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츠유(めんつゆ) — 일본 요리의 비밀 병기

by 윤오순

일본 슈퍼에서 멘츠유(めんつゆ)를 처음 봤을 때 나는 잠시 멈춰 섰다. 간장인가 싶었고, 이름이 이상했다. ‘츠유(つゆ)’라는 말은 일본어로 장마(梅雨)를 뜻하니, 혹시 비 오는 계절에 먹는 음식용인가 싶었다. 병을 들고 한참을 살피다 결국 가장 비싼 걸 하나 골랐다. 이유는 단순했다. 실험은 늘 최고급 재료로 해야 결과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와 병을 열고 한 숟갈 맛을 봤다. 달았고, 짰지만, 깊었다. 이건 조미료가 아니라 하나의 문화였다. 그날 이후 내 부엌은 실험실이 되었다.


나는 요리를 잘하지 못하지만, 실험정신만큼은 누구보다 투철하다. 일본의 조미료를 원래 용도대로만 쓰면 재미가 없다. 멘츠유는 그런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건 어디까지 가능할까?’


그 첫 실험은 스파게티였다. 지름 30센티쯤 되는 후라이팬에 물을 끓이고, 가지와 파프리카를 따로 구워 계절 야채와 함께 올리브 오일에 볶았다. 계절 야채라고 하면 종류가 너무 많아 일일이 말하긴 어렵지만, 나는 슈퍼에서 싸게 파는 게 계절 야채라고 믿는다. 삶은 스파게티 면을 야채를 볶은 후라이팬에 건져 넣은 뒤, 멘츠유 한두 스푼을 떨어뜨린다. 재료에 간을 입힌다는 느낌으로 멘츠유를 요리 전체에 입히고 나면, 감칠맛이 살아나며 멸치를 넣지 않아도 맛의 깊이가 생긴다. 그릇이 예쁘면 요리도 예뻐 보인다. 나는 그렇게 배웠다. 부엌의 미학은 결국 시각과 리듬의 문제다.


두 번째 실험은 소고기였다. 일본은 고베(神戸), 야마가타(山形), 미야자키(宮崎)처럼 고기로 유명한 지역이 많다. 슈퍼에서 얇게 썬 소고기와 야채를 사 와 둘 다 기름 없이 굽는다. 팬이 더러워지면 물에 한 번 닦고 다시 굽는다. 깨끗한 색이 맛을 결정한다. 이건 요리의 과학이라기보다, 미학의 습관이다. 구운 야채와 고기를 예쁜 접시에 나란히 담고, 후추와 핑크 솔트를 살짝 흩뿌린 뒤, 멘츠유 소스를 곁들이면 요리 끝이다. 나는 멘츠유에 참기름(ごま油)과 땅콩버터(ピーナッツバター)를 섞어 소스를 만든다. 첫 입은 놀라움, 두 번째는 깨달음, 세 번째는 경건함이었다. 나는 그걸 ‘극락의 순간’이라 부른다. 하지만 내 입맛에만 맞으니 함부로 권하지 않는다.


세 번째 실험은 연두부였다. 일본의 슈퍼에는 손바닥만 한 작은 연두부가 다양하게 진열되어 있다. 한국에서도 그런 제품을 본 적이 있지만, 막상 사 오면 먹기 곤란하다. 요리하자니 귀찮고, 그냥 먹자니 심심하다. 그래서 떠올린 게 멘츠유였다. 연두부를 전자렌지에 살짝 돌려 따뜻하게 한 뒤 멘츠유를 한 줄 부으면 된다. 너무 뜨겁게 돌리면 이가 아프니 조심할 것. 나도 알고 싶지 않았던 사실이다. 이 단순한 조합은 반찬이 필요 없고, 단백질이 바로 흡수된다. 미식이 아니라 생활의 기술이다.


일본 사람들도 멘츠유를 부엌의 기본으로 쓴다. 냉소바(ざるそば), 우동(うどん), 덴푸라(天ぷら), 니쿠자가(肉じゃが). 한 병으로 국물과 양념을 모두 해결한다. 1960~70년대, 가정의 산업화가 진행되던 시기, 부엌은 손맛의 공간에서 ‘시간 관리의 공간’으로 변했다. 멘츠유는 그 시대의 산물이다. 야마사(Yamasa / ヤマサ), 킷코만(Kikkoman / キッコーマン), 닌벤(Ninben / にんべん). 이 세 브랜드가 만들어낸 한 병에는 간장(しょうゆ), 미린(みりん), 다시(だし)의 미학이 모두 녹아 있다. 한국의 멸치액젓이나 다시다, 중국의 노두유(老抽), 이탈리아의 발사믹 글레이즈처럼, 세계에는 각자 방식의 ‘압축된 맛’이 있다. 그러나 일본의 멘츠유만큼 섬세하게 조율된 것은 드물다.


일본인은 계절에 따라 희석 비율을 바꾼다. 냉소바에는 1:3, 따뜻한 우동에는 1:5. 레시피가 아니라 감각의 전통이다. 날씨, 습도, 기분까지 맛의 일부가 된다. 결국 멘츠유는 일본 문화의 본질을 보여준다. 압축, 정제, 편의, 균형. 차(茶)가 의례를 압축한 예술이라면, 멘츠유는 일상을 압축한 조미료다.


나는 이 글에서 ‘멘츠유(めんつゆ)’로 표기하지만, 예전에는 ‘멘쯔유’라고 쓰는 사람도 많았다. 일본어 つ(tsu)의 발음은 ‘쯔’보다 ‘츠’에 가깝다. 언어의 세밀함 속에 문화의 질감이 있다. 한 병의 멘츠유는 결국, 일본이 만들어낸 가장 일상적인 기술 문명이다. 나는 아직도 그 병을 열 때마다, 조미료가 아니라 언어를 여는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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