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의 어느 규탕(牛タン, 소 혀 요리) 전문점에서 처음 그 빨간 깡통을 봤다. 테이블 한쪽에 조그맣게 놓여 있었는데, 일본 사람들은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집어 들어 고기에 뿌렸다. 나는 그게 뭔지 몰라 옆 사람에게 물었다. “시치미(七味)야.” 그 순간부터 내 눈에는 그것이 평범한 조미료가 아니었다. 반들반들 닳은 금속 표면에 오래된 손길이 묻어 있었고, 붉은색 통에 새겨진 금색 바탕의 글씨가 은은하게 빛났다. 작은 깡통 속에 무언가 오래된 이야기가 숨어 있을 것 같았다.
깡통 속의 가루를 조심스럽게 뿌려 한 입 먹고 나서 놀랐다. 탄 향과 살짝 단단한 살코기의 질감이 씹히며, 고추의 매운맛과 산초의 향이 입안에서 동시에 살아났다. 혀끝이 가볍게 저릿하고, 삼킨 뒤에는 감귤 껍질의 상큼한 여운이 코끝으로 올라왔다. 매운맛과 향이 더불어 중심이 되는 조미료였다. 단순히 자극적인 것이 아니라, 여러 결이 겹쳐진 풍미가 천천히 퍼졌다. 마치 미세한 바람이 계절의 경계를 스치듯, 맛이 층을 이루며 흘러갔다. 그때 식당 직원이 조심스럽게 그 깡통을 치웠다. 마치 귀한 도구를 다루듯, 천천히 들어 옆으로 옮겼다. 나는 그 행동이 도무지 잊히지 않았다.
시치미(七味)는 일본 향신료의 결정체다. 17세기 초 에도시대, 도쿄 니혼바시 야겐보리(薬研堀)의 한 약방에서 시작됐다. 약재 상인이던 나카지마 토쿠에몬(中島徳右衛門)이 한약재 몇 가지를 혼합해 향과 건강을 더하는 조미료를 만들었다. 바로 그 조합이 오늘날 시치미 도가라시(七味唐辛子)의 원형이다. 고춧가루, 산초, 진피(귤껍질), 참깨, 대마씨, 김, 생강. 일곱 가지 재료가 조화를 이루며 만들어내는 향의 층위, 그것이 바로 ‘일곱 맛’, 七味다.
지역에 따라 배합은 달라진다. 교토의 기온 거리에는 고운 고추와 김이 강조된 ‘시치미야 혼포(七味家本舗)’가 있고, 나가노의 ‘야와타야 이소고로(八幡屋磯五郎)’는 산초 향이 강하다. 아사쿠사의 ‘야겐보리 시치미(薬研堀七味)’는 귤껍질 향이 두드러진다. 배합은 달라도 조화의 철학은 변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재료가 섞여 하나의 풍미를 만드는 것. 일본 요리의 본질은 이 ‘균형의 미학’에 있다.
일본 사람들은 시치미를 정말 다양하게 쓴다. 소바나 우동 국물에 뿌리고, 야키토리(やきとり, 숯불에 구운 닭꼬치 요리)에도 살짝 올린다. 어떤 이는 오뎅에, 어떤 이는 일본식 된장국(味噌汁, 미소시루)에 뿌린다. 나 역시 그렇게 한다. 순한 미소시루에 시치미를 살짝 뿌리면, 매운 향이 퍼지며 한국식의 칼칼함, 얼큰함이 올라온다. 부드럽고 단맛이 나던 국물이 갑자기 살아나는 느낌이다. 일본 음식을 ‘심심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시치미와 이치미(一味), 그리고 토가라시(唐辛子)를 권하고 싶다. 전혀 심심하지 않다. 그 안에는 부드럽게 겹치는 맛의 결이 있다.
한국에도 시치미와 닮은 감각이 없지는 않다. 칼국수를 먹을 때 곁들여 넣는 다대기. 고추, 마늘, 간장, 고춧가루를 다져 섞은 이 양념은 한국의 ‘즉흥적 혼합’의 미학을 보여준다. 다대기라는 말은 ‘다지다’의 방언에서 왔다는 설도 있고, ‘많이 넣는다’는 뜻의 중국어 多多(다다)에서 왔다는 설도 있다. 다대기가 물기 있는 습식 양념이라면, 시치미는 건조된 향신료의 조합이다. 질감과 형태는 다르지만, ‘맛의 설계’라는 점에서는 닮아 있다.
지난 골든 위크, 나는 나가노(長野)를 방문했다. 역의 기념품 매장에서 ‘야와타야 이소고로(八幡屋磯五郎)’의 빨간 깡통을 보았을 때, 사람들은 마치 오래 기다린 약속처럼 그것을 집어 들었다. 그 깡통이 내 손에 들어왔을 때, 먼 길을 돌아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가노 시내를 걷다 야와타야 이소고로 본사를 우연히 발견했을 때는 거의 감동에 가까웠다. 작지만 완벽하게 꾸며진 매장은 향신료 박물관 같았다. 한쪽에서는 향의 샘플을 맡아볼 수 있었고, 다른 쪽에서는 자신만의 시치미를 조합할 수도 있었다. 병의 크기, 포장의 질감, 선물 세트의 세심한 구성까지—이 작은 조미료가 하나의 ‘문화’로 완성되어 있었다. 나는 그 순간 ‘이게 일본의 힘이구나’라고 생각했다. 작고 평범한 것을 다듬어 독보적인 문화 상품으로 만드는 힘. 나가노는 이제 나에게 동계 올림픽을 개최한 도시라기보다 시치미의 고향으로 기억된다.
시치미의 재료들은 모두 다른 땅의 기억을 지닌다. 어떤 것은 일본의 산과 들에서 자라며 오래도록 이 땅의 향이 되었고, 어떤 것은 대륙을 건너 바다를 지나왔다. 고추처럼, 먼 나라에서 건너와 새로운 기후와 입맛에 맞게 자리 잡은 존재들. 그 여정을 생각하면 시치미 깡통 속 가루 하나하나가 눈물겹다.
나는 에티오피아 커피를 오래 연구해왔다. 그래서 전 세계 어느 카페를 가도, 메뉴판에서 가장 먼저 에티오피아 커피를 찾는다. 없을 때야 비로소 다른 커피를 마신다. 주문하며 “이르가짜페(한국에서 ‘예가체프’라고 부르는 이름)”라고 말할 때면, 내 마음은 이미 먼 나라의 어느 비포장길을 달리고 있다. 고지대의 옅은 안개 속, 덜 마른 흙냄새와 함께 퍼지던 커피의 향. 그것은 내게 단순한 향이 아니라, 커피의 기원이 되는 곳에 대한 깊은 향수다.
냉장고 안에 그 빨간 깡통이 있다. 가끔 요리를 하다 손이 닿으면 열어 향을 맡는다. 고추의 매운 냄새와 산초의 향, 귤껍질의 상큼함이 한순간에 피어오른다. 그 향을 맡으면 마음이 멀리 여행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