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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둘 육아하며 배운 것들(1)

완벽을 내려놓고, 균형을 배우다

by 밤나무


[들어가며] 첫째와 둘째를 키우며 달라진 마음가짐


세 돌이 된 첫째와 이제 막 100일을 넘긴 둘째를 키우고 있다.

첫째를 키울 때 나는 “육아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기준에 스스로를 끼워 맞추느라 늘 긴장했고, 작은 것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하루 종일 홀로 아이를 보며 남편 퇴근만 기다렸고, 남편이 돌아오면 지쳐 쓰러지기 일쑤였다. 내 삶은 아이 중심으로 돌아갔고, 나는 점점 사라져갔다.


그런데 둘째를 키우면서는 달라졌다. 같은 육아인데도 내 마음가짐이 바뀌니 아이와의 관계가 훨씬 편안해졌다. 완벽한 육아를 해내야 한다는 강박 대신, “어떻게 하면 더 지속가능하고 편안하게 육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된 것이다.


이 글은 두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배운 작은 깨달음들을 정리한 기록이다. 혹시 나처럼 힘들고 지쳐 있는 부모가 있다면, 이 글이 조금이나마 위로와 힌트가 되었으면 한다.



[내려놓기와 균형 찾기] 완벽주의 육아의 한계


육아를 하면서 배운 가장 큰 교훈은,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하려는 강박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집안일, 회사일, 육아까지 모두 100% 해내려는 삶은 결국 지속 불가능하다. 잠을 줄여가며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방식으로는 반드시 한계가 찾아온다.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을 때―아이가 갑자기 아프다거나, 나 스스로 건강이 무너지는 순간―쓸 수 있는 여분의 체력이 없으면 그 어떤 것도 감당하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꼭 부모가 해야만 하는 일을 제외하고는 아웃소싱을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가사도우미, 베이비시터, 어린이집 같은 도움은 ‘내가 부족해서’ 찾는 게 아니라, 더 오래, 더 건강하게 아이를 돌보기 위해 필요한 선택이다.


첫째를 키울 때는 이런 사실을 몰랐다. 수면 시간, 수유 텀을 꼼꼼히 정해두고 아이를 거기에 맞추려고 했다. 어플에 수면과 수유 기록을 빠짐없이 적었고, 그 일정이 조금만 어긋나도 불안했다. 아이의 스케줄을 최우선으로 두다 보니 외출조차 마음 편히 하기 어려웠다.


둘째를 키우면서는 다르게 하고 있다. 정해진 시간표 대신 아이의 신호를 따라간다. 배고파 보이면 먹이고, 졸려 보이면 재운다. 첫째와 외출해야 할 일이 있으면 자던 둘째를 깨우기도 한다. 아이의 일정을 완벽히 통제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으니, 오히려 육아가 훨씬 수월해졌다. 아이 역시 스스로의 리듬을 존중받으니 더 편안해하는 듯하다.


이유식을 준비할 때도 마찬가지다. 첫째 때는 자기주도 이유식을 한다며 원물을 하나하나 준비하고, 아이 낮잠 시간마다 주방에서 요리를 했다. 이유식의 본질이 무엇이지 생각하면 내가 과하게 에너지를 쏟았던 것 같다. 이유식은 수유에서 벗어나 고형식을 먹을 수 있도록 연습하고, 아이에게 필요한 영양소를 채워주는 과정일 뿐이다.

그래서 둘째의 이유식은 훨씬 단순하게 할 계획이다. 내가 평소 건강을 위해 자주 먹는 ’채소 사골 스프‘처럼, 이미 하고 있는 요리에 조금만 변화를 주어도 충분하다. 아이를 위해 특별한 노력을 추가로 들이지 않아도, 아이는 필요한 영양을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다.


육아는 결국 “본질에 집중하고, 불필요한 힘을 덜어내는 것”이 지속 가능한 길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육아 스타일의 균형] 예민한 엄마와 느긋한 아빠


나는 아기가 깨어 있는 순간에는 집안일을 미뤄두고 최대한 아이와 눈을 맞추고 놀아주려 한다. 아직 상호작용이 서툰 아기임에도 불구하고, 작은 몸짓과 표정 하나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려는 것이다. 아기가 잠을 자다가 아주 작은 소리만 내도 바로 달려가 확인하고 안아주곤 했다.


지금은 세 돌이 된 첫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아이의 요구사항 하나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가능하다면 즉각 들어주려 했다. 내 성격 자체가 예민하고, 다른 사람의 요구에 잘 반응하는 편이어서 육아에서도 그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반면, 남편은 다르다. 아이가 울거나 어떤 요구를 해도 느긋하게 반응한다. 즉각 달려가지 않고, 때로는 설렁설렁 대응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처음에는 이런 태도가 답답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깨닫게 되었다. 지속 가능한 육아라는 관점에서, 그리고 아이의 발달이라는 측면에서도 남편의 방식이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아이도 불편함을 느낄 줄 알아야 하고, 기다리면서 만족을 지연할 줄 알아야 한다. 어느 정도의 결핍은 오히려 건강한 욕구를 만드는 밑거름이 된다. 부모가 모든 요구에 즉각 반응해 주는 것이 늘 최선은 아니다.


그래서 요즘 나는 생각한다. 나의 예민함과 세심함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남편처럼 조금 무심하고 느긋하게 대하는 태도 역시 필요하다는 것을. 아이를 위해서라도, 나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육아에는 긴장과 이완의 균형이 공존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워가고 있다.



[비교하지 않기] 아이의 시간을 믿고 기다려주자


육아를 하면서 또 하나 배운 점은, 아이를 다른 아이와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는 발달 속도가 또래보다 늘 조금씩 늦었다. 미숙아로 태어나 3주를 병원생활을 하는 바람에 출발부터 늦었다. 뒤집기는 6개월이 다 되어서야 했고, 걷기도 돌이 한참 지난 뒤에야 가능했다. 말은 두 돌이 지나서야 트이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나는 속으로 초조했다. 내가 아이 발달에 필요한 자극을 충분히 주지 못하는 건 아닐까 고민하면서, 발달 관련 책이나 유튜브 영상을 찾아 헤매기도 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굳이 조급해할 필요는 없었다. 아이마다 발달 속도는 다르고, 그저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 것뿐이었다. 의학적 개입이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면,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왜 아직 못 하지?’라는 불안 대신 아이가 자기 시간을 충분히 쓸 수 있도록 믿고 기다려주는 것이다.


지금 세 돌이 된 첫째는, 하루 종일 수다를 멈추지 않는 수다쟁이가 되어 있다. 함께 있을 때 단 1초도 쉬지 않고 재잘재잘 이야기를 이어간다. 조금 늦게 시작했을 뿐, 아이는 결국 자기만의 속도로 성장해왔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둘째를 키우면서는, 발달을 비교하는 조급함 대신 “이 아이의 시간표를 존중하자”라는 마음가짐을 가지려 한다. 아이마다 각자의 계절이 있다는 사실을 믿으며, 기다려주는 부모가 되고 싶다.



[부모의 삶과 행복] 부모의 행복이 아이의 행복으로 이어진다


육아를 하며 깨달은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은,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는 것이다.


첫째를 키울 때 나는 내 모든 초점을 아이에게만 맞추고 살았다. 나를 돌볼 여유가 전혀 없었다. 아이가 혹시라도 일찍 깰까 봐 아침 운동도 못 갔고, 하루의 시작과 끝이 온전히 육아에만 묶여 있었다. 그러다 보니 몸은 지치고 마음은 좁아져, 아이와 마주할 때 여유가 없었다.


둘째를 키우면서는 조금 달라졌다. 이제는 아침에 운동을 다녀온다. 아이가 일찍 깰까 봐 조마조마하며 기다리던 과거와 달리,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을 의도적으로 확보하는 것이다. 운동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기분이 전환되고, 아이를 다시 만났을 때 훨씬 에너지 넘치고 긍정적인 태도로 대할 수 있다.


이렇게 나를 돌보는 시간을 갖다 보니 생각할 여유도 생겼다. 글을 쓰기도 하고, 이직을 고민하기도 했다. 예전 같으면 “아이에게 더 해주지 못할까 봐 미안하다”는 마음이 앞섰겠지만, 지금은 다르게 생각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오히려 아이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믿는다.


육아에 모든 걸 쏟아붓던 시기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나를 돌보는 순간부터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부모의 행복은 아이의 행복으로 이어진다.



[맺는 말] 부모와 아이 모두가 편안해지는 길


둘째를 키우면서 나는 강박을 내려놓는 법, 아이마다 다른 시간표를 인정하는 법, 부모의 행복을 지키는 법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아이에게 필요한 건, 지친 부모가 억지로 내어주는 전부가 아니라, 여유와 웃음을 가진 부모의 모습이었다.


물론 나는 여전히 시행착오 중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아이와 나, 모두가 편안해지는 길이 있다는 걸 안다.

다음 글에서는, 아이를 단단하게 키우기 위해 꼭 필요했던 훈육과 부모의 권위, 그리고 실천적인 지혜들을 이야기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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