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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상훈 Sep 01. 2020

예술가로 살기 위해 직장인 된 이유

해외 설치미술 개인전까지 펼친 평범한 직장인 

 누구나 한 번쯤 좋아하는 영화를 보다가 또는 여행, 취미활동을 하다가 "아.. 평생 이것만 하면서 살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해본 적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무거운 현실의 벽을 떠올리며 스쳐 지나간다. 나에게도 그 경험이 있었다. 그것도 아주 세게(?)


 꽤 쌀쌀한 가을날 오후였다. 집에 있기 무료해 무얼 할까 고민하던 중, 부산 비엔날레 전시회를 보기 위해 부산시립미술관을 방문했었다. 생전 처음 미술관이란 곳을 갔었다. 당연히 돈을 주고 미술 작품을 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일상에서 흔히 보던 책들이 널브러진 전시장, 건물 한복판에 넓게 펼쳐진 색색의 바가지들. 그걸 보고 누군가는 "이런 것도 작품이고 전시라니"라는 생각을 떠올릴 법했다. 하지만 장난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 그 전시는 나에게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와 이런 것도 작품이 될 수 있구나, 이렇게도 자기 생각을 표현할 수 있구나" 미술이란 건 특별한 누군가만 한다고 생각해온 고정관념이 마치 단단한 야구공에 맞은 유리창처럼 산산이 부서졌다. 재미있어 보였고 나도 하고 싶었다. 한마디로 첫눈에 반했다. 진짜 해보고 싶은 무언가가 생긴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게 '설치미술' 이란 것도 몰랐다. 


 그때가 대학교 3학년 때였다. 진로에 대해서 한창 고민하고 방황할 때. 나는 공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방 사립대 경영학과에 진학한 대학생이었다. 작품을 보고 큰 설렘과 충동을 느꼈지만 막상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몰랐다. 당연히 그러지 않겠는가? 미술과는 전혀 상관없는 과정을 거쳐온 20대 초중반의 대학생이 갑자기 미술작품을 보다가 전업 작가가 되고 싶어 한다니. 그런데 그 상황이었다. 그걸 하면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막연한 확신이 들었다. 그날 이후 혼자서 이렇게 저렇게 작품을 구상해보았다. 미술이란 걸 한번 도 배운적 없지만 가만히 있어도 흥미로운 아이디어들과 설치방법들이 마구 샘솟았다. 그렇게 정리한 생각과 작품을 주변사람들에게 이야기하니 매우 재밌게 받아들였다. "나에게도 재능이 있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당장 작가로서 삶을 살기에는 준비해야 할 것도, 짊어져야 할 심리적인 부담감도 상당했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돈을 벌어야 했고 안정적으로 돈을 벌어 사랑하는 가족에게 든든한 아들이 되고 싶은 마음도 컸다. 엉뚱한 생각을 하기보단 취업 준비를 하는 것이 현명해 보이는 상황이었다. 내가 설치미술 작가로서 천부적인 재능이 있어 금세 유명해질 수 있다면 모르지만 냉정하게 본다면 설치미술에 대한 내 재능은 너무나 어설프고 애매했다. 결국 "지금은 가능하지 않다"라고 결정 내렸다. 그렇다면 그냥 포기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설치미술 작가로서 활동해오고 있다. 2017년 서울 경복궁 옆 통의동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첫 전시였지만 언론 인터뷰도 하고 포털사이트 메인과 뉴스에도 나왔다 그리고 20년 1월에는 대만 타이베이에서 설치미술 해외 개인전을 2주 동안 펼쳤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전시까지 진행한 작가로 지내고 있다. 

왼쪽 사진 : 첫 전시 포스터 <입사 1년 차 돈키호테>, 오른쪽 사진 : 해외 전시 포스터 <입사 4년 차 돈키호테>


 그 간절했던 일을 시작하고 꾸준히 해올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뭘까? 내가 생각했던 어중간한 관심과 재능이 알고보니 탁월한 재능이었던 걸까? 전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현실에 순응해 선택한 직장생활이 그것을 가능케한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다니는 회사도 미술 쪽과 전혀 관련 없지만 직장생활을 통해 아티스트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얻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직장생활을 하기 때문에 작가 활동이 가능하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하나씩 이야기해보겠다. 


 작가 활동에 반드시 필요한 것은 영감, 금전, 관객 3가지다. 나의 경우 다양한 영감과 아이디어는 낯선 감정, 낯선 상황과의 조우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현대에서 그런 낯섦을 매일, 지속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은 아이러니하게 가장 반복적으로 보이는 회사 사무실이다. 잘 생각해보자. 평범한 우리가 직장 생활만큼 다양한 감정, 인간 군상을 매번 마주 할 수 있는 곳이 또 있을까? 멀리서 보면 매일이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 그 안에서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 매번 다른 상황, 감정, 생각들을 엮어내고 시시각각 표출한다. 나는 일을 하면서 이런 생각이 자주 떠오른다. "아 이 기분을 한 장의 그림, 또는 한 공간에 표현한다면 이 모습일 거야" 그렇게 직장은 미술을 전공한 적도, 특별한 배경도 없는 내게 무수히 많은 감정, 상황을 선물해주며 영감을 키워주는 인큐베이터다. 동시에 '직장인 아티스트'라는 독특한 아이덴티티를 유지할 수 있게 하는 근본이다. 예술활동에 있어 직장생활의 중요성을 나보다 훨씬 앞서 강조했던 사람이 있다. 열정적 미치광이로 불렸던 미국의 시인 찰스 부코스키는 다음과 같은 말을 자신의 저서에 남겼다.


  "내가 아는 시인들은 대부분 한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단 한 번도 직장을 다니며 하루 8시간의 노동을 한 적이 없다는 것. 8시간의 노동보다 더 현실과 소통하는 길이 없는데도. (중략) 그들의 글에는 삶도 없고, 알맹이도 없고, 진실도 없다. 무엇보다 아주 따분하다. 유행에는 맞지만" ('종이 먹는 흰개미' 중)


  다음으로 작가의 생각을 선보이기 위해 필연적으로 갖춰져야 할 부분이 금전, 비용이다. 직장인은 월급을 받는다. 크던 작던 일정 수입이 있다는 것은 퇴근 후에는 다른 생각 안 하고 작품에만 몰두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무명의 전업작가라면 비용 문제가 매번 발목을 잡겠지만, 직장인인 나는 그렇지 않다. 직장을 다니기에 표현하고 싶을 것을 비용에 구애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 


 회사만큼 소문이 빠르고 서로에 대해 설왕설래가 많은 곳이 또 있을까? 매일 마주하고 오랜 시간 있다 보니 그들 안에서 일어난 사소한 일도 삽시간에 퍼진다. 그리고 직장생활을 하면 좋든 싫든 여러 사람과 관계를 맺게 된다. 이것은 작품과 전시를 쉽고 빠르게 홍보할 수 있단 뜻이다. 무명작가에게 자신을 찾아와 주는 관객 1명, 1명은 매우 중요하다. 서툴렀던 나의 첫 전시 때도 작품을 보러 가장 먼저 달려와준 사람들이 입사 동기들과 회사 동료들이었다.  


 이렇게 직장생활을 통해 작가로서 필요한 영감,금전,관객을 확보할 수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그것은 직장생활을 했기에 '직장인 아티스트' 라는 독특한 아이덴티티를 구성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비전공자인 내가 첫 전시부터 언론의 관심을 받고, 해외 전시까지 성공할 수 있었던 핵심적인 이유 중 하나다. 이 이야기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이것이다. "재능의 수준이 결과를 결정 짓지 않는다." 어릴 때 배웠던 피아노, 평범한 식당 알바 경험, 심지어 유년 시절 겪었던 아토피 질환 마저도 그 경험과 환경을 어떻게 접근해 구성하느냐에 따라 메이저 음대를 졸업한 피아노니스트, 유명 셰프, 피부과 의사보다 더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고 관심을 받으며 원하는 성과를 도출해 낼 수 있다. 지금은 그것이 충분히 가능한 시대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 접근이 더욱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다. 실제로 사람들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만한 탁월한 재능보다는 "저정도하는 사람은 많이 있잖아?" 수준의 애매한 재능을 활용해 성공한 이들이 넘쳐나고 있는 상황이다.  

<입사 1년 차 돈키호테> 개인전 8번째 작품,  '틈' 앞에서

나는 이 책을 통해 그 방법과 과정을 상세히 공유하려 한다. 나아가 그것을 활용한 다양한 사이드 프로젝트까지 소개할 예정이다. 사실 내 머릿속에는 "이 일이 잘 안되면 어떡하지?" 란 생각이 자석 병따개가 냉장고 한구석에 촥 달라붙어 있듯 항상 존재한다. 그래서 내 재능을 믿고 현실에 맞서서 큰 도전을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직장인 아티스트라는 것 이외에도 독자분들에게 들려주면 흥미로워할 다양한 이야기를 이뤄가며 성실히 살아가고 있다. 애매한 재능 때문에 매번 고민하는 이들, 어중간한 상황 때문에 새로운 도전을 망설이는 직장인,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싶은 사람은 앞으로 나올 글들이 원하는 것을 이뤄내는데 분명 도움이 되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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