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당신의 정형외과 Dec 13. 2022

나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요

사회적 그늘, 보육원 출신의 아이들

* 본 글은 환자의 개인 정보를 보호하기 위하여 대부분의 내용이 각색되었습니다. 


 몇년 전의 한창 무더운 여름이었다. 정형외과에서 힘든 점을 꼽으라면 물론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중증 외상’ 환자가 응급실에 도착하는 것이 꽤 상위권에 위치할 것이다. 새벽 2:09분, 응급실에서 콜이 왔다. 고층에서 추락한 젊은 여자 환자라고 하며 원인은 자살로 추정된다고. 출혈이 많아 활력징후가 불안정한 상황이라 전부 검사를 하지는 못하였지만 다발성 골절로 생각된다고. 잠깐 잠이 들었다가 ‘이건 큰일 났구나’ 하는 생각에 얼른 응급실로 달려갔다.


응급실에 도착하니 이미 외상외과에서 진료를 시행하고 있었고, 혈압이 너무 낮고 출혈이 많아 우선 중재술을 시행할 예정이라고 하였다. X-ray 등의 시간이 많이 필요한 검사들은 당장은 하기 어려워 보여 같이 촬영한 CT 영상들을 먼저 쭉 리뷰했다. 환자의 진단을 쭉 정리하였고 무려 9개나 되는 진단명으로 추려 냈다.


Pelvic ring injury (Vertical shear)

- Rt sacrum fx

- Lt sacrum fx

- Rt pubic inf ramus fx

- Rt acetabular ant column & post hemitransverse fx

- Lt pubic sup & inf ramus fx

Rt femur inter-subtrochanteric fx

Rt calcaneus open fx (G-A III, joint depression)

Rt ulna olecranon fx


 우선 가장 심한 것은 골반골 골절이었고, 지금 당장 급하게 해줘야 할 것은 발 뒤꿈치의 골절이었다. 발 뒤꿈치는 상처가 좋지 못하여 있고 개방성 골절이라 어찌 되었든 당장 정리가 어느 정도는 필요했다. 뼈가 살 아래로 훤히 드러나 있었고 혈압이 낮아 혈류도 잘 만져지지 않았었다. 발 뒤꿈치에 대해 응급수술을 계획하였고 그 사이에는 외상외과에서 환자를 봐주기로 했다. 다행히 수혈 및 중재술 이후 활력징후는 비교적 안정적이어서 차례차례 순서대로 수술을 진행했다.


 어찌어찌 한 달에 걸친 여러 차례의 대수술이 이어졌다. 환자는 추락하며 골반 주위의 신경총이 손상된 것으로 생각되며 수술이 다 끝나도 발목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골반과 천골은 잘 수술이 되었지만 나중에 외상 후 고관절염이 올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우여곡절 끝에수술이 모두 끝나 환자는 퇴원하였다.


 환자는 응급실에서 너무 통증을 심하게 호소하기도 하였고 크게 다쳐 출혈이 많은 상태라 대화가 원활하게 되지는 않았다. 몇 차례의 수술과 수혈, 중재술 이후에 환자는 기력을 회복하여 아프면 아프다, 기분이 어떻다, 안 아프게 해 주라 얘기했다. 그 아이는 뭔가 항상 말투에 어리광이 묻어있었다. 마치 정신적으로 미성숙한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성인이라고 생각이 되지 않을 정도로 아픈 것을 참지 못하였으며 계속 칭얼대었다. 어떤 점이 겁이 많아 보이던 그 아이를 그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게 했을지 궁금했다.


 골반 수술을 한 지 6주 후, 간이침대를 통해 외래로 그 아이가 들어왔다. 통증은 전보다 훨씬 덜해 표정이 한결 밝았다. 그래도 좀 마음에 여유가 생겼는지 눈 화장도 하고 와서 얼굴이 고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골반에 박혀있는 외고정기를 제거해 주기로 결정했고 진통제를 투여 후 골반골에 박혀있는 샨츠 핀을 제거하였다. 다시 한 달 반 전이 생각날 정도로 또다시 아파하였지만, 어쩔 수 없다는 얘기와 함께 곧 끝난다고 하며 외고정기를 제거해주었다. 간단한 피부 정리와 소독을 마치고 환자는 다시 원래 있던 병원으로 향했다.


 그 아이는 보육원 출신이었고 주변에 연락할 가족이 아무도 없어 응급실에서 애를 먹었다. 친 혈육인 형제가 머나먼 타 지역에 있었다고 하였고 부모님은 연락이 닿지 않는다. 오빠가 어찌어찌 연락이 되어 몇 시간에 걸쳐 도착했고 중환자실 환자 대기실에서 대기하였던 것이 생각난다. 도착한 혈육도 아주 앳되보여 이제 20대 초반 정도 되었을까 싶었다. 나중에 외래에서 만났을 때는 사람 좋아 보이는 친척(아마 사촌쯤) 이 같이 와서 한결 마음이 놓였다. 앞으로 어떻게 하실 거냐 물으니 일단 최대한 재활을 해본다고… 언젠간 외래로 걸어 들어오면 정말 기쁠 것 같다는 생각이 오늘도 들었다.


 2편에서 계속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금요일 새벽의 태권도 선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