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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싹 Aug 17. 2015

설 것이냐, 말 것이냐

진심으로 느슨하게 살고 싶다.

모처럼 혼자 느긋하게 걷고 싶은 날이었다.

딱히 목적지도 없는데 싹- 씻고 옷도 깔끔하게 입고 길을 나섰다.

내가 사는 동네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곳이어서 낮에 혼자 걷기 괜찮은 곳이다.

한두 정거장만 나가도 이것저것 편의 시설들이 있고 거리에 사람들도 제법 오가는 데 결계라도 있는 것마냥 내가 사는 곳 근처만 조용한 편이다. 맞은편 아파트 단지에 있는 도서관, 그리고 손님이 정말 몇 없는 카페와 편의점 정도라, 그 곳 사장님들은 좀 고민이 되실 법 한데, 내 입장에선 한산해서 참 좋다. 


이 날도 적막한 산책을 기대하며 걷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 참 묘하다. 요즘 믿지 못할 사건들이 많아서일까, 사람이 아예 없으면 상관없는데 애매하게 한두 명 있으면 그게 굉장히 의식되고 신경 쓰이는 것이다.



뒤에서 저벅 저벅 걷는 소리가 들리는데, 별 생각 없는 척 뒤를 보니 어떤 아주머니 한 분이 계셨다. 

흐음, 그래 그렇구나. 딱 그 정도의 생각을 하며 가던 길을 가고 있었다.



저기요. 저기요오

적어도, 나를 부를리는 없다고 생각하며 무시했다.

그러나 뇌는 회전하고 있었다.


앞에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일행 없이 혼자 오고 계셨다.

일행중간에 투입되었다 한들 지인을 저런 어감으로 부르는 일은 드물다.

전화상으로 건넬 어감이라기에도 어색하다.


그렇다면

나를 부르는 것인데,

무엇보다도 나에게 뭔가 말을 걸 이유가 없는 생판 남이다.


유추할 수 있는 결과는,

불필요하게 적극적인 전도사이거나,

'도를 아십니까?'의 일원이라는 것이었다.


아주 당연하게 단정 짓고 걸음을 조금 재촉했다.


좀 더 앞으로 가보려는데



저기요, 잠시만요오 -

아까보다 다소 더 간절함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곤란했다.

학창시절, 유난히도 이런 류의 사람들에게 잘 붙잡히고, 거절을 매몰차게 못했던 나는 그런 나의 성격을 매우 싫어하기도 했던 터. 


1단계. 무시


1단계가 먹히지 않는 경우에는


2단계. 단호한 어투


2단계까지도 가볍게 무시하는 만렙의 그들에게는


3단계. 단전부터 끌어올린 분노 어린 표정.



이런 식으로 대응하리라 종종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던 나였다.

그러나 단호히 하려는 자아와, 그걸 쉽게 하지 못할 거라는 자아는 충돌이 일어났고, 결국 나는 '또 붙들리는 건가 왜 발걸음이 느려지는 거야 이 멍청한 인간아.'라고 자책하며 찌푸린 미간을 하고 뒤를 봤다.



그랬더니 아주머니 왈.


옷에 라벨이 삐져나와서요. 

라고 하시며 내 옷의 매무새를 잡아주시고 가던 길을 총총총 가셨다.





나는 불과 몇 초였지만 그 자리에 멈춰서 있었다. 가만히.


이렇게 의심이 팽배해지는 것은 누구도 손가락질 못할 일일 수도 있다.

그런 세상이 되어가고 있으니까.

하지만 나는 내 상태가 창피했다. 몇 초간 서로 다퉈대던 내 자아들이 민망스럽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고맙다고 말씀드렸던가? 기억나지 않았다. 아마 했을 것이다.


내 마음이 들키지 않았기를.

그저, 나를 부르는 것이라 생각 못해서 뒤돌아보지 않았다고 여겨주시길 바랐다.



뭔가 흐트러진 모습을 그냥 못 보고 넘어가시는 성격의 아주머니 셨던가 본데, 얼마나 복장 터지셨을까, 앞에 있는 처자는 불러도 불러도 쳐다볼 생각도 않고 심지어 경보를 하기 시작하니 말이다.


그래도 나, 인사성은 밝으니까, 그 당황한 무의식에서도 고마움을 전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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