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유명 배우의 과거 범죄가 드러났고,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그는 은퇴를 선언했다. 퇴출이라고 하는 편이 낫겠다. 폭행, 차량절도, 집단강간. 소년원 수감 경력이 있는 사람이 30년이 지난 지금 모범적 인물처럼 대중 앞에 서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을 주었다. 특히 그는 광복절 축사까지 읽으며 스스로를 ‘좋은 사람’, ‘성장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하려 했다. 그 순간, 조용히 살아오던 피해자들의 30년간의 침묵이 깨져버렸다. 가해자의 성공 서사가 피해자의 삶을 다시 무너뜨린 것이다.
그런데 서울대 법학과의 모 교수(은퇴 여부는 알 수 없지만 꾸준히 사회적 발언을 해온 인물로 알려져 있다)는 “소년원 시절을 보냈지만 그 덕분에 나쁜 길로 가지 않았고, 오히려 좋은 모델이다”라는 취지의 의견을 내놓았다. 나는 이 말이 깊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삶을 다시 바로 세우고 갱생할 수 있다. 그건 인간의 가능성이고, 사회가 기꺼이 지지해야 하는 부분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갱생했다고 해서 모든 영역에 복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특수강간·집단폭력 같은 중범죄는 피해자의 삶을 영구적으로 바꿔놓는다. 가해자가 아무리 착하게 살았다 해도, 그 범죄는 피해자에게 시간과 평화를 돌려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사회는 최소한의 도덕적 질서를 지키기 위해 일부 영역을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남겨두어야 한다. 국가 기념일 축사, 공적 발언, 대중 앞에서 귀감으로 소비되는 자리 같은 영역은 ‘절대 서서는 안 되는 자리’, ‘절대 탐내서는 안 되는 자리‘여야 한다. 그것은 응징이 아니라 공동체의 안전과 윤리를 위한 최소한의 방파제다.
가해자가 광복절 축사를 읽으며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위치에 오르는 동안, 피해자들은 30년간 그 기억 속에 갇혀 살아왔다. 좋은 일을 많이 했다고 해서 그 과거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이는 영화 <밀양>에서도 같은 문제로 제기된 적이 있다. 가해자는 교회에서 회개한 뒤 “용서받았다”고 믿으며 편안히 살아가지만, 피해자의 삶은 단 한 순간도 회복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신에게 용서받았다”는 자기 확신이 피해자에게는 또 다른 폭력이 되는 장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과란 대중 앞에 “잘못했다”라고 던져놓는 글이 아니라, 상처 준 그 사람에게 직접 가서 마음을 마주하는 것이다. 그리고 용서는 가해자가 “이제 용서해줘” 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오직 피해자가 느끼고 결정하는 일이다. 제3자가 “그래도 이제 벌도 받았잖아, 됐지 않냐”라고 말하는 건 옳지 않다. 그럴 권한도 없고, 그 말 자체가 아무 의미도 없다. 그건 그들이 끼어들 일이 아니다.
이번 사건은 아주 중요한 사실을 드러낸다. 어떤 죄, 특히 성폭력 범죄 같은 것들은, 개인적으로 갱생해도 사회적으로는 영원히 복귀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한다. 이건 사회를 엉망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필요한 질서다. 그 질서가 무너지면 피해자는 평생 고통 속에 살고, 가해자는 선행 몇 번으로 이미지 세탁을 하고, 대중은 또 그 서사를 받아들이며 도덕적 감각을 잃어버린다. 나는 이번 사건이 그 ‘선’을 다시 분명하게 보여준 계기가 되길 바란다. 특히 특수강간 같은 범죄는 영원히 회복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사회 전체가 기억했으면 한다.
앞으로도 우리 앞에는 크고 작은 선택의 순간이 있을 것이다. 나쁜 일을 할 기회가 눈앞에 와도, 정신 바짝 차리고 그게 정말 해야만 하는 일인지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 사과도 쉽지 않고, 용서도 쉽지 않고, 복수도 쉽지 않다. 그러니 이왕 이렇게 태어난 거, 그냥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너무 죄가 커 평생 서로 직접 볼 수도 없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 그런 가해자들은 잘못이 만천하에 드러났다해도 갑작스레 삶을 접거나 멈추려 하지 말고, 요란하지않게, 계속, 열심히 살면서 “인간이 이렇게 좋은 일을 할 수도 있구나” 싶은 일들을 많이 하며 살아가길 바란다. 피해자의 삶을 되돌릴 수 없다면, 최소한 자기 삶에서 의미 있는 방향을 향해 조용히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과와용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