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린(みりん) — 냄새를 정리하고 표면을 정돈하는 술

by 윤오순

미린(みりん, mirin)은 일본 부엌에서 자주 쓰이는 단맛 술이다. 일본에 오기 전에도 그 이름은 알고 있었다. 다만 요리에 어떻게 쓰는지는 몰랐다. 단맛을 내는 올리고당과 뭐가 다른지 몰랐고, 윤기가 흐르는 굴소스와도 헷갈렸다.


미린은 찹쌀과 누룩, 소주를 발효·숙성해 만든다. 도수는 보통 14% 안팎. 술이 맞다. 미린은 조리 중 가열하면 알코올은 대부분 날아가고 단맛과 감칠맛, 표면의 윤기만 남는다. 일본 요리에서 ‘데리(照り)’라 부르는 그 반짝임이 바로 미린의 흔적이다. 윤기가 흐르고 단맛이 나는 데리야키를 기억한다면, 이미 미린을 맛본 셈이다.


미린에는 세 가지가 있다. 전통 방식의 혼미린(本味醂), 소금을 약간 넣은 시오미린(塩味醂), 그리고 알코올이 거의 없는 미린풍 조미료다. 같은 이름이라도 제조법과 성분이 달라 맛과 사용감이 다르다. 어떤 미린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요리의 결과가 달라진다. 슈퍼에서 병을 고를 때 이 차이를 알고 있으면 한결 유용하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미린은 무로마치 시대에는 달콤한 술로 마셨다. 에도 시대에 들어서야 요리용으로 자리를 잡았다. 당시 도시의 취향이 세밀해지면서 장어구이, 조림, 데리야키 같은 음식에서 색과 윤기, 달콤한 균형을 더하는 재료로 쓰이게 되었다.


요리에 술이 들어가는 이유는 명확하다. 첫째, 알코올이 생선의 잡내 분자를 휘발시켜 냄새를 줄인다. 둘째, 향 성분을 잘 녹여 퍼뜨려 향을 또렷하게 한다. 셋째, 가열 뒤 남은 당과 아미노산이 간장 등과 반응해 색과 풍미를 더한다. 결과적으로 냄새는 줄이고, 향과 윤기를 키운다.


술을 쓰지 않는 부엌은 다른 길을 택한다. 이슬람권에서는 석류 몰라세스, 대추야자 시럽, 레몬 절임, 향신료 블렌드로

단맛과 산미, 향의 층을 쌓는다. 술이 없어도 풍미를 설계하는 길은 많다. 중국의 료주(料酒)나 사오싱주(紹興酒)는 비린내를 잡고 소스의 골격을 세운다. 서양에서는 브랜디·럼·와인이 그런 역할을 한다. 팬에 불을 붙여 알코올만 날리고 향을 남기는 프람베(flambé)는 중식당 부엌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일본에는 ‘끝간지(口残り)’라는 말이 있다. 한입 삼킨 뒤 입안에 남는 여운을 뜻한다. 미린은 이 여운을 길게 만든다.

혀끝의 약한 단맛이 짠맛, 산미, 기름감과 이어지며 다음 한입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게 한다. 맛은 금세 사라지지만, 입안의 여운이 식사를 마무리한다.


뭐든 과해서 좋은 건 없다. 미린도 실제로 쓸 때는 과하지 않은 편이 좋다. 팬 가장자리에 살짝 둘러 윤기를 보완하거나, 조림에는 간장·설탕·다시와 비율을 맞춰 넣는 게 좋다. 생선은 굽기 전 사케로 냄새를 누그러뜨리고, 마무리에 미린으로 광택을 더하면 깔끔하다. 요리의 핵심은 언제나 같다. 조금씩, 필요한 만큼.


나는 아직 마음대로 조미료를 써가며 요리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느끼고 있다. 미린은 단맛을 넣는 조미료라기보다 냄새를 정리하고 향을 퍼뜨리며 표면을 정돈하는 술이다. 역사와 제품의 차이를 알고, 쓰는 양과 타이밍을 조절하면 한 그릇의 인상이 달라진다. 과장할 필요는 없다. 필요한 만큼 쓰면, 미린은 조용히 제 역할을 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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