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리카케(ふりかけ) — 밥 위에 흩뿌리는 작은 우주

by 윤오순

음식 이름에는 종종 행위가 담겨 있다. 커피의 아포가토는 아이스크림을 커피에 “빠뜨린다”에서 온 말이고, 마키아토는 우유 거품으로 “찍다”라는 뜻에서 비롯되었다. 에스프레소 역시 “재빨리 짜내다”라는 동작이 이름이 되었다. 일본의 후리카케(ふりかけ)도 그와 닮았다. 따뜻한 밥 위에 재료를 “흩뿌린다”는 행위가 곧 이름이 된 것이다. 한국에서도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후리카케라 부른다. 미소(味噌, 된장), 멘츠유(めんつゆ, 간장 베이스 국물장)처럼 일본에서 건너와 그대로 쓰이는 말들 가운데 하나다.


보통 조미료는 음식 속으로 스며들어 사라진다. 소금은 흔적을 남기지 않고, 설탕도 금세 녹아버린다. 간장은 음식 전체에 색과 향을 퍼뜨리지만, 어디까지가 간장이고 어디부터가 재료인지 경계가 모호하다. 그러나 후리카케는 다르다. 김, 가쓰오부시(鰹節, 말린 가다랑어포), 참깨, 달걀 플레이크, 시소(紫蘇, 일본 깻잎·자소엽) 같은 재료들이 밥 위에 입자 그대로 남아 있다. 눈으로 보이고, 씹을 때의 질감이 살아 있으며, 향과 맛이 겹겹이 쌓인다. 조미료이면서 동시에 음식의 완성을 맡은 주연인 셈이다.


한국에도 밥 위에 무언가를 얹어 먹는 습관은 오래 있었다. 구운 김을 잘게 부숴 밥 위에 올려 먹는 방식이 그렇고, 떡국 위의 지단, 잡채 위의 고명, 국밥 위의 파처럼 음식을 마무리하는 장식 문화도 있다. 하지만 후리카케는 조금 다르다. 고명이 요리를 돋보이게 하는 장식이라면, 후리카케는 밥을 위한 독립적인 조미료다. 밥 한 그릇을 캔버스로 삼아 입자라는 언어로 맛을 설계하는 방식이 일본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일본 슈퍼마켓의 후리카케 코너에 서면 그 다양함에 놀라게 된다. 시소의 보라색, 달걀의 노란색, 연어의 주황, 김의 초록이 화려한 조합을 이룬다. 종류는 끝이 없고, 조합은 늘 예상 밖이다. 유자 껍질이 바다의 풍미와 만나고, 와사비가 달콤짭짤한 균형 속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포장은 귀엽고 아기자기하다. 일본 특유의 카와이(かわいい, 귀여움) 문화가 음식 포장에서도 드러난다. 아직 뜯지 않은 봉지를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한참을 서 있게 된다.


이런 후리카케의 세계 뒤에는 일본의 식품 가공 기술이 자리하고 있다. 달걀을 건조시켜 플레이크로 만들고, 가쓰오부시를 얇게 갈아 감칠맛(우마미, 旨味)을 남기며, 습기에 약한 입자들을 끝까지 바삭하게 유지하는 포장법이 뒷받침한다. 일본은 생활의 작은 불편을 해결하는 기술에 강하다. 여행지에서 물 없이도 몸을 닦을 수 있는 수건을 받은 적이 있는데, 우주 기술을 응용해 만들었다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이런 편의와 기술의 결합이 음식에도 들어와, 후리카케라는 형태로 자리 잡은 것이다.


먹는 방식은 단순하지만 여러 변주가 있다. 가장 흔한 것은 따뜻한 밥 위에 가볍게 흩뿌려 먹는 것. 또 다른 방식은 오차즈케(お茶漬け, 밥 위에 녹차나 다시 국물을 부어 먹는 간단한 요리)다. 밥 위에 후리카케를 올리고 뜨거운 차를 부으면, 맛이 풀리며 국물과 밥이 어우러진다. 까맣게 보이는 조각이 김인 줄 알았는데 전혀 다른 재료일 때도 있다. 바다의 향으로 시작해 산과 과일의 향으로 끝나기도 한다. 작은 입자들이 모여 새로운 풍경을 만든다.


한국의 고명이 음식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역할이라면, 후리카케는 도시 생활 속에서 밥을 새로운 요리로 바꾸는 힘을 보여준다. 봉지를 열어 한 번 흩뿌리는 동작이 이름이 되고, 이름이 습관이 되고, 습관이 문화가 된다. 작은 입자들이 만들어내는 변화는 단순히 맛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밥 한 그릇의 의미를 바꾸고 있다. 그래서 나는 후리카케를 식탁 위의 작은 우주라 부르고 싶다. 밥과 입자가 만나는 자리마다 작은 빅뱅이 일어나고, 그 여운은 한 끼의 시간을 바꾸고 있다.


후리카케가 흩뿌리는 세계라면, 다음에 이어질 멘츠유(めんつゆ)는 붓는 세계다. 밥과 면, 국물과 튀김을 한 번에 이어주는 멘츠유의 이야기를 다음 글에서 이어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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