았다. 첫째가 입던 옷이나 주변에서 받은 옷, 당근마켓에서 저렴하게 구한 옷을 입히고 있다. 기저귀 역시 신생아 때부터 당근마켓으로 구한 천기저귀를 사용해왔는데, 덕분에 일회용 기저귀는 거의 쓰지 않고 있다. 모유 수유를 하고 있어 분유값도 들지 않으니, 둘째는 정말 ‘거저 키운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소비도 줄었지만 특히 천기저귀를 쓰면서 아직 한 번도 엉덩이에 발진이 생기지 않아 더욱 만족스럽다. 게다가 천기저귀를 매일 저녁 세탁기에 넣고 돌리는 일을 첫째가 좋아한다. 아직 어린 나이지만 “내가 동생을 위해 뭔가 돕고 있다”는 뿌듯함을 느끼는 것 같다. 그 작은 행동 속에서 배려심도 배우고, 가족의 일에 기여하는 즐거움도 경험한다. 단순히 소비를 줄이는 것을 넘어, 가족 모두에게 긍정적인 의미가 생겨난 셈이다.
임신, 출산, 육아를 거치면서 깨달은 점은, 양육자에게 요구되는 알파이자 오메가는 결국 체력이라는 것이다.
출산 이후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면 가벼운 운동이라도 시작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나는 임신 중에도 F45라는 그룹 트레이닝을 꾸준히 했기에 출산 50일쯤 되었을 때 다시 운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산후 100일이 지난 지금은 체력이 꽤 회복되어 두 아이를 돌보는 일이 훨씬 수월해졌다.
체력이 부족했던 때에는 마음만큼 아이와 함께할 수 없었다. 첫째가 어린이집에서 하원해 집에 돌아오면, 나는 이미 피곤에 지쳐 제대로 놀아주지 못했다. 평일에는 첫째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한정적인데, 그마저도 내 몸이 따라주지 않아 속상했다. 그때 느꼈다. 내가 지치면 아이와의 소중한 시간마저 놓치게 되는구나 하고.
지금은 다르다. 아침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하면 몸과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아이들과 마주할 때도 훨씬 너그러워진다. 첫째가 짜증을 내는 상황에도, 내 체력이 남아 있으면 상황을 훨씬 더 차분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체력이 바닥나면 작은 일에도 예민해지지만, 여유가 있으면 같은 상황도 다르게 보인다.
육아에서 체력은 단순히 몸을 움직일 힘이 아니라, 아이를 대하는 태도와 마음의 여유를 지켜주는 힘이라는 걸 절실히 깨달았다.
아이 둘을 키우며 나는 여러 번 넘어지고 다시 배우기를 반복했다. 그 과정에서 조금씩 나에게 새겨진 교훈들은 이렇다.
• 완벽주의의 강박은 내려놓고, 여유를 남겨야 한다는 것.
• 아이를 비교하지 말고, 그 아이만의 시간을 믿고 기다려야 한다는 것.
• 부모가 자기 삶을 잃지 않고 행복할 때, 그 긍정적인 힘이 아이에게 전해진다는 것.
• 아이를 이끄는 훈육은 감정이 아니라 일관성과 리더십에서 나온다는 것.
• 소비를 줄이는 선택이 오히려 아이와 가족 모두를 풍요롭게 만든다는 것.
• 그리고 무엇보다, 체력이야말로 육아의 기본기라는 것.
이것들은 거창한 깨달음이라기보다, 매일의 작은 시행착오 속에서 얻은 기록들이다. 완벽한 부모는 없지만, 이렇게 배우고 다져가는 과정 속에서 아이와 부모는 함께 성장해간다.
아이 둘을 키우며 나는 조금 더 단호한 부모가 되었고, 아이를 믿고 기다리는 지혜를 배웠으며, 아이 못지 않게 나 자신의 소중함도 깨달았다.
훈육은 부모의 감정이 아니라 일관성에서 나오고, 소비는 아이에게 꼭 필요한 것만 남길 때 더 풍요로워진다. 그리고 체력은 아이와 마주할 때의 태도와 마음을 결정짓는 밑바탕이 된다.
육아는 완벽할 수 없고, 매일이 배우는 과정이다. 하지만 이렇게 작은 원칙들을 세워가며 아이와 함께 살아간다면, 부모로서도 한 걸음씩 단단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완벽한 답은 없어도, 우리 각자가 선택한 방식과 원칙 속에서 아이는 성장하고, 부모는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