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노 Aug 07. 2021

주 80시간씩 일하면 배우는 것들

신입 컨설턴트의 회고록 1편: 첫 프로젝트를 마치며

첫 프로젝트가 마무리 되어 첫 휴가를 나오게 되었다.

다음 프로젝트 소용돌이에 휘말리기 전에, 강렬했던 첫 3달에 관한 회고를 적어내보려 한다. 제목은 시니컬하게 (아니 진솔하게...) 썼지만, 정말로 배운 게 많다. 그것들이 증발하지 않도록 기록해보고자 한다.

나중의 내가 종종 찾게 될 것 같다.



[Week 1-4]


프로젝트 초기, 전혀 경험하지 못한 분야의 생각치도 못한 문제를 맞닥뜨렸다.


"사과는 빨개" 수준으로 오래 전부터,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시장에 관한 자연스러운 문제였기 때문에, 이를 더 긴밀히 고민하게 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프로젝트를 밝힐 수 없기에 굉장히 두루뭉술하게 썼지만, 요지는 내가 평소 문제라고 느끼지 못한 문제를 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미디어 상 접하는 21세기 비즈니스의 문제는 주로 가상현실이나 NFT, 뭐 이런 미래형 이슈였기 때문에 기존의 것을 유지하는 법에 관해 크게 고민해보지 않았다.


2021년은 과도기다. 미래형 Problem-Solving  추구하면서도 과거의 기술이 자연사할 때까지 유지 시키는 방법을 고민해야 하는 지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의 것이 워낙 흥미롭고 돋보이니 과거의 것을  보수하려면 어떡해야 할지 깊게 고민하지 않게 되는  같다.

(편식하면  된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건만....)


이처럼 프로젝트 초반 내가 가장 많이 고민한 부분은 문제처럼 보이지 않는 것도 문제 삼는 방법이었다. 괜히 시비 걸고 다니는 초등학생의 태도를 취했다. 그러다 보니 자칫 놓칠  있는 문제를 발견하고 더욱 집중적으로 해결할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스토리라인"을 항상 염두해 두는 것이었다. 각각의 문제들이 하나의 주요한 메시지로 연결될 수 있도록 큰그림을 그려두는 것이다. 이 부분은 프로젝트가 진전할 수록 더욱 중요해졌다.

 



[Week 5-8]


생각나는 대로 던지는 게 아닌, 내가 전달해야 하는 하나의 메시지를 위해선 어떠한 디테일과 백업이 필요한지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신입으로서 나의 가장 큰 실수는 여기에 있었다.


실무 일을 하다보면 사소한 것들에 매진하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전체적인 메시지를 놓치게 될 뻔 했다. 예를 들어, A를 주장하기 위해 결정적 단서 10가지를 모았는데도 "B일 수도 있겠는데?" 정도의 이견이 나오게 되면, 왜 B가 아닌지에만 집착하게 되어 A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물론, B를 반증하는 것이 중요하긴 하다. 다만, 너무 열중하다보면 금방 Off-Track으로 빠지게 되어, 제한된 프로젝트 기한 내 충분한 스토리를 뽑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이처럼 내가 도랑으로 빠지려 할 때 바로 잡아주는 역할은 대체로 리더십에 있다.


전체 프로젝트의 청사진을 쥐고 있어, 내가 실무 일을 하다가 잡음에 빠지게 될 때마다 우리가 컨설팅펌으로서 제공할 수 있는 value가 무엇인지 고민해보길 요구했다.


아직 컨설팅의 '컨' 자도 모르는 신입으로서 우리의 value 는 커녕 내가 돈값을 하는지 조차 몰랐기에 해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따라서 초반엔 어깨 넘어로 리더십 및 나보다 시니어한 분들이 어떻게 value 를 찾는지 지켜보았다.


지속적으로 강조된 내용은 크게 두 가지였다:

 

1. 360-vision을 가진 제3자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할 것


프로젝트 시작 전엔 관련 문제를 전혀 고민해본 적도 없는 만큼, 내가 실무진보다 전문성이 부족한 것은 당연한 얘기다. 해당 업을 10-20년 해온 실무진이 가진 고민의 깊이보다 프로젝트 시작 2주차 컨설턴트가 더욱 심도 깊은 고민을 할 수는 없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시야를 넓혀서 더욱 방대한 해결책을 훑고, 실무진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게 가이드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짱 박혀 꿈쩍도 하지 않는 돌을 꺼내지 못 하는 것은 불가능해서가 아니라, 한참을 도전하다가 포기하고 잊어버려서, 일 수도 있다. 그럴 때 컨설턴트가 투입되어 오래된 관념들을 의심하고 질문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2. best alternative 라는 확신이 생길 수 있게끔 모든 변수와 방향을 생각해볼 것


컨설팅 취준을 위해선 꼭 거쳐야 하는 관문 중 하나가 바로 '케이스(Case) 면접'이다. 비즈니스 상황/이슈를 주고 돌파구를 찾아라 하는 면접인데, 이때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MECE 사고이다. MECE, Mutually Exclusive Collectively Exhaustive 의 약자이다.


입사 이후 실제 프로젝트에 투입되어서도 이 MECE 한 사고가 굉장히 중요해진다. 내가 전달하는 옵션이 가장 최적/최선의 대안책이라는 확신이 생기려면 우선 MECE 한 고민을 해봐야 된다.


"아 근데 이럴 수도 있잖아?"에 당황하면 안 되는 것이다. "맞아, 고려해봤는데 이러이러한 이유로 그 옵션보다는 이 방향이 더 옳다", 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임기응변 능력 또한 중요하기도...). 그런 순간들이 쌓여서 신뢰를 만드는 것이고, 컨설팅의 value 가 되는 것 같다.




[Week 9-12]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멘탈 관리'다.


프로젝트의 방향성과 메시지가 어느정도 잡히고 나면, 아니 그것보다 매일 같이 새벽까지 일하며 달리는 일정이 2-3달째로 접어들게 되면, 지치기 마련이다. 본인도 지치고, 팀도 지치고, 리더십도 지치고, 클라이언트도 마찬가지다. 지친다.


자기관리가 투철한 사람이라면 지치는 것 쯤이야 쉽게 타파 가능할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겪어보니 아니더라.

마치 수심 얕은 해변가에서 마구 수영을 하다가 어느 순간 고개를 들어보니 바다 한 가운데에 있는 기분이었다. 갑자기 힘이 빠지고, 이 상황을 헤쳐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막막하더라.


아쉽지만 나는 지친 상태를 해소하지 못한 채 프로젝트를 마무리 하게 되었다. 이제 와서 회고해보면 에너지 레벨이 0에 가까운 상태로 마지막 4주를 보낸 것 같다. 그렇기에 아직 이렇다 할 만한 해결책이 떠오르진 않는다.


다만 하나 확실한 것은 '나의 상태를 인지하는 것'의 힘이다.


다음 프로젝트 때도 비슷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내가 지쳤다는 것을 인지하려고 가장 노력할 것이다. 예로는 물리적 장치를 만들어두는 게 있을 것 같다. 매주 금요일 밤 11:30분부터 12시까지는 한 주 나의 감정, 기분이 어땠는지 돌아보는 온전한 시간을 가진다던지. 그 30분의 활용 방안은 그림이 될 수도, 글이 될 수도,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아직 다음 프로젝트가 정해지지 않았다. 오는 1주일 동안에는 지금껏 이야기한 첫 프로젝트의 A/S 작업을 맡게 된다. 그 다음에 어디로 갈지는 미지수이다.


다행인 것은, 어찌 되었건 기대된다는 것이다. 재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